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운영법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후 시행령 제정까지 마치고 이달 1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새로운 공공기관 운영시스템을 규정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기존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과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은 이날로 폐지됐다.

기획예산처=‘공공기관 지주회사’

공공기관운영법은 한마디로 기획예산처에 의해 만들어진, 기획예산처를 위한 법이다. 기획예산처는 자신들의 장관이 위원장인 공공기관운영위를 통해 공공기관의 외부지배구조(소유권 기능)를 일원화함은 물론 사장과 이사, 감사 등 임원 임면권을 행사해 내부지배구조까지 장악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각 공공기관이 수행하는 기능의 적정성을 점검해 공공기관 통폐합, 기능재조정, 민영화 계획 등을 수립할 수 있는 근거도 명시했다.

이것은 기획예산처가 공공기관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사실상의 ‘공공기관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됨을 뜻한다. 이것이 공공기관운영법의 본질이다. 당초 2005년부터 기획예산처에 의해 주도된 논의도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었고, 이를 법제화 한 것이 공공기관운영법이다.

명분은 간단했다. 공공기관의 부실·방만경영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내 각 부처에 산재해 있는 공공기관 경영 감독기능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무부처와 각 공공기관의 이해관계 유착으로 주무부처가 공공기관을 옹호하거나, 공공기관이 주무부처의 이익을 대변하는 폐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기획예산처로의 지배구조 일원화는 힘을 얻었다.

공공기관 지배구조 완전 장악

결국 공공기관운영법을 통해 기획예산처는 인력·예산·재무건전성 등 공공기관의 경영 전반에 대한 감독권을 갖고, 주무부처는 사업수행에 관한 감독권을 갖는 것으로 정리됐다. 인력과 예산에 따라 사업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300여 개 공공기관의 모든 것은 기획예산처의 통제 아래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획예산처는 공공기관운영법을 만든 목적을 ‘공공기관의 자율경영 보장’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실제 공공기관운영법에는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체제 확립에 필요한 사항을 정해 경영을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것이 법 제정 목적으로 명시돼 있다. 또한 ‘정부는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도 따로 있다.

기획예산처가 내·외부지배구조를 모두 장악하고, 경영 전반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자율경영 보장’은 그야말로 수사에 불과하다. 예산편성지침을 통해 초기 단계부터 경영계획을 통제하고, 인건비조차 임금가이드라인으로 묶어버리고, 사후 경영평가와 그 결과에 따른 성과급으로 과정과 결과까지 통제하는 구조가 더욱 강화되는 마당에 공공기관운영법의 목적이 ‘자율경영 보장’이라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힘들다. ‘자율경영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조항은 공공기관운영법과 시행령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목적은 ‘자율경영’, 실상은 ‘통제’

그동안 노동계는 공공기관운영법 제정을 통한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내·외부 지배구조에 노동계가 참가해야 함을 기획예산처에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구체적으로는 공공기관운영위와 각 공공기관 이사회, 임원추천위원회에 노동계 또는 노조 대표의 참가였다. 이것은 공공기관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이자 기획예산처를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였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이사회 참가는 법에 한 줄도 반영되지 않았다. 공공기관운영위와 임원추천위 참가는 근거는 마련했지만 노동계 또는 노조 대표의 ‘직접 참가’까지는 가지 못했다.

공공기관운영법이 시행된 마당에도 여전히 기획예산처와 노동계는 이 문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노동계 또는 노조가 추천하는 인사를 공공기관운영위와 임원추천위에 참가시키겠다는 입장이고, 노동계는 현직 임원이나 노조 대표가 직접 참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기획예산처가 2일 오전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첫 회의를 연다. 법에 명시된 노동계 위원 참가를 매듭짓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소집이기 때문에 노동계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직접 참가’ 마지막 쟁점

공공기관운영법 시행에 따라 기존 정부투자기관과 정부산하기관 등으로 나눠지던 공공기관들은 유형부터 새롭게 분류되고, 이에 따라 기존의 예산편성지침과 임금가이드라인, 경영평가기준 등 각종 지침과 기준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 와중에 기획예산처장관은 연초부터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언급했고,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도 연내에 마무리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때를 맞춰 기획예산처 직제개편과 함께 공공기관을 담당하는 공공혁신본부의 조직과 인력이 대폭 보강됐다. 공공기관운영위의 사무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조치다.

공공기관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기획예산처의 움직임이 시작됐고, 그 권한은 공공기관 통폐합과 민영화까지 포함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사관계가 예사롭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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