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 이정호 공공노조 정책팀장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광주지방법원 판사때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피의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해 버리고 법복을 벗어던진 이후 85년 구로동맹파업, 86년 권인숙 성고문, 87년 이석규 열사 진상조사단으로, 민주변호사로 거리에서 민중들과 20여년을 보냈다. 이 장관은 이 과정에서 두 번이나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런 장관의 이력이니 노동계에도 많은 인맥이 있다. 68년 3선개헌 저지투쟁을 주도했던 고려대 거대서클 한맥회에서 장관과 같이 활약했던 이 중에는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도 있다. 천영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이 장관과 함께 고대 60~70학번들이 만든 한백산악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런 인물이 노동부의 수장이 됐다. 아카데믹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무늬만 진보였던 김대환 전 장관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 장관은 지난 4월3일자 한국일보(30면)에 <여성인력 경제성장 엔진으로>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장관은 글로벌 기업인 IBM의 여성인력 활용 사례까지 들어가며 여성 인력의 경제활동 확대를 위해 모성보호 비용을 적극 분담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월 9일에는 KBS라디오 ‘박에스터입니다’에 출연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기업에서는 압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통과될 비정규직법의 내용에 따라 시행해야 할 것을 먼저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때까지 우리는 어디 내놓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인 이 정권의 빈약한 인물난이 기우에 불과하다며 이 장관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대는 잠시였다. 이 장관의 여성인력 활용을 위한 직장보육시설 확대에는 정작 그 노동을 직접 담당할 보육노동자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없었다. 내년 5월까지 실시하겠다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지난 8월에 발표되자마자 공기업들은 앞 다퉈 비정규직들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결국 파리 목숨인 비정규직을 대량해고시켜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비율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꼴이 됐다.

이 장관은 엊그제 19일자 중앙일보에 다시 <단계적 사고 필요한 노동계>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한비자의 얘기까지 꺼내면서 시작한 장관의 글을 비정규직 문제를 유연하게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자고 제안했다. 장관은 그렇지 못한 노동계가 독선적 사고에 젖어 총파업을 남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장관은 독선적 투쟁의 사례를 KTX 여승무원 문제라고 들었다. 그러면서 장관은 이들에 대해 철도공사가 자회사 정규직을 제안하는 양보안을 냈는데도 거절했다고 했다. 덧붙여 장관은 철도공사의 양보안은 노사가 윈윈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고 평가했다.

장관 말대로 유연한 양보안을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바로 그 철도공사가 지난 8월 비정규직 대책이 나오자마자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자른 뒤 그 빈자리에 정규직을 전환배치 시키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 이렇게 하면 숫자장난으론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줄어든다. 자회사를 수 십 개씩 만들어 자회사 정규직으로 넣으면 통계상으론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제로가 될 수 있다. 이런 게 장관이 말하는 단계적 노동행정인가.

장관은 고대 법대를 나와 사시에 붙었다. 그러나 장관의 첫 직업은 판사도 변호사도 아닌, 요즘 말로 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다. 장관은 3학년 2학기에 고대 전체수석과 동시에 고시 1차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졸업때까지 최종합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장관이 택한 첫 직장은 한독약품 영업사원이었다. 007가방 하나를 들고 전라도 시골 약국으로 다리품을 팔아 훼스탈과 에스파숀을 팔았다. 21세기에 제약사 영업사원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십중팔구는 노동자 축에도 끼워주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다.

장관은 교과서만 외우면 대학갈 수 있던 시절에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여수공고를 졸업한 뒤 명문 고려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장관이 21세기 교육행정 아래서 시골 고등학교를 나왔다면 명문대는 고사하고 서울 소재 대학이나 들어갔겠나.

한때 노동자였던 정치인 이상수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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