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벌이 노동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었던 지난 83년 초여름, 5월의 이역만리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 외곽의 종합대학 건설현장은 유난히도 무더웠다. 50도를 훌쩍 넘은 지면은 이글거리다 못해 타는 듯이 보였고 일만 명이 훨씬 넘는 건설인력이 일하는 현장에는 외화벌이의 애국적 당위성에 모여든 각국의 노동자들이 거칠게 호흡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중동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꽤나 오랫동안 지배받은 국가들로 구성된 지역이었지만 우리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식민지하의 일제 36년의 치욕과 침략국가에 대한 '반영감정'을 그들에겐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대영제국이 침략국가로서 중동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수탈하고 무자비한 식민지행위만 일삼았다면 사우디국민의 대영제국 인식은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일본과 대비되는 역사라 아니 할 수 없다.

나는 동남아 로컬들과 밤을 새워가면서 작업일정을 맞추기 위해 애썼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고국을 그리워하며 고된 장시간의 노동을 위로하고 보듬을 수 있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한 동질감과 가슴 속 노동자 연대는 오늘날 노동운동의 자양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한국노총 90만 조합원의 노동자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원의 원장으로 일하면서 베트남과 몽골등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체 위탁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어느 날 베트남 노동자와의 대화 시간에 그가 한말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날 한없이 부끄럽게 한 기억이 생경하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주노동을 꿈꾸는 베트남 청년들에게 제일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 사장님 때리지 마세요. 우리도 사람이에요. 계속 때리면 경찰에 고발할거에요.”였다.

아들뻘 되는 이국의 노동자에게 듣는 경악스럽기조차 한 그 말은 소외되고 고난에 처한 노동자들을 위한다는 노동운동 본령의 정체성 위기로 가슴이 아려왔고 25년전 사우디 사막에서 동고동락 했던 노동형제들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랬다. 우린 어쩌면 앵글로 섹슨계에겐 한없이 자애롭고 친절한 민족이었지만 25년 전 우리노동자의 모습을 잊고 살며 동남아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투영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계를 경악케 한 조승희씨 총기난사사건을 접한 베트남 언론들은 ‘무서운 한국인’이라고 보도했다고 한다. 이를 접한 베트남 국민들은 한국으로 떠나는 자식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한국인을 제발 조심하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모두가 기피하는 소위 3D업종에 45만 외국인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우리 산업경제의 한 축을 위임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과 그로인한 극심한 취업난으로 대규모 청년실업 상태를 야기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가중화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급의 일자리, 양질의 일자리를 찾는 우리 국민들이 대다수로 존재하는 이상 외국인 노동자들의 소외된 노동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의 저임금과 부리기 쉬운 존재로 전락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주의 천민자본주의적 인식이 상존하는 이상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돌이켜 보자. 노동은 가치 있는 인간의 행위이다. 힘들고 어려우며 위험한 직종을 기피하는 우리 국민들의 인식을 변환시키지 않으면서 우리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천시하고 업신여겨왔다.

자본의 건강성은 노동의 가치를 함양시킨다. 생산을 증대시킨다. 25년 전 사우디에서 몸소 체험한 인생의 교훈이었으며 가치였다.

프랑스의 플로라 트리스탕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다.”

기업별노조의 고착화 속에 동남아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운동의 연대성 부족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5월 1일, 나에게 2007년 메이데이가 남다른 이유가 그래서이다.

한국노총과 손기정기념재단이 공동주최하는 5월 1일 노동절 마라톤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손을 맞잡고 잠실벌을 달리며 25년 전 사우디에서 만난 아련한 친구들을 가슴에 안고 달려야겠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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