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말 도서실 공사로 교정이 온통 뿌연 서울 성신여고에서 교장과 행정실 직원들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직원 A: 무슨 이유로 우리가 그만둬야 하는지 알려 주세요.

교장: 인터넷을 한 번 보세요. 언론에도 나고 그랬지 않습니까. 비정규직 법안이 불러온 현실입니다. 나라가 일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직원 B: 그럼 지금 우리가 잘린 겁니까.

교장: 네, 잘렸습니다.

정수운 씨도 이날 살생부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95년부터 12년째 행정실 일을 해왔다는 정씨는 “낮까지 아무런 낌새조차 없었다”며 “하루 전만에라도 얘기를 했더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흐느낀다. “어떻게 11년간 같이 근무했던 나에게 어떻게, 아이도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는데···.”

학교에 대한 섭섭함도 숨기지 않는다. “정말 시키는 일이라면 허드렛일이든 뭐든 했어요. 교장선생님도 행정실 선생님들을 모아 놓고 매번 ‘우리는 심장부다. 믿고 따르라’고 강조했습니다. 믿고 따랐는데 그 결과가 이겁니다.”

#2.

서울 강동구의 C초등학교서 11년째 교무보조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 씨는 “나이가 많아 일시키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를 당했다. 학교장은 나이 외에도 “선생들 (사이에) 말이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그런데 얼마 뒤 학교가 재계약 의사를 밝혔다. 노조 개입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했다. 재계약 대신 학교는 각서를 요구했다. 수행업무를 나열한 각서의 내용은 이랬다.

“위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다짐하며 위 조항 중 불성실하게 이행한 조항이 발생하여 학교 교육 활동에 지장을 초래함으로써 문서로 일차 경고를 받을 경우 ‘학교 회계직원 근로계약서’에 근거하여 근로계약이 중도 해지 수용을 서약합니다.”
김씨는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3.

경기도 H중학교에서 과학보조로 일하고 있는 김유정(가명) 씨. 4년차인 그는 2월28일에 계약이 해지된다. 계약해지 이유는 놀랍게도 ‘과학실 리모델링’이다. 과학실 리모델링 얘기는 지난해 광양의 한 고등학교에서 과학 실험 도중 폭발사고를 대비하자며 새로 부임한 교장으로부터 나왔다. 학교에서 50%를 대고 나머지는 교육청에서 보조를 받겠다는 계획도 설명됐다.

학교의 재원이 문제였는데 교장이 그 해법으로 과학보조 계약해지를 들고 나왔다. 학교장은 이전 O학교에서도 과학실을 리모델링하고 직원을 계약해지한 전력이 있다고 했다. 김씨의 월급은 76만원이다.

“집단 우울증에 걸려 있다.” 공공서비스노조 학교비정규직지부 류정렬 조직국장은 요새 학교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전국 6,000개 교육기관 비정규직의 계약이 모두 2월28일 만료되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올해 계약 만료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법과 어울려 장기 근속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대규모 해고사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류국장의 진단이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에 따르면 현재 학교 비정규직 규모는 8만명 가량. 그 가운데 최소 10분의 1은 구조조정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다는 게 학비노조의 추산이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한 학교당 평균 13명의 비정규직 가운데 1명 이상은 계약해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비지부에 쇄도하고 있는 계약해지건 가운데 대부분은 2년 이상의 장기근속자였고 해고 통보는 구두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류국장은 “무기계약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학교에서 5~6년 근속자들을 내보내고 새로 시장에 나선 젊은 취업자를 찾고 있다”며 “1년 단위로 짧게 계약하는 고용형태를 만들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선 학교는 사실 권한이 없다”며 “예산을 교육청에서 틀어쥐고 학교를 조정하고 학교는 교육청의 한마디에 두세 걸음 더 나가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류국장은 “노조에 상담이 폭주하고 있지만 워낙 수로나 시간으로 개별 학교에 대응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교육청이 학교 비정규직 문제에 분명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비정규직이자 아들을 올해 초등학교에 보내는 정수운 씨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오롯이 걱정이었다. “인간답고 가장 순수해야 할 곳이 학교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학교 다니 때만 해도 선생님들은 화장실도 안가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배신감이 더 큰 것 같아요.”

 
<매일노동뉴스> 2007년 2월 12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