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한국에서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 국내 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책임투자 인식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노동연구원(원장 최영기)은 6일 오후 남대문 명지빌딩에서 ‘노동·사회 관점에서 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추진방향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한국노동연구원은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활동의 환경적 책임은 강조되지만 노동·사회적 관점에서 사람중시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다분히 간과되고 있다”며 “이런 불균형적인 CSR 추진방식은 국제적인 기준이나 동향과 비교할 때 문제가 있어 국가적으로나 기업들에게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노동연구원은 “노동·사회적 관점에서의 CSR이 지행해야 될 목표를 제시하고 아울러 기업, 노동운동, 시민운동, 투자기관들 간의 상호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보다 균형잡힌 CSR 패러다임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며 이번 토론회 개최 배경을 밝혔다.


“기업의 고용책임 수준 매우 저조”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사회 측면에서 진단한 우리나라 CSR의 실태와 발전방향’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아직 한국의 기업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투자 인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04년 조사한 2003년 사업체 패널 자료 중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 전반에 대한 자료, 노무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해당기업의 노사관계 설문이 모두 수집된 1,615개 기업을 대상으로 CSR 실천 정도를 분석한 결과, 우선 국내 기업은 종업원에 대한 고용책임 수준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답한 1,615개 기업 중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강제적 인원감축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보유하고 있다’고 대답한 기업은 34.1%에 그치는 데 반해 나머지 65.5%의 기업은 이런 정책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표1 참조>

또한 최근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관련, 비정규직을 사용한 적이 있다는 기업은 61.8%에 달한 반면, 사용한 적이 없다는 기업은 38.5%에 그쳤다. 게다가 비정규직 비중을 줄이고 있다는 기업은 15.0%에 그치고 있는데 반해 비중을 유사하게 유지하거나 비중을 늘려온 기업은 41.1%로 나타났다.<표2 참조> 이는 그만큼 국내 기업들이 종업원의 고용안정에 대해 그 책임에 소홀해 왔음을 알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53.8%로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축소할 계획이라는 응답(45.8%)를 앞질러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고용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표3 참조>


“노조의 의사결정 참여도 매우 저조”

노사관계에 대한 국내 기업의 CSR 실천 수준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설문에 응답한 기업체들 중 노조가 있는 기업은 28.0%에 그쳤다. 활동이 전혀 없는 휴면노조가 0.4%, 노조가 없는 기업이 71.6%를 차지했다. 또한 노동자와 사용자간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노사협의회의 경우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73.9%, 없다고 대답한 기업은 26.1%였다. 응답기업의 27.7%가 노조와 노사협의회 모두가 존재하고, 둘 다 없다는 기업도 25.9%에 달했다.

이장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조 존재 여부가 노사관계에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담당함을 감안한다면 노조가 없는 기업이 70%라는 것은 다수 우려되는 부분”이라며 “또한 노조와 노사협의회 기능과 역할을 감안할 때 역시 (둘 다 없는 기업이 25.9% 라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노조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비율은 19.5%(매우 그렇다 1.3%+그렇다 18.2%)에 그친 반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39.6%(그렇지 않다 34.9%+매우 그렇지 않다 4.7%)보다 낮아 노조의 의사결정 과정 참여는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표4 참조> 실질적으로 종업원이 기업의 경영 관련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한국 기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란 지적이다.

구조조정 과정에 대한 노조 참여에 대해 참여하고 있다는 기업은 43.6%로 그렇지 않다는 기업 20.4%보다 높았다. 이장원 선임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이 인력감축 등을 동반하는 문제인 만큼 노조의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짐작된다”며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비율이 20.4%에 이르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노동·시민운동 CSR에 관심 가져야”

이에 따라 이장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그는 “우리사회 CSR 실태는 한편으로는 본격적인 태동기의 특징을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주체들간 공감대 및 협력이 매우 부진하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정부는 최근 CSR에 대한 기준들을 국제규범에 맞게 제정했지만 이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끌고나갈 추진체계나 법제화 노력이 부족한 현실이며 기업들은 한편으로 지속가능보고서의 작성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를 개별 기업들의 자의적 노력에만 맡겨두고 기업들간의 공동규범으로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은 미약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서는 우리기업들의 CSR 대응이 그 논점을 분명히 하고 있지 않으며 실체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다가서지 못하고 구호와 홍보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CSR의 실천전략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거나 대응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역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장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CRS 인증에 대한 범사회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정부부처 안에서 CSR을 담당할 단위를 강화해야 한다”며 산자부 단독으로 배타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환경부, 노동부, 외교부, 재경부, 국가인권위 등 관련 국가기구가 참여해고 책임자의 지위도 격상시켜야 한다고 정부의 역할을 주문했다.

또한 그는 “기업이나 노동·시민운동과도 적극적 대화와 협력을 통해 CSR이 기업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기업경영과 장기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물꼬를 터야 한다”며 “노사간 공동으로 CSR 관련 보고서를 준비하고 공동으로 관련 문제들을 모니터링 하는 열린 자세가 있어야 국제규범과 사회책임투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CSR 통해 노동의제확대·단체교섭확대”

이날 ‘CSR과 노동조합운동의 과제’란 주제발표에 나선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도 “노동자(노조)이 CSR 논의에 있어 1차적 이해당사자로서 위상을 갖고 있지만 핵심 이해당사자로서의 역할과 권리는 노조를 통한 ‘단체교섭권’으로 한정돼 있으며 기업지배구조에서 배제돼 있다”며 “노조가 CSR에 참여한다는 것은 기업의 1차적 이해당사자로서의 ‘위험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법률과 계약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핵심 구성원에 대한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노동자 및 노조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노 부소장은 “CSR은 시민사회의 요구에 응답하는 기업주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며 “노조운동이 기업주도의 CSR 활동에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기업에 대한 감시자 및 규제자로서의 자기기능 약화 및 CSR을 매개로 한 ‘경영참여’의 폭을 축소하는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이라며 보다 적극적 자세를 요구했다. 이는 △노조운동의 의제 확대 △단체교섭 활동의 보완 역할과 기능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이 소통·연대할 수 있는 매개점 △국제노동운동의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매개 고리로 CSR이 작용할 것이란 주장이다.

한편 이날 정책토론회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의 사회로 이장원 선임연구위원과 노광표 부소장 이외에 최정철 기업책임시민연대 운영위원장이 ‘우리나라 지속가능보고서 실태와 과제’란 주제발표에 나섰으며,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노진귀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 전동선 전경련 윤리경영팀장, 안윤기 포스코 경영연구수석연구위원, 김훈 뉴패러다임센터 소장, 김성기 SH 자산운용 본부장이 지정토론자로 나섰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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