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강제적으로 진행한 국제통화기금(IMF) 개혁조치의 목표는 월스트리트의 ‘자유로운 돈벌이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 것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외환위기 10년을 맞아 금융경제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 ‘IMF 10년의 회고와 대안’ 간담회에서 8일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첨단 금융상품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미국 월스트리트의 첨단 금융인들은 돈 놀이를 세계적 차원에서 확대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미국 정부가 금융업을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상정하고 가세하면서 자유로운 돈 놀이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칭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특히, 이 연구위원은 ‘IMF 10년’은 ‘자본시장 중심사회로의 이행’이었다고 결론짓고, 노무현 정권의 금융허브론은 ‘자본시장 지배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국가-기업-은행의 강제 이혼”

1960년대 이후 한국은 국가-기업-은행의 유기적 협조체제를 특징으로 했다. 이런 시스템은 자본을 철강, 자동차, 반동체 등 고수익-고위험 산업에 집중 투자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IMF와 김대중 정권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단기간 내에 이런 시스템을 뿌리 채 뽑았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외환위기 이전 기업 투자의 70~80%를 차지했던 은행대출은 IMF가 개혁으로 내세웠던 ‘부채비율 200%’ 달성에 묶여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을 모색해야 했다. 이 연구위원은 “은행과의 밀착관계를 단절하고 기업을 주식상품으로 전환시키라는 것이 IMF가 요구한 부채비율 200% 달성이었다”고 말했다. 기업이 은행과 결별한 대가는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상품이 됐다는 지적이다.

기업-은행 간 강제이혼을 부채질한 것은 BIS(자기자본비율) 8% 달성이었다. 은행들은 BIS 8%를 맞추기 위해 기업 대출금을 무차별적으로 회수했으며, 보유 주식을 주식시장에 내놓았다. 이 연구위원은 “은행들은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며 “이는 은행 역시 거래 가능한 주식상품으로 전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결국, 기업과 은행이 상품이 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와 사들이는 과정이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외국자본 주도의 경제개혁 과정이었다는 분석이다.

“상품화된 기업과 은행 거래의 국제화”

기업-금융 구조조정과 함께 IMF는 자본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한국 기업을 자본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작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진행됐다. 정부는 지배지분을 획득하기 위해선 주식의 상당부분을 공개매수토록해서 적대적 M&A(인후합병)을 까다롭게 만드는 장치였던 의무공개매수제를 폐지하고, 외국인이 국내 기업과 은행을 적대적 인수합병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밖에, 외국인에 의한 주식한도 폐지, 2조원 이상 자산을 가진 국내기업의 주식 취득시 정부의 사전 허가제도 폐지, 외국인들이 10%이상 투자할 때 대상 기업 이사회의 사전동의를 받도록 했던 규정 등을 폐지해 상품화된 기업과 은행들의 거래를 국제화 시켰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결론이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개혁은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전략산업에 과감히 투자하는 고부채-고성장 모델을 불가능하게 했으며, 은행 역시 안전성을 중시해 기업대출보다는 위험성이 낮은 가계대출을 선호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 연구위원은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저투자-저성장이 개혁의 결과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누구 손에 흔들리고 있나”

외환위기 이전 국내 대기업과 은행은 외국자본이 소유, 경영권을 사들일 수 없는 난공불락의 기지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금융시장은 돈을 빌려줘서 이자를 받는 것, 즉 예대마진 이외의 돈 놀이로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와 관련된 첨단기법을 이용한 금융상품 개발에 주력했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첨단금융기법의 핵심은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의 소유경영권을 획득하고 기업의 평가가치 변화를 조정, 그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잠재력은 있지만 유동성 위기를 겪는 바람에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싼 가격으로 사들여 지배주주가 된 다음, 인력과 설비를 정리하고 이 사실을 선전해 해당 기업의 주가를 띄워, 주식을 매각하면 예대마진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첨단금융기법의 메카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이며, 이와 같은 돈 놀이가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국에서 외환위기 이후 진행되고 있는 경제개혁은 이와 같은 돈 놀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며, 현재 금융허브론으로 압축돼 한국투자공사 설립, 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금융기관 아웃소싱법) 개정,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등이 일관된 흐름 속에서 구체화되고 있다고 이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이른바 자본시장 지배 사회를 위한 프로젝트가 실행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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