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공세, 고가시장에서 일본의 우세, 세계 철강사의 인수·합병 위협으로 인해 국내 철강회사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철강업종 노동자들이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철강업종 노조들이 나선 것은 국내 철강회사들이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만 몰두할 뿐 대책마련에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철강노동조합들의 모임인 '철강노조협의회'가 지난 9일 15개 철강사 노조들의 공동명의로 철강업종 발전을 위한 성명서를 채택했다. 철강관련 노조에서 철강산업에 대한 종합대책을 요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철강노조협의회는 먼저 정부차원의 대책 부재를 비난하면서 조속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유입에 따른 △유입현황과 피해실태 조사 착수 △불법 유입과 유통에 대한 단속 강화 등이다. 또 △정부차원의 원자재의 안정적 수급 대책 마련 △철강업체간 협력체계 구축 등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과당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철강업체에 대해서도 철강업종 살리기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협의회는 △과도한 출혈경쟁 중단 △철강산업 경쟁력과 고용안정 종합대책 △원자재 공동구매 △유통시스템 개선책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철강산업 발전과 종사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노사정 협의기구 구성을 요구했다. 협의회는 이같은 방향의 후속조치로 12일부터 16일까지 전국 철강사업장에서 이같은 요구안에 대한 서명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어 19~23일에는 서명결과를 발표하고, 정부당국과 철강협회에 간담회도 요청할 예정이다.

협의회 관계자는 “노동조합이 산업위기에 나서야할 만큼 상황이 긴박하다”며 “하지만 정부와 철강업체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1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철강노조협의회에는 현재 15개 노조가 가입하고 있다. 세아베스틸, 휴스틸 등 13개 노조가 한국노총 금속노련에 소속돼 있다. 한국제강, 세아제강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소속돼 있다. 박창옥 휴스틸노조 위원장이 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철강노조가 '산업살리기'에 나선 까닭
철강노조들의 공동행보는 국내 철강사의 공멸이라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중국산 저가 철강 공세와 기술개발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중국 철강재는 한국산에 비해 최대 20% 정도까지 가격이 낮다. 중국산 철강재의 국내 시장 장악은 철강산업은 물론, 국가 기간산업인 철강산업 정책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 지난해 중국이 자국 시장의 제품가격을 내린 다음, 국내 철강업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중국 철강시장에 따라 국내 시장이 뒤바뀌는 상황에 이른 셈이다. 고급 철강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에는 기술력에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업체는 기술개발보다는 가격 경쟁에 매달리고 있다. 국내 업체간 과당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냉연강판의 경우 국내 수요가 연간 676만톤에 불과하지만,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생산능력은 1천457만톤에 이른다. 출혈경쟁으로 인한 평균 수출가격이 톤당 296달러로, 지난 95년의 평균 501달러보다 40% 이상 낮아졌다. 업계에서는 ‘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비유하고 있다.


협의회는 “철강업체가 철강산업 사양화를 부추기고 철강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흔들고 있다”며 “출혈경쟁을 중단하고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와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철강노조가 산업 살리기에 나섰다. 양대노총 소속 15개노조가 뭉쳤다. 중국산 저가제품 유입에 따른 공멸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박창옥 철강노조협의회 상임의장은 "더이상 출혈경쟁에만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며 "노사정이 고사직전의 철강산업 살리기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창옥 의장은 현재 한국노총 소속인 휴스틸노조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조가 중국산 저가 철강재 피해 조사를 제기한 이유는.

"철강수요 산업인 제조업의 해외진출, 업계간 과당 경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범람은 철강산업 위기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 이런데도 정부와 업계에서의 대책은 전무하다. 이들에게 맡겨서는 철강산업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노조가 먼저 나섰다. 우리의 생존권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업계에서 먼저 대책을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경쟁관계에 있는 철강업체들에게 산업전반의 고민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철강업체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국가적으로 산업을 고민하기보다는 자기 회사 입장과 이해관계에만 매몰돼 있다. 공장이 없어지는 문제는 한 순간이다. 이로 인한 궁극적 피해자는 우리 노동자다."


-정부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했던데 이유는.

"단기적인 시각이 문제다. 올해 수급상황이 조금 좋아질 것이라는 분석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철강산업이 죽으면 국가경제가 죽을 수도 있다. 산업이 아니라, 경제부처 중심의 정부에서는 올바른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서명 작업과 중장기 대책을 요구했다.

"단기적으로는 산업의 존립기반을 만들자는 거다. 또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정부와 업계, 그리고 국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철강산업 발전모델을 만들고 싶다. 물론 철강산업의 위기로 인한 노동자의 고용불안 해소도 그 발단이 됐다. 철강사에 고용된 우리들이 나서는데, 정부에서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의 철강업종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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