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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빠진 전자산업 신흥강국 대한민국전자산업 이익률 점차 축소…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
단일산업 최초 수출액 1천억 달러 돌파. 세계 시장 점유율 디스플레이 39%, 휴대전화 23%, 반도체 10.2%. 국가별 생산규모에서 4위국이자, 메모리반도체·CDMA 휴대폰·디스플레이 세계 1위. 전자부문에서 IT 산업만 GDP의 15.6%, 수출의 42.5%, 성장기여율 46.7%.

지난해 IT 산업을 중심으로 한 한국 전자산업이 남긴 기록들이다. 전자산업의 수출액 1천억 달러 돌파는 일본(94년), 미국(96년), 중국(2002년)에 이어 세계 4번째다. 전자산업 세계 순위 또한 지난 2000년 미·일·중에 이어 4위에 올라섰다. ‘전자강국’, 그것은 어느 새 한국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전자산업의 이같은 기록적인 성장은 3대 분야가 주도했다. 디스플레이와 휴대전화, 반도체에서 드러난 한국의 저력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가 전자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과 최근 되살아난 ‘전자거인’ 일본,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맹추격으로, 세계 전자시장은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공급과잉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첨단 원천기술 확보와 세계 시장의 석권을 위해 출혈경쟁도 마다하지 않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자대국' 되자마자 위기 직면

지난해 한국 전자산업은 수출액 1천억 달러 돌파라는 큰 명예를 안았다. 동시에 세계적인 극한경쟁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약한 원천기술과 수출에 민감한 매출구조는 극복해야 할 과제이자 현 구조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이기도 하다.

국내 전자사업은 2005년 매출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57조6324억원으로 부동이 1위를 고수했다. 이어 LG전자가 24조6593억원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우일렉트로닉스가 2조3061억원, 한국소니가 1조408억원 순이었다.

한국의 전자산업은 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2000년대 들어 세계적인 IT산업 버블붕괴를 겪으면서도 일본의 부진과는 대조적으로 그 위상을 크게 높였다. 한국은 일찍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일본과 더불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왔다. 또한 90년대 말부터는 LCD, 휴대전화, 최근에는 디지털 TV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수출 산업을 개척하면서 세계적인 전자산업국의 대열에 진입했다.

IT산업군 2030년 세계 1위 수준 유지, 비메모리 분야 세계 3위, 디지털전자 세계 3위와 세계시장 점유율 15% 달성. 이것이 지금까지의 성장을 바탕으로 한국 전자산업이 꿈꾸고 있는 2030년의 모습이다. 2015년에는 수출 3천억불 달성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전자산업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최근 엔화약세에 따른 첨단 정보통신 산업과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고 있다. 미국 등 주요 수출 시장에서 반도체 등 일본기업들과의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02년부터 원화는 달러화 대비 23.8% 올랐지만 엔화는 7.3% 오르는데 그쳐 대일 경쟁 환경은 크게 악화됐다.

때문에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환율하락과 고유가 등 대외 역풍 속에 전년 대비 14.0%감소한 6조9339억원을 기록했다. LG전자도 전년 대비 41.5%가 감소한 영업이익 5349억 원에 그쳤다.

황상인 LG전자 상무는 “디스플레이 분야는 일본이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고 엔화약세까지 겹치면서 기술과 가격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며 “국내 전자산업이 기술에서 밀린다고 판단하지 않지만 향후 1년간은 계속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멀어진 일본, 따라잡힌 중국

한국은 전자산업 ‘거인’이었던 일본을 추격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동시에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과의 격차를 유지해야 하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등장은 단순히 경쟁국이 추가됐다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전자산업 생산국 10위에 머물렀던 중국은 98년 이미 한국을 제치고 3위로 부상했다.

중국은 전략적으로 외국자본을 적극 활용하여 세계적인 생산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이 과정에서 생산기술력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제품개발면에서는 선진국 수준과 차이가 존재한다. 중요부품과 제조설비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독자적 기술 개발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한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이고 있다.

정보통신부와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전자산업 기술격차는 3.3년으로 줄어들었다. IT 산업은 1.7년에 불과하다.<표 1 참조>



한국의 주력인 이동통신장비의 기술격차도 2005년 현재 1년이지만 2010년이면 6개월로 좁혀질 전망이다. TFT-LCD도 3.5년에서 1.7년으로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전은 전통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강세였지만 최근 아날로그 가전산업은 거의 중국으로 이전됐다. 한국과 일본은 디지털가전을 중심으로 산업 재편을 이미 끝마친 상태다. 데스크톱 PC나 백색가전, 아날로그 TV에 있어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을 앞섰다.

문제는 지난 10년에 걸쳐 침체국면에 있었던 일본 전자산업이 첨단 디지털 산업으로의 구조재편과 함께 엔화 약세에 힘입어 강세를 떨치고 있는 점이다. 한국이 강세인 디스플레이 분야도 일본이 선전하고 있다. 한국의 고급화 전략과 달리 중저가 위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던 일본 휴대전화 산업도 공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기업에 2위 자리마저 빼앗겼다. 노키아는 지난해 36%를 차지해 점유율 1위를 기록했고 소니에릭슨(12%), 삼성전자(11%), 모토로라(7%), LG전자(5%)가 그 뒤를 이었다.

이렇듯 세계의 각 기업들은 현지 생산공장 설립을 통한 시장 개척, 원가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제고,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등에 나서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함이다. 또 경쟁기업들끼리 ‘파트러링’을 맺는 등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전자산업 성장세에 거는 희망

그렇다면 세계적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국 전자기업의 전략은 무엇일까. 산업연구원은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기반 구축 △외국 R&D 센터의 국내 적극 유치 △한국기업의 중국현지 R&D 센터 설립 △중국시장에서 마케팅 차별화 전략 등을 제시하고 있다.

부문별 기술 격차 극복도 국내 전자산업 발전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미 디지털전자산업은 응용과 생산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다는 평이다. 반면 설계기술과 원천기술은 여전히 취약한 편이다. CDMA·디지털TV·DVD 등 주요제품이 지급하는 로열티는 여전히 판매가의 5~15%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해외 로열티 지불은 2001년 26억 달러에서 2005년 45억 달러로 계속 증가한 반면 수입은 그 절반에 머물러 있다. 기술무역수지 적자는 2002년 20억 달러에서 지난해 3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의 기술적 조건은 경쟁국가에 비해 비관적이다. 하지만 비관만 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평이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전자시장은 1조2680억 달러로, 전년 대비 5% 성장하는 것을 포함해 오는 2010년에는 1조5323억 달러의 시장규모를 이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트북 PC와 휴대전화, LCD TV, 휴대용 단말기가 전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시장은 올해보다 13% 정도 성장하는 등 고도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이러한 조건은 한국에 호재로 작용된다. 한국이 경쟁력이 있는 전자제품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때문이다. 문제는 출혈경쟁과 기술격차라는 악조건을 딛고 한국의 전자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느냐다. 그것은 전자산업 노사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전자산업 노조, 산별전환에 성공할까

국내 전자업체수는 2003년 현재 7천5백여 개사.<표 2 참조> 제조업 총사업체 수 중 전자업체수의 비중은 91년 6.4%에서 2003년 6.6%로 소폭 상승했다. 이같은 상승세는 반도체 및 전자부품 산업이 주도했다. 물론 가정용 전자와 산업용 전자 분야의 사업체도 꾸준하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자산업에 고용된 있는 인원은 2003년 추계로 39만3천명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약 7만명이 일을 하고 있다. LG전자 약 3만5천여명, 하이닉스 반도체 1만2천여명, 대우일렉트로닉스 약 4천5백여명 등이 다음순이다. 핵심적인 대기업들이 전체 고용인원의 4분의 1을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일부 내수용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 외에 나머지는 전자부품산업을 담당하고 있거나 대기업과 원하청 관계로 맺어진 중소기업들이 중심이다.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노동조합에 조직된 수는 약 5만여명(조직률 12%)이다. 한국노총 금속노련에 4만여명,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금속연맹에 약 8천여명의 노조원이 소속돼있다.

대표적 무노조 기업이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LG전자와 하이닉스 반도체, 대우일렉트로닉스, 한국소니 등 대표적인 전자기업체 노조는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이다. 민주노총에는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 등 부품산업업체들과 아날로그 가전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전자사업의 환경변화에 따라 노동조합도 조합원의 권익향상과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을 위해 산업 정책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 경쟁의 지형변화에 따른 기업의 경영상태의 변화는 고스란히 조합원의 권익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원하청 관계에 따른 불공정 거래 문제 해결이 노사의 현안으로 대두하고 있다. 양극화와 고용불안, 비정규직 확대 등도 겹쳐진 문제다. 노조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산업전략에 개입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미 민주노총 산하 전자업종 노조가 산별노조로의 조직형태를 변경했다. 조합원 수로는 민주노총 산하 전자업종 조합원 8천여명 중 6천여명이 해당된다. 한국노총 금속노련에 소속된 전자업종 노조도 산별전환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3~4월에 1차, 8~9월에 2차 산별전환 동시투표를 계획하고 있다.

물론 노사관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전자산업 노조가 산별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전자산업을 대표하는 LG전자, 대우일레트로닉스 노조가 산별노조를 추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 노조가 기업별 노조라는 울타리가 아니라 산업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 눈을 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종탁 산업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산업 정책과 기업경영은 정부와 경영진의 몫이라는 생각은 낡은 사고”라며 “산별노조 전환을 통해 전자산업의 노동조합이 산업전략을 제시하고 주도할 수 있는 공세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LG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전자산업 노동조합이 산별노조 전환을 할 경우 전자산업에서 노조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될 수 있다. 산별전환을 선언한 전자산업 노조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2월 21일

김봉석 기자  seok@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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