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 업계에 신종 구조조정 기법이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사업가형 지점장제'이다. 노동계는 '고령자를 퇴출하는 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업가형 지점장제를 점검해보았다. <편집자 주>


정종욱씨(가명, 54)는 '사업가형 지점장제' 때문에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현재 H생명보험사를 상대로 힘겨운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몸담았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계약해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계약해지가 부당하다며 지난해 12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정씨는 사업가형 지점장제가 구조조정을 위한 수단이었다는 판단이다. 사업가형 지점장이 되려면 우선 회사를 퇴직해야 한다. 이후 생명보험사와 일정기간 계약을 체결하고 지점을 운영하게 된다. 실적에 따라 수익을 받을 수 있다.
 
그는 2001년 억대 연봉을 꿈꾸며 ‘사업가형 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H생명보험사는 퇴직을 전제로 1억원의 지점운영비와 영업점 배정을 제안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계속됐고, 자신이 직접 운영할 경우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회사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목표량과 관련한 계약을 체결하고 구로지점을 배정받았다. 처음 2년간은 회사로부터 통제는 받았지만 일정부분 지원이 있어 운영할 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회사측 지원은 중단되고 통제와 요구만 계속됐다. 말이 개인사업자지 옛날 직원시절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급기야 2005년 12월 정씨는 회사로부터 연수원 교수역(계약직)으로 발령을 통보 받았다. 회사도 퇴직했는데 인사발령이라니 황당했다. 정씨가 반발하자 회사는 다음해인 2006년 3월 다시 사업가형 지점장으로 발령을 냈다. 그런데 실적이 거의 없는 지점이었다. 그는 목표량을 채우지 않으면 해촉(계약해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백방으로 뛰었고, 계약서에 명시된 목표량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2006년 8월 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12월로 계약해지하겠다는 통보였다. 계약만료기간은 2007년 12월로 아직 1년 반 가까이 남아있었다.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해도 회사는 묵묵부답이다. 그는 억울했다. 23년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철저히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치가 떨렸다.

특수고용직 양산하는 신종 제도

생명보험업계에 ‘사업가형 지점장(점포장)제도’가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 외국보험사에는 이미 도입됐고 국내 보험사들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흥국생명과 교보생명, 미래에셋생명이 이미 도입했고, 동양생명은 도입 여부를 놓고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생명보험사 상장을 앞두고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사업가형 지점장제도는 회사 소속이었던 지점장들을 개인사업자로 독립시켜 지점을 운영케 하는 것으로 성과에 따라 수당이 주어지는 일종의 성과급형 영업시스템이다. 회사에게는 자율경쟁과 성과급을 통한 생산성향상 효과가 있고, 당사자들에게도 실적에 따라 억대연봉을 올릴 수 있고 세금혜택도 많아 유리하다는 게 업계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사업가형 지점장제도가 특수고용직을 양산하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반박한다. 회사의 구조조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억대연봉자도 일부의 얘기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억대연봉 지점장 거의 없어

사업가형 지점장이 되면 소속이 바뀐다. 생명보험사 직원이었던 신분이 개인사업자로 바뀌는 것이다. 회사는 대신 지점운영비와 일정기간의 연봉을 보장해 준다. 그 금액이 약 1억원 정도 된다. 지점영업권도 준다.

회사의 제안을 수락할 경우 회사와 직원 양자간에는 계약 목표량과 보험설계사 리쿠르팅(모집) 할당량, 기간 등이 명시된 계약서가 체결된다.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회사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대부분 직원들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다. 고액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과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구조조정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함을 동시에 갖고 있다.

2년이 지나면 '희망이냐 절망이냐'가 판가름 난다. 사업가형 지점장으로 전환될 경우 회사로부터 2년 간은 일정부분의 연봉과 운영비를 지원받는다. 하지만 2년간 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운영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심지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목표량을 달성하더라도 해마다 회사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적을 채우지 못할 경우 기본수당조차도 받지 못하고 계약마저 해지될 수 있다. 억대연봉의 꿈을 이루는 경우는 극히 일부뿐이라는 것이다.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억대연봉자’는 손에 꼽힐 정도라고. 모 생명보험사의 경우 1억연봉자는 5%에 불과하다. 대부분 지점장들이 실적을 채우지 못해 계약해지를 당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한 회사 지점장은 “회사에 있었을 경우 부장으로 승진해 연봉 8천만원은 받았을 것”이라며 “현재는 월급은 고사하고 운영하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후회한다는 얘기다.

‘독립 경영’도 말뿐이라는 설명이다. 회사의 지휘권 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계약 해지될 수 있다는 위협 때문에 회사측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다. 지점영업 간섭은 보통이고, 일방적으로 발령을 내는가 하면 심지어 이유 없이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이와 관련된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생보노조 "구조조정 수단으로 악용 말라"

생명보험사노조들은 회사들이 사업가형 지점장제를 구조조정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생명보험노조에 따르면 흥국생명의 경우 사업가형 지점장제가 도입된 이후 300명 이상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강제 전환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 회사측은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전환을 시킨다고 말하고 하지만 실제로는 임의로 대상자를 정해놓고 대상자가 전환하지 않을 경우 인사발령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강제 퇴직이라는 것. 모 생명보험의 경우 고령자 대부분을 강제로 사업가형 지점장제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동양생명노조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도 바로 강제 전환이다. 김일영 노조위원장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강제로 전환시키려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며 “지점장들은 전환하지 않을 경우 인사발령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사업가형 지점장제는 대규모 비정규직만을 양산할 뿐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점장들의 신분을 정규직에서 특수고용직인 설계사로 바꾸는 이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명색은 개인사업자이지만 회사의 통제를 그대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최선린 생명보험노조 위원장은 “보험사들은 사업가형 지점 장제를 통해 고령자들을 퇴출하는 등 고용유연성을 확보하려 한다”며 “철저한 성과주의를 도입해 실적이 저조한 사람을 내보내는 이중효과를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대규모 비정규직 양상으로 고용불안이 확대될 것이라 얘기다.

문제는 지점장에 그치지 않는다. 지점 직원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지점 직원들의 경우 지점장이 채용하게 된다. 지점장의 행로에 따라 직원들의 운명도 결정되는 것이다.

결국 사업가형 지점장제도는 생명보험업계 종사자들의 신분을 특수고용직으로 바꾸는 제도라는 것.

반면, 보험사들은 사업가형 지점장제 시행을 통해 엄청난 이득을 얻고 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우선 퇴직금과 각종 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인건비에서 엄청난 이득을 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설사 성과가 안 좋을 경우 지점장을 계약해지하고 그 지점에 또 다른 지점장을 배치하면 된다. 영업에도 큰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지점장은 망해도 지점은 망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불가피하게 사업가형 지점장제를 도입하려면 고용안정과 공정한 보상체계를 마련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2월 12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