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혁신규약’을 통과시켰던 한국노총에 또다시 규약개정 논란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통운수노동조합총연합회(이하 교운총련)를 중심으로 한 산별위원장들이 규약개정안 논의를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재개정의 핵심내용은 지난해 6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된 혁신안 중 3천인 선거인단제도, 부위원장 선출제와 부위원장 비정규 및 여성할당제, 위원장-사무총장 런링메이트제, 대의원 여성할당제 등으로 압축되고 있다.

한국노총 산하 산별위원장들은 각각의 사안에 따라 의견을 조금씩 달리하고 있지만 적어도 반수 이상이 규약개정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규약개정이 지난해 한국노총 전현직 임원들의 비리사태 파문에 이어 ‘혁신과 개혁’에 열망을 안고 90%가 넘는 대의원들의 지지로 통과된 것인 만큼 ‘개혁의 후퇴’로 비춰질까봐 우려하는 표정 또한 역력했다.

 
 
교운총련 중심 돼 서명운동 시작

특히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자’는 취지로 개정된 선거인단제도와 부위원장 직선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경우, 이를 준비해 왔던 일부 단위노조 위원장들과 조합원들의 불만이 직접적으로 표출될 수도 있어, 규약개정 논란은 한국노총의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위원장들은 이같은 논란이 조직 갈등으로 확산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했다.

6일 한국노총 산하 각 산별위원장들에 따르면, 교운총련을 중심으로 한 일부 산별위원장들이 규약 재개정에 뜻을 모으고 이를 위한 서명운동을 다른 산별위원장과 각 단위노조로 확대하고 있다. 아직 서명에 동참하지 않은 산별위원장들도 각각 사안에 따라 의견은 달리했지만 일부 재개정에 동감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또한 다수가 ‘한번 시행도 안 해보고 규약 재개정 논의에 나서는 것’과 이같은 규약 재개정 논의가 ‘한국노총의 개혁 후퇴’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운 표정이었다.

먼저 교운총련 소속 항운, 해상, 연합, 자동차, 택시노련은 위원장들은 지난 5일 회의를 열고 이같은 방안에 합의했다. 최봉홍 항운노련 위원장은 “대의원대회와 각종 회의가 토론의 장이 돼야 하는데 현행 대의원수도 많아 효율적인 논의는커녕 군중심리가 만연한 회의 풍토가 됐다”며 “더군다나 3천명 선거인단제도까지 도입한다면 혼란이 더 극심해질 것”이라고 규약개정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이어 최 위원장은 “좋은 의견이던 나쁜 의견이던 다른 의견들은 충분히 토론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추진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현 규약, 조직 강화에 도움 안돼”

자동차노련은 교운총련 결의에 이어 이날 오후 자체적으로 시도지역대표자회의를 열고 산하 대표자들의 결의도 받은 상태다. 강성천 위원장은 “산하 대표자들의 결의를 받아 조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단위노조대표자들로 서명운동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현 규약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만큼 재개정 논의를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3천인 선거인단제도는 실제 추진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투표와 논의의 효율성도 떨어뜨려 오히려 조직 발전을 해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현 규약이 조직 발전보다는 혼란만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민주노총도 대의원대회가 무산되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에서 이같은 제도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반면 유제욱 사립대노련 위원장은 이같은 의견에 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유 위원장은 “개혁을 위해 시행된 규약을 시행도 해보지 않고 다시 바꾼다는 것은 어떠한 명분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선거인단제와 부위원장 직선제는 조합원의 뜻을 최소나마 더 반영하자는 뜻에서 추진한 것인 만큼 이를 되돌린다면 개혁에 반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유 위원장은 “한국노총 비정규조합원 숫자가 적은 만큼 비정규할당 부위원장을 담당 부위원장을 두는 등의 세부적인 것은 논의 가능하지만 전체적인 틀을 바꾼다는 것은 안 된다”며 “한국노총의 변화를 위해 일단 제도는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행도 안 해보고 … 개정 안돼”

이같은 유 위원장의 의견에 다른 산별위원장들도 동의는 표하면서도 일부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동시에 피력했다.

배정근 공공노련 위원장은 “지난해 비리문제 파동 이후 개혁 차원에서 통과된 규약을 시행도 안 해보고 재개정한다면 조직적 반발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부위원장 선출제와 여성할당제 등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재개정할 필요성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위원장 선출제는 집행부의 지도력이 분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여성할당제 또한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선거인단제도에 대해서는 조합원의 뜻이 반영된 제도인 만큼 재개정이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배 위원장은 현 규정에 대해 “전체적으로 일장일단이 있다”고 평가했다.

유영철 관광서비스노련 위원장은 선거인단제도에 한해서만 일부 재개정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용 문제, 조합원 참여도 등에 대한 각 산별의 상황이 다른 만큼 이를 고려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다만, 유 위원장은 “과거 대의원 선거로 돌아가서는 안 되며 인원만을 다소 조정하는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유 위원장은 위원장-사무총장 런링메이트제나 부위원장 선출제 등을 현 규약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더불어 밝혔다.

대다수의 산별위원장들은 이같은 규약 재개정 논의가 조직 간의 분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했다. 때문에 몇몇 산별위원장들은 이같은 규약 재개정에 대한 의견 피력에 대해 부담스러워 했다. 개정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밝히지 않은 한 산별위원장은 “아직까지 논의가 공론화되지 않았고 산별위원장 간의 논의도 충분하지 않았던 만큼 향후 추의를 지켜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한 산별의 위원장은 “규약 재개정은 ‘개혁과 후퇴’라는 논리보다는 실제 현 규약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노련들의 현실을 감안한 논의가 돼야 한다”며 “이같은 논의가 조직 갈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갈등으로 이어지나 우려 많아

규약 재개정 논의를 추진하고 있는 산별위원장들은 다른 산별위원장과 단위노조 위원장들에게 ‘재논의 동의 서명’을 받아 이를 한국노총 중앙집행부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중앙 차원의 규약 재개정 회의체를 구성해 달라는 것이다.

강 위원장은 “지금 교운총련이 중심이 돼 벌이고 있는 서명은 규약개정을 전제로 열린 논의를 해 보자는 취지”라며 “아직 본격적인 서명운동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많은 수의 산별위원장들이 규약개정에는 동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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