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용산역은 한가한 편이다. 평일, 그것도 월요일이라 그럴 것이다. 역사 한편에 ‘외주위탁 철회’ 같은 푯말로 울타리를 친 농성장이 보인다. 제법 넓다. 사람들은 뚫어져라 푯말을 쳐다보고는 지나치길 반복한다. ‘서울역’이라는 글자 위에 덧씌운 ‘용산역’, 그 뒤에 ‘농성 100일째’라는 말이 뒤따라와 기둥에 달라붙어 있다. 그간 쫓겨다녀야 했던 승무원들의 처지를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 승무원들이 천막을 친 곳은 서울열차사무소 앞이었다. 지난해 12월17일 농성을 시작하면서 내건 구호는 ‘외주화 철회와 전원 재계약’이었다. 이들은 11월부터 계약만료 통보서를 받고 KTX관광레저로 적을 옮기겠다는 ‘전적동의서’ 작성을 요구받았다. 전적동의서를 쓰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게 철도공사의 방침이었다. 이은진 새마을호 승무원 대표의 말이다.

“비정규직인데 다른 회사로 가라면 가야 할 것 아니냐는 말이에요. 우리는 승무원을 하고 싶어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승무업무를 하려면 간접고용직으로 가거나 아니면 다른 일을 하라고 했어요. 공사는 알리지도 않고 갑자기 이런 일을 통보했어요. 공사는 속였고 우리는 권리를 빼앗긴 거죠.”

KTX관광레저의 정규직이라는 철도공사의 주장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고용이 보장되지 않은 정규직”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는 같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KTX 승무원들의 예를 들었다. 철도유통(옛 홍익회) 소속일 때 처음 3년 계약을 했다가 승무원 문제가 터지고 나서 철도공사가 2년 만에 계약을 파기했고 KTX관광레저와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어요. 직접고용 비정규직도 계약서에 단체활동을 하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조항이 있을 정도인데요.”

새마을호 승무원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인 물품판매 문제도 철도공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근거로 제시됐다.

“철도공사는 승무원에게 물품판매를 시키려고 했다가 우리가 막으니까 연기했어요. 물품판매는 하고 싶은 사람만 하라고 말했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철도공사가 관광레저로 이 일을 이관한다는 얘기가 요새 다시 들리더라고요. 판매를 하면 원래 업무인 고객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게 돼 있습니다. 정말 철도공사 정규직 한 명이 고객 안전을 모두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겁니다.”

이와 관련, 철도공사는 실제로 철도유통이 맡고 있던 업무를 물품판매 업무를 KTX관광레저로 이관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 마친 1차 현장순회에 대해서 그는 “힘을 얻었다”고 했다. 하나는 철도노조 조합원으로부터, 또 하나는 KTX 승무원으로부터라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낮에 집회를 하고 밤에는 문화제를 했어요. 대전역사에서는 노숙을 했는데 처음으로 KTX 승무원들과 밤을 지새웠어요. 승무원들의 저력을 느꼈어요. 지치지도 않았고 정당성에 대한 확신은 너무 선명했어요.”

이은진 대표는 며칠 전 꾸었다는 꿈 얘기를 들려준다. 문자 그대로 오매불망, 승무원 정복을 입고 새마을호를 타는 꿈을 꿨다고 했다. 그런데 빨리 나오라는 소리를 듣고 후다닥 나갔는데 제복을 제대로 입지 못해 어설펐단다. 챙겨야 할 시간표도 없고, 일지도 손에 없어서 어떡해 할지 몰라 바둥댔다고 한다.

“깜짝 놀라서 잠을 깼어요. 꿈이라지만, 글쎄 그렇게 오래 했던 승무원 일을 다 까먹은 거예요. 정말 슬펐어요.” 며칠 전 꾸었던 꿈 얘기를 들려주는 이은진 새마을호 승무원 대표의 목소리가 무겁다.

“이제는 날짜 개념도 없다”고 하니 100일은 허망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잃어버린 100일을 기념하듯 꾼 꿈에서 허둥지둥 했으니 마음이야 오직 아팠으랴.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떠나간 동료들이 재잘거리며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요. 솔직히, 요새 부쩍 농성을 그만 두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해요. 일자리를 구하고 다시 뭔가 시작할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죠.”

하지만 그 뿐. 그는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강한 희망감을 내내 표출했다. 강한 반어법을 섞어서 말이다. 예를 들어 그런 것이다. 꿈 얘기 뒤엔 “꿈은 반대라잖아요”하곤 너스레를 떨고 힘이 빠졌다는 말을 해놓고 “산을 오르다보면 끝자락 쯤 가다가 힘들 때가 있잖아요. 지금이 그 때인가 봐요”라고 말하는 거다.

이 역설은 오히려 은근히 그의 열망을 드러낸다. “다시 빨리 열차로 돌아가서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답도 해야 하는데. 보답이나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승무하다보면 힘들 텐데, 연대하러 가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걱정도 들고요.” 그리곤 말한다. “정말 평범하게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요. 영화관도 가고 여행도 가고···.”

<매일노동뉴스> 2007년 3월 28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