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맹이 본지 로드맵 협상 및 투쟁 과정 전반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담은 글을 보내 왔다. 이 기고는 본지 12월20일자에 게재된 공공연맹의 항의공문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기고의 필자는 유병홍 공공연맹 정책국장 개인이지만, 이 기고의 내용은 공공연맹 집행부의 검토를 거쳤다고 공공연맹은 밝혀 왔다. 공공연맹은 이 기고를 통해 진정으로 원칙적이고 올바른 투쟁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을 노동계급 전체에 촉구하고 있다. <편집자 주> 



어려움도 많고 많은 사람을 아프게 했던 로드맵 투쟁이 일단락되었다. 여기에서 일단락이라 함은 일단 국회논의가 끝났다는 것이지 실제 그 적용을 둘러싼 노정·노사 갈등은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또다시 우리는 투쟁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러나 투쟁을 다시 조직하기 위해서라도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우리는 투쟁이 일단락될 때마다, 시기가 바뀔 때마다 활동과 투쟁에 대한 평가를 했다. 이번에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더 치열하게 평가하자는 제안을 하려는 것이다.

사실, 그 계기가 된 것 중 하나가 공공연맹과 매일노동뉴스 기사를 둘러싼 논쟁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기사 하나, 일부 내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껏해야 자칫 문구 논쟁, 지엽말단 문제로 전락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그동안 진행된 로드맵 투쟁, 특히 올해 진행된 로드맵 투쟁에 대해 공공연맹이 갖고 있던 기본관점을 제시하고 그를 통해 투쟁 전반에 대해 재점검을 해보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문제가 명확해질 것이다. 그 이면에는 우리 투쟁을 견실하게 하고 민주노조 운동기풍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최근 진행된 로드맵 관련 투쟁과 관련하여 기술적인 사항을 넘어서서 날카로운 문제제기와 치열한 토론, 냉정한 비판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실 이런 논쟁은 진작부터 촉발되고 있었다. 그러나 국회에서 로드맵 관련 법안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혹시라도 이런 논쟁이 적전 분열을 가져오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과 검토 속에서 논쟁을 조금 늦추었다. 그래 놓고 보니 이제 “선거 때가 되었나 보군” 하는 말이 나올 시기가 되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이에 대한 고민은 많았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어차피 지금과 같은 구도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정파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하자”는 것이다. 충정으로 이해하면 좋고, 쓸데없는 변명으로 이해해도 할 수 없다.

노동계급 전체와 부분 문제에 대하여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노동계급 전체 문제와 부분 문제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 로드맵 투쟁 전체를 놓고 볼 때 여러 법안 전체를 한 묶음으로 보는 견해와 필수공익사업장 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보는 견해가 나뉘어졌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단지 필수공익사업장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사안이든 따로 떼어내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 즉 “전체를 패키지로 보자”는 견해가 암묵적인 동의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단지 법안에 대한 대응이라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서서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인가, 아니면 각 조직별로 주요 관심사항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는 문제였다.

공공연맹은 필수공익사업장이 많은 조건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자 견해를 지키고자 노력했고, 또 지켰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로드맵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논쟁, 그리고 결과를 놓고 본다면 결국 일부 사람과 조직은 후자 견해에 따라 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로드맵 투쟁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 부재이며 조직이기주의로 이어지고, 결국 그에 따라 전체 전선이 깨지면서 투쟁에 혼선을 가져 왔다. 사실 로드맵을 둘러싼 논쟁의 근본 바탕에는 이 문제가 깔려 있다.

냉정하게 검토해보자. 우리는 로드맵 투쟁 과정에서 전체를 패키지로 보자는 원칙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지켰는가? 우리는 노동계급 전체 문제와 부분 문제가 상충될 때 과연 전체 이익을 지키고자 얼마나 노력했는가?

조직 결의 준수 문제에 대하여

두번째 문제는 조직 결의 준수 문제이다. (설립 이전까지 포함해서) 민주노총이 자랑스럽게 지켜 온 전통 중 하나가 “결의는 지킨다”는 것이다. 이 전통의 중요성은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본이다.

로드맵 투쟁과 관련해서 총연맹 중집(투본)회의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더이상 교섭 없다, 수정안 없다는 결의를 한 바 있다. 더구나 9월19일 제38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9·11 야합을 주도한 한국노총을 규탄하며, 어용노조 민주화투쟁을 강화하고 한국노총과의 연대를 파기한다”고 결정하고, 하반기 투쟁기조를 전면 총파업으로 결정한 바 있다. 이는 최종 순간까지 몇차례 확인된 사항이다. 어찌 보면 똑같은 사항이 몇번 논의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암묵적으로 불안 요소를 안고 있었다는 것의 반증이다.

그리고 결과를 놓고 본다면 이런 몇차례에 걸친 결의에도 불구하고 수정안이 제출된 셈이다. 수정안을 누가, 어느 조직이 어떻게 냈는지를 굳이 논쟁하고자 하지 않는다. 안 해도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조직 결의가 준수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로드맵 논의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보인 행태로 인해 민주노총에서는 한국노총 해체투쟁을 결의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마지막 협상과정에서는 한국노총과 일정한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한국노총에 대한, 그리고 한국노총이 보인 행태에 대한 총연맹과 전체 노동계급 차원의 평가와 관련된 중대하고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의사항에 대한 준수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결의사항은 지켜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우리 운동이 이렇게 되었는가? 물론 때로는 결의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우리 원칙은 결의는 지켜가면서 수정결의를 이끌어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은 어떠했는가? 결의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어긴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긴 것이다. 그것도 주요 위치에 있는 사람 또는 조직이 당당하게, 성과라고 자랑하면서 말이다. 이쯤 되면 조직위기 상황이다. 로드맵 법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위기가 아니라 조직 결의가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조직 기강이 문란해졌기 때문에 위기인 것이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냉정하게 검토해보자. “결의는 지킨다”는 결의는 지켜지고 있는가? 우리 조직은 건강한가?

단기실리와 장기투쟁 진지구축 문제에 대하여

세번째 문제는 단기실리와 장기투쟁을 위한 진지구축과 관련된 문제이다. “실리”라고 하면 그에 대응되는 말로 명분, 원칙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쓰려고 했다. 그런데 명분이라고 하면 좋은 말인데도 실제 우리 사회에서 쓰이기에는 “실속 없는, 허상만 추구하는”이란 의미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칙이란 말도 “융통성 없는, 구체성이 결여된”이란 말과 연결될 수 있다. 실제 논쟁과정에서 “원칙만 말하는” 운운하면서 이런 인상을 만들어내려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단순한 용어 문제가 아니기에 말을 단기실리와 장기투쟁 진지구축 문제라고 바꾸었다. 이렇게 말하면 “당연히 단기실리보다는 장기투쟁 진지구축이 중요하다는 말을 끌어내려는 속보이는 포석”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이런 유리한 포석을 의도적으로 깐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새로 깔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개인으로나, 조직으로나 실리라고 하는 달콤한 유혹은 얼마나 강렬한가? 따지고 보면 노동운동도 결국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것 아닌가? 실리라는 유혹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필수공익사업장이 다른 어떤 조직보다 많은 공공연맹으로서 최소한의 개선이라도 따냈으면 하는 유혹은 얼마나 강했던가? 혹시라도 우리가 공연히 원칙을 앞세우면서 현장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와 우려는 얼마나 강했던가? 그러나 우리는 이런 단기실리 추구가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장기투쟁을 위한 명분과 진지를 잃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에 따랐다. 일부의 단기 이익을 앞세우다가 전체 투쟁을 망가뜨릴 수 없다는 냉정한 판단을 해야 했다. 그리고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그 판단을 끝까지 유지했다.

냉정하게 검토해보자. 우리는 현장 조합원의 요구라는, 실리라는 그럴 듯한 말을 앞세워 장기투쟁을 위한 우리 명분과 원칙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가?

조직 운영 질서에 대하여

네번째는 조직운영질서에 관한 문제이다. 투쟁조직화를 논의하는 총연맹 중집에서 연맹 위원장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연맹 견해를 밝힌 이후에 개별사업장을 거론하면서 의견 청취 여부를 물은 바 있다. 그리고 또한 그와는 별도로 필수공익사업장 노조 대표자회의를 소집한 바 있다. 명분은 뚜렷하다. 현장 의견을 청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논리 연장선상이라면 단위노조 간부가 아니라 조합원회의를 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는 총연맹 가맹단위는 연맹이고 단위노조는 연맹을 통해 총연맹에 결합하고 있는 현 민주노총 조직구조, 조직체계를 무시한 행태이다.

그렇다면 현장의견을 무시하자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현장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조직을 만들고 조직을 운영하는 조직활동가들이다. 그렇다면 조직이 무엇이고 조직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사고해야 한다. 급하다고 해서, 당장 보기에 그럴 듯하다고 해서 우리가 만들어놓은 조직체계를 우리 스스로 흔든다는 것은 이후 조직운영과정에서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이것이 불신과 의심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면 더욱 문제가 된다. 조직결의 준수와 함께 조직운영 질서 준수는 조직의 기본이다. 더구나 그 조직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집행단위로서는 그 책임이 더욱 크다.

냉정하게 검토해보자.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조직을 운영질서에 맞게 잘 운영하고 있는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편의성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질서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도 다시 한번 성과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점검해보자. 로드맵 투쟁 과정에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라도 성과를 가져오자는 견해와 그것이 과연 성과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견해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서 명확하게 전제할 것이 있다. 이들 논쟁 이전에 더욱 중요한 기준점은 야합안에 대한 수정안을 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점, 필수공익사업장 문제를 다른 문제와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잠시 덮어두고 좁게 접근해보자. 어떻든 성과는 중요한 것 아닌가? 우리같이 현실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래도 성과가 중요하다”는 기준을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살펴보자.

정부입법 원안에 비해 최종 통과 내용이 과연 더 나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수정안은 대체근로가 완화되었고 필수유지업무근무자 지명권자가 사측에서 노조로 바뀌었고 행정절차가 일부 바뀌었다. 성과라면 성과이다. 그러나 잃은 것(또는 못 따낸 것)을 따져보자. 이름만 바꾸었을 뿐 노동위원회 중재가 살아 있고, 대체근로가 도입되고, 긴급조정이 살아 있다. 우리가 3중 잠금장치라고 비판한 것은 모두 살아 있다. 약간의 기술적 변화가 있다고 해도 근본이 바뀐 것은 없다. 우리는 그렇다면 이런 안에 대해 묵시적으로라도 동의해주는 것보다는 전면 거부투쟁으로 나가는 것이 이후 투쟁을 위한 논리적, 현실적 정당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또한 “더이상 수정안 없다, 교섭 없다”는 결의를 어긴 것은 얼마나 커다란 손실인가? 필수공익사업장 문제는 다른 것과 분리시키면서 생겨난 부분이익 중시, 자기조직 우선주의 문제는 또 얼마나 큰 손실인가? 이런 논쟁으로 인해 내부 분열을 가져온 것은 또 얼마나 큰 손실인가? 해체투쟁을 선언해놓은 한국노총을 상대로 한 교섭은 과연 얼마나 큰 손실인가? 이런 모든 것을 놓고 볼 때 공공연맹은 “성과를 기준으로 놓고 보더라도 득에 비해 실이 크다”고 보고 있다.

냉정하게 검토해보자. 성과를 기준으로 보자는 것도 있을 수 있는 기준 중 하나이다. 그렇데 과연 그 성과를 현실에 기초해서 명확하게 따져 보았는가? 우리는 냉정한 성과 판단기준을 갖고 있는가?

정말, 한번 진지하게 토론하자

로드맵 투쟁은 어떤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성과를 거둔 투쟁이라고 보기 어렵다. 뼈아픈 투쟁이었다. 단지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기는 싸움보다 지는 싸움을 더 많이 해 왔다. 그러면서도 깨끗하게 패배했기에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다. 이번은 우리 내부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고, 내부 분열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리고 이는 어느 일부의 잘못, 일시적인 판단착오로 돌리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로 드러났다. 그리고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런 우려를 오히려 성과로 바라보기까지 한다. 예를 들면 매일노동뉴스 12월11일자에서는 “3개월 고군분투”, “보건의료노조의 치밀하고 발 빠른 대응” 등 표현이 있다. 같은 기사 안에 민주노총 일부 간부들과 보건의료노조가 국회 안에서 환노위 여야 의원들과 한국노총을 접촉한 것으로 나와 있다. 13일자에는 “현장에는 그들이 있었다”고 쓰고 있다. 사소한 사실관계 하나하나를 놓고 말하지 않겠다.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을 위한 고군분투였는가, 누구를 위한 고군분투였는가, 어떤 현장에 있었는가”를 묻고 싶다. 단지 “기사 일부에 표현상 문제가 있었다”면 크게 문제 삼을 것 없다. 그러나 로드맵 투쟁 과정에서 드러난 차이는 그런 사소한 차이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차이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노조운동에 아주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주의 깊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로드맵 투쟁을 소재로 삼아 그동안 우리 운동에서 점검해야 할 사항들을 몇가지 지적해보았다. 자빠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하던가? 이번 투쟁을 계기로 삼아 교섭과 투쟁, 조직 전반에 걸쳐 단위노조 간부까지 참여하는 광범위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조직하자. 한번 진지하게 토론해 보자. 이게 제안이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본다. 동지들의 치열하고 냉정한 비판을 바란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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