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홍길동, 특수고용 = 위장자영업자

화물연대 트럭운송노동자, 레미콘·덤프트럭 건설운송노동자,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설계사), 간병인, 애니메이터, 택배운전기사 ……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노동조합을 노동조합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들. 그들의 이름은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는 '위장 자영업자'들이다. 이놈의 세상이 워낙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세상이다보니, 저놈들은 무엇이든 '위장'해야만 직성이 풀리나 보다. 간접고용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위장도급'이란 형태로 불법파견을 은폐하고 있으며,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위장둔갑시켜 놓았다.

처음부터 특수고용이었던 것이 아니다. 이들은 본래 레미콘회사, 화물운송사, 학습지회사의 정규직 노동자였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화물·덤프트럭, 레미콘차량을 강제로 불하하고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오라 하더니, 그때부터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며 특수고용직이 되었다. 학습지회사가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탁계약·도급계약으로 계약형태를 강제로 바꾸라 하더니 그때부터 특수고용직이 된 것이다. 보험모집인, 애니메이터, 골프장 경기보조원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노동3권 박탈시키려는 이유

“운전대 잡으면 적자인생에 신용불량자요, 더러워서 운전대 놓으면 실업자에 노숙인생”
화물·덤프 운송기사들이 1년이면 몇십명씩 자살을 한다. 일을 해도 빚만 늘어나는 생활에 과로와 스트레스로 수십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죽어간다. 뛰어오르는 기름값과 차량할부금과 유지비용은 온전히 운송기사들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할수록 빚이 늘어나면 그만두면 되잖아?” 속도 모르는 소리다. 일 그만두면 한달에 수백만원씩 들어가는 차량할부금은 안내도 된다던가? 더러워서 운전대 놓는 순간 노숙인생이 시작된다. OECD 클럽 내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달리 생긴 것이 아니다.

억울하고 비통해서 노동조합을 만들면 “당신들은 사장들이니까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교섭조차 받아주질 않는다. 사용자들이 정규직을 특수고용직으로 전환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노동자성을 부정하여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는 것! 노동기본권을 박탈함으로써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일만 하는 노예제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교직원노동조합법‘ ‘공무원노동조합법’으로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합법화의 길이 트이기도 했지만, 이 법들은 공무원과 교사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강행통과된 노사관계 로드맵으로 인해,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직권중재가 폐지되는 대신 대체근로가 허용되게 되므로 사실상 단체행동권이 무력화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100만 공무원과 60만 교사 노동자들에게 단체행동권이 부정되어 있고, 곧이어 40만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이 무력화될 위기에 있으며, 200만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조차 노동3권이 부정된다면, 이 땅 1,300만 노동자들 중 무려 30%가 넘는 400만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박탈당하게 된다.

노동3권이 박탈되는 노동자들을 점차 늘림으로써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을 포위하여 고립시키는 것!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단체들이 지금 특수고용직 보호방안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성이 분명한 노동자 기본권까지 박탈

아니나 다를까 지난 3월30일 국가인권위 토론회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현장의 노동실태를 얘기하며 차량에 GPS까지 설치하며 사용자가 직접 관리·감독하고 있는 현실을 얘기하자 토론자로 나선 경총 최재황 정책본부장은 "레미콘의 특성상 GPS 설치는 물건의 하자 관리 엄격화 차원에서 좋게 이해하셔야 한다"며 얼토당토않는 답변을 늘어놓았다. 이게 관리·감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다시말해 사용자단체는 단순히 특수고용직 노동3권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 명백한 관리·감독으로 노동자성이 분명한 노동자들의 기본권까지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경우, 주유소 사장이나 체인점 지배인, 판매대리인 등 이른바 '경제적으로 종속된 자'에게까지 노동기본권과 사회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다. 다시 말해 외국의 경우 주유소 사장이나 체인점·편의점 지배인(사장)에게 노동기본권을 확대적용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되는 방면, 한국의 경우에는 주유소나 체인점·편의점 사장은커녕 거기에 물품을 실어 나르는 탱크로리·화물·택배 운송기사의 노동기본권마저 부정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지난 7년간 특수고용 노동3권 보장을 위해 인생을 바쳐 싸우다 지금은 수원구치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있는 특수고용대책회의 박대규 의장이 토론회 때마다 힘주어 강조하던 말이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단체는 아예 귀를 틀어막고 있다.

레미콘 운송기사들은 2000년에, 학습지교사들과 애니메이터들은 1999년에, 골프장 경기보조원들 역시 수년 전부터 노동사무소 또는 관할구청에서 노조설립필증을 교부받아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도, 이들의 노조활동조차 빼앗겠다는 것이 정부와 사용자단체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특수고용직 보호 유일 대안은 노동법 적용

정부와 사용자단체들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듯이 사업주들이 특수고용직에게 강요하는 부정영업·대납강요·불법상품판매강요·불공정계약관행을 없애는 것은 절실한 요구이다. 그러나 이것을 개선하는 방법, 다시 말해 대납강요, 불공정계약과 같은 사업주의 횡포를 막아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러한 횡포를 저지르는 사업주에 맞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저항하고 반대할 힘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실질적인 보호방법이다. 다시 말해 특수고용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동관계법을 적용하여 노동조합 결성·조직화와 활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집단적 노사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화물트럭 운송노동자들이 화물연대를 결성하여 2003년 5월 물류파업을 조직함으로써, 화주와 화주연합회의 불공정계약관행을 타파하고 화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운송료 교섭을 통해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내었다.

또한 덤프트럭 운송노동자들은 전국건설운송노조 덤프연대를 결성하여 지난해 3차례의 총파업으로 부당한 과적법을 개정하도록 하였고, 레미콘 운송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여 건설업 불법다단계하도급의 원흉인 ‘시공참여자제도’를 폐지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학습지재벌 눈높이대교가 지난해 2월 노조 지부장을 해고하자, 학습지산업노조가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대교본사 앞에 천막농성을 시작한 이래 3억원대 손배가압류, 위원장 구속 등 엄청난 탄압에도 무려 300일에 달하는 농성으로 끝내 대교 측이 지부장 복직요구를 수용하였을 뿐 아니라, 학습지업계의 고질병인 부정영업 근절의 의지를 밝히게 되었다. 노동조합으로 뭉칠 수 있었기 때문에 대교라는 학습지재벌조차 스스로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고 학습지업계의 고질병인 부정영업 근절을 선언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듯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사업주의 부당한 대납강요, 불공정계약에 맞서 싸우고 제도를 개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집단적으로 단결하여 싸웠기 때문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는 길만이 이러한 불법으로부터 특수고용직을 보호하는 길인 것이다! 

5~6월 특수고용노동자 몸부림은 계속된다

법무부장관은 기업주들에게 “불법파업으로 이익을 얻을 수 없도록,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며 노골적인 친자본 행각을 펼친 지 4일 뒤에 수천억을 횡령한 혐의로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이 실형 3년을 언도받고도 법정구속이 되지 않은 반면, 10일 뒤에는 여수에서 이주노동자 10명이 불에 타 떼죽음을 당하는 세상! 경총과 사용자단체들은 이런 세상을 두고서도 “정부가 친노동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노동자의 이름조차 빼앗긴 우리들. 그렇다! 우리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홍길동이다!

서자 출신은 관리등용을 제한한다는 조선시대 악법 때문에 좌절과 울분 속에 지내다가, 억압받던 민중들을 규합하여 활빈당을 만들고 신분타파·만민평등을 위해 싸운 홍길동!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노동조합을 노동조합이라 부르지 못하는 기막힌 세상, 특수고용직이란 신분을 타파하고 평등세상을 위해 싸우는 우리가 바로 현대판 홍길동이 아니겠는가!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투쟁은, 지난 수년간 교사와 공무원 그리고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박탈되어오던 흐름을 뒤바꾸려는 ‘가장 낮은 곳 노동자들’의 아름다운, 그러나 처절한 몸부림이다. 정부와 사용자단체들은 - 죽어도 보기 싫겠지만 - 5월, 6월에 그 몸부림 앞에 다시 서야 할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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