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8일은 세계산재사망자 추모의 날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하루에 7명꼴로 산재사고로 노동자가 억울한 죽음을 맞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산재사망 문제는 심각하고도 중요한 문제이다. 4.28을 맞아 억울하게 죽어간 노동자를 추모하고 산재사망 근절을 제기하는 기고문을 2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편집자주> 


한국은 '산재왕국'이다. 노동부의 공식 통계로도 2006년 한 해에만 2천454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1,333명의 노동자가 업무 중 사고로 인해 유명을 달리했고, 565명의 노동자가 소위 '과로사'라고 불리는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사망재해는 공상 처리되거나 은폐되는 경우가 적다고 하지만, 그 규모 역시 무시하지 못할 정도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리고 더 큰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은 발암물질로 인한 직업성 암 등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직업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다.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여러 연구에 따르면 전체 암 발생의 4~5%는 직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투박하게 계산해서 2005년 암으로 사망한 6만5천479명 중 2천619~3천274명은 직업성 암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규모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 공식 산재사망 통계보다 더 많은 수인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동자 사망 ‘왕국’

공식 통계상 가장 많은 산재사망은 사고 사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 사망은 추락, 협착 등 재래형 사고 원인으로 인한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는 현재 한국의 산재사망과 관련된 현실이 얼마나 후진적인 것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이다. 특히 사고로 인해 죽어가는 노동자들은 건설업, 조선업, 금속제품 가공업, 기계기구 제조업 등에서 많은데, 이러한 산업은 호황기일수록 노동자들이 많이 죽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러한 산업의 기업들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 규모로 세계 10위권을 자랑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은 아직까지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팔아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대기업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데, 각종 언론 광고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홍보하며 이미지 만들기에 열심인 굴지의 대기업들도 노동자들을 죽음에 내모는 양상은 열악한 소규모 기업에 뒤처지지 않는다. 이러한 대기업들은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며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자신의 기업의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선진국의 기업들이 고용된 노동자의 권리와 생명을 보장하는 것을 사회적 책임의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건설기업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한국의 건설기업은 관료, 지역 토호 등과 유착하여 환경을 파괴하고 부동산 가격을 올릴 뿐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와 생명을 앗아가는 데도 으뜸이다. 2006년 한 해에 건설업 단일 업종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가 542명이다. 이는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의 41%에 달하는 수치이다.

노동자 사망 방치한 정부도 공범

기업의 눈치를 보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정부도 노동자 살인의 공범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들은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건강검진과 산재보험과 관련된 최근의 상황은 현재 한국에서 노동자 건강과 생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노동자 건강진단이 총체적 부실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건강진단 기관들이 기업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허위 진단과 부실 검진을 실시한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졌다. 이들 중 어떤 기관은 의사가 아닌 사람이 노동자를 진찰하기도 했다는 데 이는 명백한 사기 행위이다. 이는 행정 처벌 대상이 아니라 형사 처벌의 대상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고, 상처가 곪을 대로 곪아 이제는 대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수술을 하겠다고 메스를 들었다. 물론 이제라도 메스를 든 것은 가상하다고 할 일이지만, 과연 든 칼로 무라도 자를지, 제대로 상처를 도려낼지도 지켜볼 일이다.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산재보험법 개정안 역시 노동자 건강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어느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산재보험은 모든 노동자가 산재를 당했을 때 부담 없이 치료 받고, 치료 받는 동안의 생활 유지를 위해 안정적 급여를 제공하고, 적절한 재활을 통해 원직장에 하루빨리 복귀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노동자들의 근본적 개혁 요구는 외면한 채, 재정 절감을 위한 급여 축소와 생색내기용 제도 개선으로 이루어진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의 산재보험 제도는 산재노동자들이 충분한 치료를 받고 직장에 복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업주 처벌 미흡 등 정부대책 부실

그간 우리는 끊임없이 노동자의 산재사망 문제가 심각하고 그 규모가 가공할 만한 것임을 지적해 왔다. 경제 규모면에서 세계 10위권이라는 자랑이 무색하게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아직도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이는 기업과 정부가 합작하여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일관하며 노동자의 희생을 발판 삼아 경제 성장을 지속하려는 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기업을 감독하고 법 위반에 대해 강력히 처벌하기보다는 기업 활동 위축 가능성을 얘기하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행동만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이 문제에 대해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노동안전보건 운동 단체와 노동조합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 온 결과, 노동부는 지난 2005년 5월 ‘사망재해 예방대책’이라는 것을 내어 놓았다. 이러한 대책이라도 끌어낸 것은 그나마 그간 운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매우 부실한 대책이었다.

사망재해 예방대책은 건설·제조 사망재해 다발작업 중점관리, 사망재해예방 홍보활동 강화, 사망재해 발생시 제재 및 감독 강화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이 대책이 발표되었을 당시, 이 대책은 문제 해결을 위해 핵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이 빠지거나 매우 미흡한 수준으로 포함된 대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산재사망을 줄이기 위해서는 산재사망을 일으킨 사업주를 강력히 처벌하는 제도가 마련되는 것과 동시에, 노동자가 참여하고 개입하는 구조가 실질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 대한 대책은 미진한 채, 캠페인과 홍보 중심의 대책이 남발됨으로써 실질적으로 산재 사망을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산재사망 통계상 감소, 은폐 가능성은?

그런데 과연 그러한 정책의 결과 산재사망이 줄었을까? 통계상으로는 약간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노동부가 발표한 2006년 산재 통계를 보면, 2005년 산재사고 사망자수는 1,398명이었는데, 2006년 산재사고 사망자수는 1,333명으로 65명이 줄었다. 그리고 이를 산재보험 가입 노동자수로 나누어 계산한 산재사고 사망률 역시 2005년 1.26에서 2006년 1.14로 0.12포인트 감소했다. 이를 두고 정부는 정부 정책의 효과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면밀히 따져 봐야 한다. 위험한 작업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됨에 따라 산재사망이 더 은폐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선 먼저 따져 봐야 한다.

우리가 이와 같이 정부의 산재사망 대책 효과 홍보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내는 것은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예방대책에는 핵심 대책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업주 처벌 강화와 관련해서는 산안법에 산재사망을 일으킨 사업주를 가중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되긴 하였으나, 이러한 조항이 산안법에 신설되어서는 실제 가중 처벌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법정에서 산안법 위반은 경범죄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산안법 문구에 아무리 처벌 조항이 강화되어도 실제 양형은 가볍게 내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어서는 실질적으로 처벌에 의한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리고 말로는 사망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에 대해 집중 감독을 시행하겠다고 하였지만, 현재 노동부의 기본적인 노동안전보건 감독 정책이 ‘노사 자율’에 의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지향하고 있는 상태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진행되었을지 의문이다. 더불어 사실 지역 차원에서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근로감독관과 사업주와의 유착 관계에 대한 척결 의지가 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감독관이 주요 감독 업무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산업안전보건 관련 감독이 제대로 이뤄졌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노동자 참여·사업주 처벌 강화 등 절실

예방대책이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고 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대책에 노동자 참여와 개입을 활성화하는 정책이 단 한 줄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는 노동자 몇 명 쯤 죽는 게 대수냐고 생각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업주에게 자율적으로 산재사망 예방 활동을 벌이라고 교육하고 캠페인 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사업주 자율에 맡겨 놓아서는 백날이 지나도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세계 여러 나라의 예가 증명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해당 사업장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노동자가 자신을 해칠 수 있는 노동조건에 대해 감시, 개입하고 발언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러한 권리가 사업주에 의해 침해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협하거나 침해한 사업주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렇게 쉽고 명확한 대책을 두고, 괜한 돈을 들여가며 효과가 불분명한 정책을 계획하고 수행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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