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교란’인가? ‘현실적 선택’인가? 27일 최순영 의원을 통해 발의된 ‘학교회계직원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과 관련한 논란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기존 민주노동당의 입장과 차이가 있는 법안이 자당 의원의 손으로 발의된 것 자체가 문제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의 입법 프로세스의 문제를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정규직화”만 주창하며, 현실적 변수에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진보·노동운동 진영의 무능도 보인다.

“법은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27일 발의된 법안은 전국여성노동조합에서 주도적으로 만든 법안이다. 이 법안은 1년단위로 계약 갱신을 하고 있는, 10만명의 달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것이며, (10급 기능직 공무원 수준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법안이다. 핵심적으로는 상시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무기계약 근로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빈순아 여성노조 정책국장의 말이다. “이번 법안은 여성노조 조합원들의 지속적인 요구를 담은 것이다. 일선 학교에서 정규직이라는게, 교원과 공무원을 의미한다. 우리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이 공무원화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현실 법리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런 만큼 고용 안정과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계약 방식을 택했다.”

여성노조는 이 법안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거의 10개월간 작업을 했다고 한다. 노조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 것.

더구나 오는 7월 정부 비정규직법의 시행을 앞두고, ‘소리 소문도 없이’ 학교 비정규직들이 계약해지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등의 불을 끌 여론전을 펼칠 필요도 있다. 여성노조의 입장은 최순영 의원실의 입장과 대동소이했고, 최 의원실은 27일 법안을 발의했다.

"투쟁 김빼기 하나?"

그러나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다뤄야 하는 민주노동당이 이 법을 자당 의원의 발의로 처리한 것은 ‘전선교란’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우선 걸리는 것이 민주노총 소속 공공서비스노조 학교비정규직지부가 이 법안의 내용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

류정렬 조직쟁의국장의 말이다. “일단 지난주에 최순영 의원실을 방문해,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민주노총 소속 학교비정규직지부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은 큰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이 법은 정규직과 임금과 승진에 차별 두려는 정부의 무기계약 안에 호응하는 법이다. 더구나 오는 5월 학교 비정규직들의 연가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투쟁 조직기에 정부가 바라는 방식의 법안을 민주노동당이 내는 것이 노동자 투쟁의 사기를 꺾은 것 아니냐. 투쟁을 벌이며, 그 결과물로 무기계약을 수용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에 지금 맞장구를 칠 필요가 있나?”

풍전등화의 고용조건에서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왜 아군이 힘을 빼냐는 반론. “대중투쟁과 의회투쟁의 결합”을 주창해온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옹색해진다.

사실 입장차이는 당내에도 있다. 이해삼 당 최고위원의 말이다. “당의 현재 전략은 비정규직법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적극 개입하는 한편, 7월 1일 이전에 터져 나올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계약해지 사례를 수집·축적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안 발효시점부터 법 재개정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었다. 학교 비정규직만을 위한 특별한 법안을 만든다는 입장은 검토되지 않았다. 다른 당에서 이런 법안이 제출되면, ‘그것 만이라도 하면 좋다’면서 서명 해 주는 것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당의 이름을 걸고 내는 법안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상시업무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주장해온 당의 입장과 이번 법안은 차이가 있다.”

직종단위 돌파? 가능하며, 올바른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김성희 김성희 한국비정규센터 소장도 이야기 했다. 자칫 ‘전선교란’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법안의 허점을 집중부각하며, 그 폐해를 부각할 자료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힘을 모아, 비정규직 차별을 구조화 하려는 의도와 맞서서 싸워야 할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선 여러 조직들의 힘을 함께 모아, 해법을 논의하고, 조율해 가야 한다. 그런데 하나의 직종 단위로 돌파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꼭 부정적 영향만 있을 것이라 단언하긴 어렵지만, 안심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김성희 소장은 “분리직군제나 무기계약화는 인사제도의 변화를 통해 비정규직 차별을 구조화 하려는 ‘저쪽’의 시도”라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가지고, 임금연대, 생활급 중심의 수당체계 등 대안적 임금체계를 공세적으로 공론화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연 이 노력이 있었을까.

27일 오전 <매일노동뉴스> 기자는 한 민주노동당 당직자에게 "정부의 무기계약안에 대한 당의 입장이 뭐냐"고 물었다. 입법발의 사실을 이 당직자는 모르고 있었다. 이 당직자는 두번 생각할 거 없이, "당연히 반대다. 무기계약은 무슨 무기계약이냐. 정규직화가 요구다"라고 말했다. 최순영 의원이 발의한 법안 기자회견 자료를 보여주자, 담배를 피워물었다. 당은 정규직화에 대한 '현실적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을까?

새로운 가능성이냐 차별 고착화냐
고전적 의미에 정규직이라 함은, 고용계약 기간이 없어야 하고, 차별이 없어야 한다. 정부 비정규직법 통과 이후로 이 고전적 정의로 가르기 어려운 문제들이 노동운동 진영에 던져졌다. ‘우리은행 케이스’로 통칭되는 분리직군제가 하나이고, 지난해 8월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서 사용된 ‘무기계약 근로’가 다른 하나다.
고용은 안정시키되, 임금과 근로조건의 차별을 인정하라는 새로운 ‘초식’. 절반의 진전으로 봐야 할지, 독이 든 사탕으로 봐야 할지 노동·진보진영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았다.

분리직군제의 경우는 특히 의견이 분분하다. 올해 초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만 봐도 이석행 위원장 후보는 “폄하할 내용만은 아니다, 차별 시정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힌 반면, 다른 후보들은 “동의할 수 없다”며 ‘후퇴’라는 입장을 보였다. 민주노동당 역시 “‘노비신분에서는 벗어난 성과가 있지만 아직 소작농 신분 정도의 상황”이라는 입장을 지난해 12월에 내놓은 바 있다. 지난 1월 당은 “새로운 가능성인가 차별의 고착화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까지 열었다.

반면 무기계약 문제와 관련해선, 입장이 명확했다. “무기계약 빙자한 차별과 저임금 고착화에 반대한다”는 게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이 참여했던 공공부문비정규직대책본부의 입장이었다.

또한 지난해 8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발표된 직후부터 무기계약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명확한 입장이 있었다. 윤성봉 당 정책연구원의 말이다. “크게 3가지 문제가 있다. 무기계약 노동자의 임금 차별 문제에 대한 답이 없는 게 큰 문제고, 그나마도 정부 예산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무기계약이 외주화의 통로로 이용될 소지가 높다는 것이다.”

학교 비정규직의 전원 무기계약 전환을 요구하는 법안은 ‘고용안정’ 뿐만 아니라, 방학 때는 임금이 안나오는 ‘엽기 수준’의 고용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이 기존 민주노동당이 주장해온 ‘무기계약 허구론’과 일관성이 있는지 여부는 쟁점사항이다. 전술적으로 ‘무기계약’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한 명분과 내부 논의과정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27일 발의된 법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최고위원회, 단병호 의원실 등 유관 의원실과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의됐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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