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이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재난을 보는 철학에서 비롯된다. 국가기반시설을 지정해 재난에 대비하고 신속하게 재난사태를 선포해 동원을 쉽게 한다는 명목이지만 거기에는 파업에 대한 거부감이 깊숙하게 침투해 있다. 바로 자연·인적 재해라는 기존 재난 개념에 ‘사회적 재난’을 끼워넣은 것이다.

재난안전법 개정안이 처음 국회에 회부된 것은 지난 2005년 11월이다. 당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검토 뒤 지난해 4월 검토보고서를 내 놓았다. 보고서는 “소방방재청이 출범된 이후 재난업무 중 인적재난·자연재난의 경우는 소방방재청이 업무를 추진하고 사회적 재난(철도파업 등)의 경우에는 행정자치부에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업무구분과 책임소재를 보다 명확히 구분하여 규정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시각은 행자부가 지난해 보고한 ‘2007년도 국가안전관리 집행계획’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행자부는 집행계획에서 관리해야 할 재난으로 화물연대 파업은 국가기반체계를 마비시킨다며 통신망 마비와 전염병과 함께 들고 있다.

급기야 지난 1월말에는 오는 7월 법 시행을 예고하며 국가기반시설에 현대·기아차 등 29개 민간시설이 포함됐고 파업 때 대체인력을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행자부는 부랴부랴 대체인력 투입 등에 관해서는 ‘재난관리법’보다 노동관련법이 우선이라고 해명하는 등 진땀을 뺐다.

이런 흐름 속에서 결국 국가기반시설을 지정하는 기준을 정하고 필수공익사업의 범위를 구체화한 것 자체가 우려스럽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당장 민간사업장에 파업 때 대체인력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이는 여론이라기보다 법리에 맞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하도록 법이 바뀐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는 오히려 더욱 범위가 구체적이고 명확해진 것이 그 방증이다.

이는 노동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현재 노동부는 필수업무유지제도와 관련 TF팀을 꾸리고 지난 2월부터 5개 분과로 나눠 협의를 하자고 민주노총에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TF팀에서 논의해야 할 내용이 재난안전법 시행령에 먼저 담기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노동계가 “TF팀에서 더 논의할 꺼리가 없지 않느냐”고 비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가기반시설 지정 범위를 공익을 위해 필요한 부분으로 한정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법에서 상충되지는 않지만 오해를 살 수 있는 사안이라 쟁의행위가 재난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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