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사정위원회에서 산재보험제도 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노사정위원회는 합의문을 통해 재정·징수, 요양·재활, 보험급여, 적용대상, 관리운영체계 분야 등 노사 간에 쟁점이 형성되어 있는 산재보험 전 분야에 걸쳐 합의안을 도출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사정위원회의 자체 평가와 달리 주요 과제가 중장기 과제로 돌려져 있고, 어떤 과제는 통째로 빠져 있으며, 제안된 정책 대안 역시 산재보험이 내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함을 확인할 수 있다.

산재보험개선 산재노동자 절규에서 시작돼

사실, 산재보험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 의제로 다루어지게 된 데에는 산재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가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많은 노동자가 사업주의 은폐로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직업병으로 고통받고 있어도 자신의 병이 산업재해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서 값비싼 치료비 부담과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의 현실이 그 이면에 존재하였다.

용케 높은 산재보험의 문턱을 넘어도 원래의 직장과 사회로 돌아갈 희망을 차압당한 채 고통스러운 병실 생활과 편견과 무지로 가득 찬 도덕적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던 산재노동자의 처참한 현실도 그 한편에 존재하였다. 더욱이 영세소규모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산재보험의 안전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상은 오히려 더 산재보험에서 배제되는 역설적 현상이 수십년 동안 반복되면서 이제 산재보험이 모든 노동자와 그 가족의 안전과 미래를 보장하는 보편적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던 것도 사회적 의제 형성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그렇지만, 산재보험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는 정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느새 부차적인 과제로 전락하고 경총 등 특정 이해집단의 경제 논리가 정부 정책에서 우선적인 가치와 과제로 부각되었다. 그 결과 보험자인 근로복지공단이 사전에 산재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잘못된 사전 승인 절차를 개선하고 영세소규모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특수고용직노동자 등에서 보험 적용 대상을 실질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노동자의 요구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거나 중장기적 과제로 넘겨진 대신, 경총이 주장했던 요양관리 강화가 주요 과제로 부각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 과정을 거쳐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안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산재보험의 핵심적인 정책 필요 집단이자 존재 이유인 노동자의 요구가 산재보험의 집합적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는 경총의 요구와 동일 선상에서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는다고 하겠다.

산재예방사업비 3% 국가책무 방기

먼저, 재정·징수 부문에서 합의된 안의 한계와 문제점을 살펴보면, 차등보험료율제를 다른 사회보험과 같은 평균보험료율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완전히 빠져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차등보험료율제는 산재예방의 역할을 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부담 능력이 없는 소규모사업장이 대규모사업장에 비해 산재보험 재정의 분담률이 높아 경제적 격차를 더 벌어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오랫동안 개선이 요구된 부분이었다. 물론, 부분적으로 업종 간 보험료율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격차가 20배에 달하여 산재보험을 통해 공동의 사회적 위험에 대하여 사회적 재분배를 달성한다는 사회보험의 기본적 기능을 수행하기는 역부족이라 할 수 있다. 산재예방사업비의 경우도 산재예방에 대한 기금지출예산의 3%만 담당하겠다는 안을 제출하고 있는데, 공공적 영역인 산재예방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여전히 방기하는 안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로 요양·재활 부문에서 합의된 안을 살펴보면, 산재 여부를 인식하기 어려운 노동자와 여러 조건으로 산재 신청이 어려운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의 사전승인제도를 철폐해야 하는데도, 사업주 날인 등의 독소조항에 그대로 남아 있는 사전승인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전혀 달라진 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주치의도 요양신청이 가능하게 되고, 진료비 대부제도가 도입되고, 종합전문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등장한 점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재해노동자의 접근성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요양절차의 개선 문제가 최소한 중장기 과제라도 제시되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통째로 빠져 있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재활급여도 원직장 복귀 원칙 없어 한계

세번째로 보험급여 부문에서 합의된 안을 살펴보면, 재해노동자가 재해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직장과 사회에서 정상적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낮은 휴업급여와 장해급여의 보장성 수준을 대폭 상향조정해야 했지만, 주요 내용이 과거와 달라진 바가 없거나 중장기 과제로 돌려졌다는 데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합의안은 형평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고령자 휴업급여 등 기존 급여를 하향 조정하고 저소득근로자의 휴업급여를 평균임금의 90%로 상향조정 하는 대안을 동시에 제출하였다. 형식 논리로 보면 합리적인 대안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애초에 휴업급여 자체가 평균임금의 70%로 낮게 설정되어 있어서 평균적으로 급여 보장성을 높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데도, 이 부분에 대한 개선안이 제출되지 않은 채 급여를 하향조정 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한, 소득근로자의 기준을 평균임금의 1/2미만으로 정의하고 있어서 그 기준에 해당하는 대상 노동자가 크지 않고, 해당하는 노동자 중 상당수가 이미 최저 임금 미만에 해당하기 때문에 현행 제도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형식적인 제도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재활급여를 신설한 부분은 매우 전향적인 태도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재활급여의 경우도 원직장 복귀와 정상적인 삶으로의 복귀에 대한 비전과 원칙 없이 단지 산재노동자의 보험급여 혜택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한계적이다. 만약, 노사정위가 진정성을 갖고 재활에 천착하였다면 당연하게 재활급여와 함께 산재노동자가 원직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대안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직업재활을 포함하여 재활체계의 구축과 이를 위한 시설, 인력 등 공적 인프라의 확충 및 예산 확대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합의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실천적 의지를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산재노동자 목소리 외면 경총 목소리 반영

마지막으로 보험적용 부문과 관리운영체계 부문에서 합의된 안을 살펴보면, 사회보험이 지향해야 할 보편적 적용 원칙을 실현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수고용직노동자를 포함한 산재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문제는 산재보험 개혁의 핵심적 과제 중 하나인데, 이 부분이 장기 과제 또는 별도의 논의 과제로 어떠한 개선안도 마련되지 못하였고, 관리운영체계에 있어서도 일부 노사 참여 폭을 확대하는 것을 제외하면, 근로복지공단을 서비스기관으로 기능을 재편해야 한다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면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노사정위 개선안은 애초 그러한 정책이 필요한 산재노동자와 취약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의 요구에 부응하여 만들어졌다기보다 경총 등 특정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주요한 반영되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의 이면에는 노사정위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현재 노사정위는 산재보험제도 개혁을 요구했던 핵심 당사자 중 하나인 민주노총이 빠져 있다. 산재노동자도 제도 개선안을 만드는 주체로 참가하지 못하였다. 제도 개선을 오랫동안 주장했던 핵심 당사자가 빠진 상황에서 마련된 개선안이 노동자의 이해를 충실하게 반영되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근로복지공단, 군림 아닌 복귀까지 지원해야

산재보험은 변해야 한다. 노사정위에서 제시한 개선안을 뛰어넘는 전향적인 개혁안이 나와야 한다. 산재보험제도를 알거나 모르거나 재해를 입은 노동자라만 누구나 보편적 급여를 받을 수 있고, 근로복지공단 또는 정부가 운영하는 양질의 재활센터에서 충분하게 재활서비스를 제공받아 위험이 제거된 원직장에 복귀할 수 있어야 하며, 장애를 입어도 정상적인 사회적 삶이 보장될 수 있도록 산재보험제도가 개혁되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노동자에게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산재 발생부터 직장 및 사회 복귀의 전 과정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서비스기관으로 변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산재보험제도 개선안이 마련된다면 노동자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환영의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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