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가 26일 정책좌담회를 개최해 올해 활동을 평가하고 내년 방향성을 찾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김동만 금융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김기준 금융경제연구소 이사장, 노진귀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원장, 김종현 농협중앙회지부 위원장, 장장환 SC제일은행지부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정책좌담회는 금융노조가 노동운동 전반에 대해 조망하고 격동의 한해를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에 대해 황금주 금융노조 교선본부장은 “이번 좌담회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의 급속한 구조조정의 한 가운데 금융노동자가 있었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큰 흐름을 바꿔낼 수 있는 중심에 금융노조가 자리잡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의미있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계기 마련에 금융노조가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한 것”이라고 좌담회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 “노동자 연대 묶어내지 못한 것 아쉬워” = 이원보 이사장은 다가오는 내년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대통령선거 등 대전환의 여러 조건들이 골고루 갖추어진 해라며 포문을 열었다. 이 이사장은 이어 올해 금융노조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김동만 위원장에게 요구했다.

김동만 위원장은 냉철한 자기반성과 금융노조에 대한 정확한 진단으로 말문을 이었다. 그는 “금융노조는 양대노총을 통털어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산별이지만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사측의 논리와 맥을 같이 하는 부분들이 현재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김동만 위원장은 두 가지를 언급했다. 하나는 올해 산별 공동임단협에서 금융노조가 정규직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나머지 재원을 가지고 비정규직에 할애하는 의미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으나, 지부의 현안 문제들과 각 지부 선거 등이 겹치면서 좌절된 측면이다.

또 다른 하나는 외환은행 불법매각 관련 투쟁에서 ‘연대를 하나로 묶어내지 못한 것’을 꼽았다. 김 위원장은 “국민은행노조 역시 시너지 효과라는 자본측의 논리에 의해 끌려가는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며 “산별노조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총체적으로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금융노조 각 지부 사이의 이해관계, 각 조직들의 이기주의, 사측논리 등이 착종되는 중심에 있었던 김동만 위원장에게 올 한해는 산별노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 “론스타 사건, 총체적 비리의 대표적 사례” = 좌담회는 올 한해 뜨거운 이슈였던 2003년 외환은행 불법매각과 론스타게이트 의혹으로 이어졌다.

김기준 금융경제연구소 이사장은 한마디로 “외환은행 불법매각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 비리의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 이사장은 외환은행 불법매각과 관련한 투쟁은 외환은행노조와 국민은행노조의 연대까지는 이뤄내지 못해 아쉬웠지만, 투감센터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 민주노동당, 금융경제연구소 등 노조 외부의 연대는 활발히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론스타게이트 의혹규명 및 외환은행 불법매각 중지를 위한 국민행동’의 대응 투쟁은 “국회의 활용, 노조조직력의 뒷받침, 시민단체가 동일한 지향점을 갖고 연대를 할 경우 엄청난 사회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긍정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김동만 위원장은 투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가 보여준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0년 국민은행-주택은행 통합 과정에서 총파업을 강력하게 전개했으나, 결국 국민-주택의 합병을 막아내지 못했던 경험을 상기시키며, 김 위원장은 위원장 취임 당시 외환은행에 강력한 투쟁력, 즉 총파업을 포함한 재래식 무기를 요구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김지성 외환지부 위원장은 대국회 활동, 감사원과 법원, 검찰 등에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대정부 활동 등 투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줘 결국 외환은행이 불법적으로 매각됐다는 사실을 검찰과 감사원이 발표하도록 했으며, 국민은행에 합병되는 것을 일차적으로 막아냈다고 평가했다. 만약 파업을 했다면 벌써 국민은행과의 통합이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게 김 위원장의 판단이다.

◇ “신경분리, 반대여론으로 돌아서고 있어” = 김종현 농협중앙회지부 위원장은 금융부문과 농업부문 등 양 방향에서 한미FTA 저지투쟁을 이끌었던 경험담을 소개했다. 농협중앙회지부는 한미FTA 저지투쟁의 최선봉에 나서 성공적인 활동을 해 온 것으로 노동계 안팎에서는 평가받고 있다.

김종현 위원장은 “올 8월 금강산에서 조합원 교육, 전국 18개 지역 순회교육, 한미FTA 저지 CD 제작 및 배포 등 지속적인 저지투쟁을 전개했다”면서 “식량주권을 포기하면 살 수 없고, 농업이 있어야 농협중앙회지부도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은 한미FTA 안에 숨어 있는 ‘농협 신경분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한미FTA를 통해 결국은 농협을 외국자본에 넘기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한미FTA=신경분리’라는 농협중앙회지부의 주장은 신경분리를 해야 된다고 주장했던 농민들의 여론을 신경분리 반대여론으로 바꿔내고 있다”며 “농민들까지도 신경분리는 농민들에게 실익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은행이 2003년 론스타에 넘어갔듯이 신경분리를 통해 농협도 결국 팔아넘긴다는 것을 농민들까지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 “실체 없는 선진금융시스템” = 금융공공성에 대한 논의도 뜨거웠다. 장장환 제일은행지부 위원장은 “외국계 지분율이 높아지면서 주주이익 극대화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며 “외국자본은 국가의 신인도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주주이익에 매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앞으로 집중적으로 규명되어야 할 사안이다. 장 위원장은 이어 “경영진의 대부분이 외국인인 SC제일은행의 경우 그룹의 시스템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는데 집중하지, 한국의 주요 경제정책, 주요 생산업종, 주요 기업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며 “따라서 금융의 공공성은 외국자본 안중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동만 위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들을 받아들일 때 유포된 논리는 선진금융기법을 배운다는 것이었으나, 뉴브릿지가 들어와서 선진금융기법 전수한 것 아무것도 없었다”며 “되레 외국자본은 소매금융에 치중하고 기업금융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도대체 무슨 선진금융기법을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배웠는지 모르겠다는 설명이다.

김기준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진보인 척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하게 구사한 것을 냉정히 평가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금융공공성의 핵심은 자금중개 기능을 제대로 해 국민경제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고, 혁신기업 등을 지원하는 것인데 현재는 주주이익 극대화에 매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회시스템으로서의 자금중개기능 회복과 소외받고 있는 서민, 중소기업 등에 금융서비스를 어떻게 해줄 것인지, 지방금융을 어떻게 활성화 할 것인지, 지역을 활성화 하는 데 금융이 어떤 역할을 해나갈 것인지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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