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일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일하면서 돈을 묻어두는 게 노후 연금이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자가 젊어서 이룬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아, 늙어서 후세대에게 기대 살 수 있게 한 것이 연금이다.

좀더 ‘좌파적’으로 본다면 계급투쟁의 물 타기일 수도 있고, 좀더 오른쪽에서 본다면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을, 국가가 나서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없이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공무원 퇴직자가 궁핍하지 않게 살수 있을 만큼 연금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일찍 시작된 공적연금인 특수직역 연금의 현재 기준에, 미래의 ‘내’가 받게 될 국민연금의 미래를 맞춰 가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침략,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 암울한 과거와 현재에서 장밋빛 미래를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 땅에서, ‘미래에도 지킬 가치’가 어디 흔한가?

국민연금법 개정은 어떻게 노후 생활을 지킬지보다 어떻게 재정안정성을 더할지를 중심에 두고 논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나 고통스런 과정에 마취약으로 공무원연금법 개정이 쓰이고 있다.

연금의 구조는 ‘하후상박’, ‘사회공공성’ 등등의 수식을 빼고 보면, 돈 놓고 돈 먹기다. 얼마를 내면, 얼마를 줄지 안도 공개하지 않은 가운데 “일단 양보부터 하라”고 강요당하고 있는 공무원노조단체들의 표정은 울상이다.

지난 봄 부터, 영등포 대영빌딩 7층에 있는 공무원노조 사무실 회의실에선 매주 한번씩 연금 관련 워크숍이 열렸다. 정세흐름에 따라 한동안 안 열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열렸다. 지난 가을에는, 그 워크숍에서 논의되던 실무선의 초안이 공개됐다.

‘이걸 조합원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 지’ 의구심이 좀 들긴 했지만, 그 안은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양보안이 아니었다. 약간의 찬사를 더하자면, 치열한 세상 걱정 속에 돌출된 안이었다. 같이 먹고 살아보자는 게 전제된 안이었다. 이제 안을 들고, 지도부를 설득하고, 조합원을 설득해 대정부 교섭에 들어가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었을 진데, 양상은 많이 달랐다.

그 안을 주도했던, 명석하던 활동가들는 요즘, ‘개악저지’ 투쟁계획 짜느라 정신이 없다. 정부는 말할 생각이 없었고, 한국사회는 또 하나의 작은 불씨를 잃었다.

잘 키웠으면, 혹 아는가. 산천은 밝혔을지도.
 
<매일노동뉴스>2006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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