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은 출혈경쟁이라는 외생변수와 노동자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목표라는 내생변수가 작동하고 있다. 국내적으론 마케팅 대상이 거의 고갈된 현실은 아예 무시된다. 노동자들은 목표를 채우기 위해 영업시간 이후에도 늦게까지 남아 마케팅을 하고 있다.”
금융노조 신한은행지부 이건희 위원장(사진)은 은행노동자들의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근원적인 이유를 이와 같이 진단했다. 블루오션이 없는 국내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은행원들에겐 과도한 목표가 부과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와 같은 진단은 노조가 취해야 할 문제해결의 방향성을 암시한다.

한편으론 경영진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 직원들에게 할당된 목표를 완화시키는 것이다. 다행히 노조가 그리고 있는 방향과 은행측의 계획이 일치하는 것이 있다. 신한은행은 국내시장에서 뺏고 뺏기는 영토싸움을 펼치기보다 해외시장을 찾아 사업기회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건희 위원장은 “신한은행은 해외시장 개척으로 눈을 돌리고 업종을 다양화하고 있기 때문에 근무시간 정상화는 향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직원들에게 부과된 목표를 완화시키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자본주의 태내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조에서 비정상적인 퇴근시간을 더 이상 방치할 순 없다.

“근무시간정상화를 최우선순위로 놓고 노사가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예컨대, 부서장 평가 항목에 근무시간 준수 여부, 퇴근시간 여부 등이 포함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지점장을 포함한 부서장들이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퇴근시간정상화는 공허한 외침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이 위원장의 판단이다. 그래서 일종의 ‘제도적 강제수단’들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근무시간 정상화를 위한 노사 간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15일엔 이건희 위원장과 이용규 조흥지부 위원장, 신상훈 신한은행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노사공동 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 위원장은 “근무시간 정상화와 관련된 가시적인 성과가 올해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건희 위원장은 또 육아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신한은행은 현재 1만500명의 정규직 직원 자녀 중 7세 이하 영유아가 4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올해 신한은행 자체적으로 보육시설을 설치할 것이라는 게 이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선 올해 안에 마무리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은행 ‘고유 업무’에 대해서는 차별적인 제도를 도입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정규직과 임금, 복지 등 모든 면에서 동일한 처우가 되도록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규직과 동일노동을 하는 비정규직들’에게 복지만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임금은 차등을 두는 방식의 정규직전환을 하지 않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단순사무보조, 콜센터 직원 등까지 무리하게 정규직화를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향후 인사제도 및 인력운용 방향을 고려하면서 비정규직 해결책을 모색해야 된다는 관점에서, 직군제 도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향후 5~10년 후엔 단순입출금 업무를 담당하는 빠른 창구가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빠른 창구만을 담당하는 직원을 별도의 직군으로 묶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은행원은 어느 한쪽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는 전문가들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직군으로 나누는 이유는 직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조건의 차별, 사람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직군제로 묶어내는 식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은행산업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단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한 것이라는 평가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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