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열람되는 자료는 3급 비밀로 분류되어 관리 중이며 열람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23일 낮, 국회의사당 2층 236호.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 사무실 맞은 편 한미FTA특위 자료실 바깥 풍경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민주노동당과 인근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등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와 똑같이 자료실 앞으로 오갔다.

그러나 바깥의 평온한 분위기와 달리 자료실 내부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곳에서는 사실상 23일부터 ‘3급 비밀’로 분류된 400여쪽에 이르는 한미FTA 일부 문건 공개가 이뤄지고 있었다.

정부는 ‘공개’라고 했지만 사실상 ‘공개’라고 부르기는 어색하다.

일단 자료실 출입 자격이 까다롭다. 국회 통외통위와 한미FTA특위 위원, 비밀취급 인가를 가진 보좌관 각 1명만 출입이 가능하다. 이들은 신분확인을 거친 다음 핸드폰이나 소지한 자료를 모두 물품보관대에 맡긴다. 이어 열람한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일반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비밀엄수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열람 절차도 까다롭다. 한미FTA 기획단 소속 직원이 컴퓨터를 켜 주면, 이들은 모니터로만 문건을 봐야 한다. 간단한 메모를 제외한 일체의 복사와 판사, 카메라 촬영, 컴퓨터 저장 등이 금지된다. 눈으로 본 내용도 외부에 유출해서는 안 된다. 자료실 안에는 CCTV가 설치돼 의원들과 보좌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한미FTA기획단은 “미국과의 신뢰 때문”에 이같은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단은 자료실 앞에 붙인 안내문에서 “협정문안은 한미 양국의 공동자산이고, 정식공개는 문안의 구조나 문구를 수정하고 양국간 상호법률 검토 과정을 거쳐 양국이 최종 합의하는 5월 중순 이후에 이뤄질 것”이라며 “정식공개하기 전에 유출될 경우에는 한미 합의사항 위반으로 양국간 신뢰관계에 손상을 가져올 수도 있는 사안이므로 양해해 달라”고 밝혔다.

정부가 이처럼 사실상 ‘기억’에만 의존하게끔 자료를 공개하는 등 이중삼중의 철저한 보안을 강조하면서 협정문 일부를 공개하자 한미FTA에 반대하는 의원과 정당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미FTA반대 의원들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자료열람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말이 협정문 공개이지 협정문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에 마지못해 하는 생색내기 공개”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한미 FTA 협정문에 대해 정부당국 또한 당당하지 못함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알맹이는 숨긴 채 껍데기만 보라고 하는 정부당국의 이러한 태도는 한미 FTA 타결 내용이 하나 둘 공개되면 대국민 기만에 이어 치졸하다는 평가까지 덧붙여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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