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의 산별임단협 안건으로 논의되고 있는 영업시간 단축 의제가 오는 26일 중앙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되기도 전에, 여론의 집중적인 비판에 직면했다.

그러나 금융노조는 당초 내부 논의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가까운 여론의 비난을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큰 동요는 없었다.

오히려 금융노조 내부에서는 '한미FTA 비준 저지' 투쟁 국면에서 확정되지도 않은 금융노조의 영업시간 단축 의제가 조기에 여론화 되면서, 노동자·민중 진영의 투쟁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하지만 영업시간 단축 의제는 근무시간정상화를 외치는 현장노동자들의 빗발치는 요구를 수용해, 근무시간정상화의 유력한 방법으로 금융노조가 줄곧 고심해 온 의제이기 때문에, 산별임단협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정면으로 돌파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금융노조는 영업시간 단축 의제가 여론화 되는 것은 금융노동자들의 악화된 노동조건은 물론, 과도한 실적할당, 성과주의 문화, 주주이익극대화 논리에서 파생되는 단기업적주의, 은행 간 과다경쟁 등 비정상적으로 흐르고 있는 한국 금융산업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 아래로부터의 요구, 근무시간 정상화 = 금융노조는 산별임단협 의제를 채택하기 위해 산하 지부의 의견을 수렴한다. 올해 산별임단협 의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현장에서는 살인적인 노동강도 완화를 요구하는 현장노동자들의 의견이 빗발쳤으며, 주된 요구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로 압축됐다. 영업현장은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인원 구조조정의 여파로 인력이 부족했으며, 점포는 은행 간 경쟁의 여파로 늘어만 갔다. 실제 오후 10시를 넘는 비정상적인 퇴근이 일상화되면서 동료노동자들 중 돌연사, 각종 암에 시달리는 노동자도 속출했다. 이에 따라, 금융노조는 물론 산하 각 지부에서도 근무시간정상화 논의가 올해 들어 급물살을 탔으며, 근무시간정상화의 유력한 방법으로 영업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형성하게 됐다.

◇ 금융산업 문제점과 얽혀 있는 의제 = 영업시간 단축 의제가 공론화 되면서,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금융노동자가 도대체 왜 영업시간 단축을 외치는지" 주목하는 효과도 있다.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은 주5일제 시행을 주장했던 당시처럼 반대여론이 우세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자들의 요구에도 목소리를 기울일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근무시간 정상화를 위한 영업시간 단축 주장은 시중은행의 외국자본 지분율이 76%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주주를 위한 단기업적주의, 이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실적강요는 물론, 경영진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스톡옵션 등의 이슈와 얽혀 있어, 외환위기 이후 무너지고 있는 금융공공성 등 비정상적인 한국 금융산업을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금융노조의 진단이다.

◇ 영업환경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 = 금융노조는 또 이미 은행 영업 환경이 인터넷뱅킹, 자동화기기 이용 등 비대면 채널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실제 영업점 창구를 이용하는 비율은 22.7%에 불과해 내점 고객에 대한 창구응대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감소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외환거래 시간이 종전 오후 4시에서 오후 3시로 단축, 시행되고 있다는 점, 일본과 캐나다 각각 오후 3시, 영국 오후 3시30분 등 해외사례도 설득력을 갖게한다는 게 금융노조의 주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난해 금융권 종사자 실태조사 결과, 외환위기 이후 전체 응답자의 77.1%가 외환위기 전에 비해 노동강도가 강화됐다고 응답한 점, 주5일제 시행 이후 월간 휴일근무 일수가 2일 이상인 사례가 75.9%에 이르고 있는 점 등이 금융노조가 영업시간 단축을 제기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신한은행노사는 지난 달 15일 근무시간정상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노사 공동으로 근무시간정상화의 해법 찾기에 나서고 있다. 기업은행노사도 지난 달 말 노사 공동으로 특위를 구성해 활동에 들어갔다. 이처럼 근무시간 정상화는 사용자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안을 찾아야 될 시점까지 왔다고 판단,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근무시간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득연 조흥은행지부 정책국장<사진>으로부터 영업시간정상화를 어떻게 보는지 들었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민들은 영업시간 단축을 근무시간 단축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오후 4시30분에 영업점 문을 닫아도 실제 은행원은 2시간 정도의 업무 마감을 한 뒤, 오후 6시30분 내지 7시부터 고객관리업무에 들어간다. 저녁식사를 하고 야근에 들어가면 오후 10시, 11시 이후 퇴근이 다반사다. 은행 복무규정상 근무시간은 9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로 되어 있다. 과거 고객관리를 하지 않던 시기에, 영업점 문을 내린 후 마감시간 2시간을 더해서 만든 규정이다. 그러나 마감시간 이후 시작되는 고객관리 업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엔 동전교환 전담 창구가 있었고, 빠른 창구(단순 입출금담당) 직원 수가 5~6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동전교환 창구는 오래전에 없어졌고 빠른 창구 직원도 2~3명 정도다. 상대적으로 상담창구업무가 큰 폭으로 확대됐고, 은행업무의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한다. 오히려 내점 고객 수는 감소하고 있으며, 자동화기기, 인터넷뱅킹 등으로 비대면 고객업무서비스가 급증하고 있다. 창구변화의 맥락을 반영한 것이 영업시간 단축 주장이다."
 


- 주5일제가 2002년에 시행됐고, 은행은 오후 4시30분에 영업점 문을 내린다. 국민들은 주5일제를 하고 오후 4시30분에 은행원들이 퇴근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퇴근시간은 각 은행, 지점마다 편차는 있다. 그러나 보통 10시 전후로 퇴근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점에 따라선 11시 이후도 많다. 9시30분부터 영업점 업무가 시작되는데, 아침에도 각종 업무 연수, 회의, CS(고객만족) 훈련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직원들이 오전 8시에 출근한다. 오후 11시까지 근무를 한다고 하면, 은행에서 15시간 정도의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8세기 초 산업혁명 초기 당시의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맞먹는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각종 질병으로 인해 모 은행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40대 전후 은행원 11명이 과도한 스트레스와 업무하중으로 인해 사망했다. 조기에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또 주5일제가 시행됐음에도 집단대출(아파트 분양 시 중도금 등을 일괄적으로 대출해주는 것) 등 지점별로 할당된 과도한 목표를 채우기 위해, 휴일에도 집단대출 섭외와, 사후관리(연체자 독촉)를 위해 실제 출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각자가 처리하는 업무 양 자체가 많기 때문에, 퇴근시간이 늦다. 점포당 인원 감소의 속도가 자동화나 내점 고객 수, 고객관리 등의 업무량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내점고객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더 빨리 은행원 수가 줄었고, 또 은행원들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마케팅 업무 외에도 부수적인 업무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 은행원들은 영업점 문을 내린 후, 무슨 일들을 하는지 궁금해 한다.
 

"4시반 이후 6시반까지 보통 마감업무가 행해진다. 그날 거래에 대한 집계, 입출금과 관련된 거래가 정확하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등의 업무를 한다. 또 각종 일일 결산서류(손님이 쓴 신고서 등 각종 장표)를 정리, 집계하고 발송하는 업무가 행해진다. 이후 저녁식사를 하고, 기일이 도래하는 예금이나 대출 고객들에게 기일 도래 사실을 통지하고, 각종 상품에 대한 정보제공, 권유 등의 고객관리 및 마케팅 업무를 한다. 또 마케팅 내용을 기록하고 집계하는 등의 업무도 행해진다. 각 사업본부에서 요청하는 캠페인과 보고서 등을 작성하고 지점별 실적을 점검한다. 실적을 높이기 위한 대책회의 자료 등을 만드는 일도 행해진다. 그러다보면 오후 10시를 훌쩍 넘는 경우는 기본이고, 11시를 넘는 경우도 다반사다."
 


- 여론의 비난이 많다. 금융노조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될 것으로 보나.
 

"영업시간 단축이 결국은 고객들에 대한 양질의 금융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영업시간 단축으로 은행 측도 생산성 향상에 궁극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는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을 경영진에게 충분히 설득해 나가야 한다. 고객 불편에 대해서는 노사 간에 공동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 주5일제 시행 당시, 거점점포나 전략점포를 운영해 일부 점포에선 아직까지 주6일제 근무를 시행하고 있고, 9시30분 이전에 문을 열고 오후 4시30분 이후까지 영업을 하는 점포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런 면에서 고객불편이 예상되는 부분에 대해선 노사 간에 충분한 대책을 세워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야 될 것이다."
 


- 영업시간 단축요구가 고임금 노동자의 배부른 요구 정도로 호도되고 있다. 어떻게 해석하나.
 

"임금보다 삶의 질이 더 중시되는 사회에서 하루 15시간의 노동과 각종 질병으로 인한 본인 사망이 사무직에서 높다는 것은, 은행원들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임금을 떠나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이 배부른 자들의 호사스러운 요구로 비춰져서는 안된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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