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만든 비정규직법(기간제법 및 파견법) 시행령이 입법예고 됐다. 하지만 그 모법과 시행령으로 인해 비정규직의 보호가 아닌 비정규직의 확대와 고착화가 더욱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오는 3일 비정규직법 하위법령(안) 공개토론회를 통해 노사 및 각계의 목소리를 들어보겠다고 한다. 공개토론회 전까지 전문가들의 기고를 통해 비정규직법 시행령안의 평가 및 문제점을 짚어보기로 했다.<편집자주>


노동부가 발표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행령에 따르면 의사·변호사들처럼 전문성과 직업 능력이 높은 전문직종은 법으로 보호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기간제한 예외직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가 규정한 기간제한 예외직종에는 시간강사와 간호사 등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많이 포함돼 있다.

한편으로 박사학위(국내외 포함) 소지자도 기간제한 대상에서 제외되어 이공계 정부출연연구기관 박사급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정규직화가 불가능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박사급 49%, 석사급 77% 비정규직

과연 박사학위를 소지한 정부출연연구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간제한 대상에서 제외되는 의사, 변호사들처럼 전문성과 직업 능력이 높아 법으로 보호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일까?

과학기술부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제출한 몇 가지 자료에 따르면, 정부출연연구기관 박사급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업안전성’의 실상은 정부의 판단과 완전히 다르다.

과학기술부가 2005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2005년 6월의 기간 동안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채용된 박사급 신규인력 2천185명 중 49.2%인 1천75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석사급의 경우에는 신규인력 4천130명 중 77.5%인 3천201명이 비정규직이었다.<표1>
박사급 노동자 1~3년 단위 고용불안 놓여

한편으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동안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4개 정부출연연구기관 박사급 비정규직 신규인력의 임금 수준을 살펴보면, 2001년이 정규직 대비 45.8%로 가장 낮고, 2003년이 55.4%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박사급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정규직 대비 50.5%에 불과하다.<표2>
 
<표2>

구분

2001

2002

2003

2004

2005.6





















과기연

45,239

14,689

48,170

17,099

47,689

21,825

49,626

20,744

45,746

20,355

생명연

36,025

0

37,434

0

39,180

27,300

42,099

28,968

42,099

28,968

기초연

43,837

16,740

46,541

19,188

47,142

20,713

50,192

17,837

53,885

24,710

천문연

29,245

21,600

44,006

26,400

39,536

26,400

41,956

26,400

0

26,400

총평균

38,587

17,676

44,038

20,896

43,387

24,060

45,968

23,487

47,243

25,108


※ 출처: 2005년 과학기술부 국감 제출자료(김영주 의원실 자료에서 재인용)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규정한 취업규칙을 살펴보면, 대부분 기관의 박사급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년 단위 또는 2~3년 정도의 사업기간단위로 계약기간을 정하고 있어 대단히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처해 있다.

절반 정도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계약횟수와 무관하게 계약기간을 5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복지제도 및 승진, 승급, 교육훈련제도 등 사업장내 각종 제도 또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시·지속업무 수년 근무해도 정규직 전환 못돼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 인력규모(정원)와 예산(인건비)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통제가 강화되면서 박사급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수년 동안 근무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정 이후 정출연 사용자들은 법 제4조 1항을 악용하거나 기타 직군분리 등의 방식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 비정규직 연구인력에 대한 정규직화를 피해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시행령 제정안은 사용자와 과기부에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거부할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근거로 작용할 것이고, 그 반대로 비정규직 연구인력들에게는 모든 희망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 더욱 가속화 시킬 것”

2002년 이공계 기피현상’이라는 기현상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이후 우수한 인력들의 탈이공계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서울대 일반학부의 등록률이 100%에 이르는 데 비해 유독 이공계 학부들만이 80%대의 낮은 등록률을 보이는가 하면 수년 동안 자퇴학생의 절반이상을 이공계가 차지하고 있다.

치의대 전문대학원이나 의학, 한의학, 법학 전공자들의 적지 않은 비율을 이공계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사급 비정규직 연구인력을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이번 시행령은 과학기술계의 대표성을 띠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축소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고, 이것은 대학과 민간연구기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비정규직법 비정규직 확대 양산 우려

정부가 제정하고 추진하는 비정규직 관련법과 시행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오히려 확대 양산하고, 그들의 처지를 나락으로 치닫게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기초와 기반을 허약하게 하는 파국적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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