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섯달 사이 중앙고속 소속 버스기사 세 명이 숨졌다. 이들의 사인을 둘러싸고 이 회사 노조는 ‘지병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쪽과 ‘노동강도 강화가 부른 과로사’라는 쪽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병으로 죽었다”는 사람들은 이 회사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집행부들이고, “과로사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집행부와 성향을 달리하는 노조의 일부 대의원들이다.

잇달아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이 회사 버스기사들은 “나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지만,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쉬쉬하고 있다. 한 버스기사는 “작년 8월 노사합의로 임금체계가 바뀐 후 버스 기사 1명당 버스 운행횟수가 늘고 임금은 줄었지만, 보복이 두려워 회사에도 노조에도 문제제기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조합원 잇딴 사망, 원인은 무엇?

이 회사 노사는 지난해 7월 버스기사들의 임금체계를 ‘시간제 중심(승점제)’에서 ‘운행거리제 중심(㎞제)’로 바꾸는 내용의 입금교섭에 합의했다. 당시는 이 회사 노조가 운전기사 채용 과정에서 취업사례비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노조 핵심간부가 구속되는 등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시기로, 노조위원장 또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던 시점이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체결된 이 회사의 임금협약이 그해 8월부터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버스기사들의 일일 운행횟수가 눈에 띠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월 220시간(하루 평균 10시간 근무, 20일 만근) 근무하면 실수령액 기준으로 약 150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던 버스기사들은, 임금체계 변경 후 하루 평균 17시간 이상 버스를 운행하면서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급료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임금 삭감으로 볼 수 있는 상황으로, 버스기사들은 “노선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사별로 20~30만원 정도의 월급을 덜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현상은 새로 도입된 ‘㎞제’가 ‘뛰는 만큼 돈을 주는’ 식의 능률제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존 ‘승점제’ 때에는 운행대기시간도 근무시간으로 포함되고, 야간운행을 한 경우에는 이틀 근무한 것으로 계산됐으나, 현행 제도는 연장 및 대기 수당을 일부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예전과 동일한 횟수를 운행할 경우 월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 회사 버스기사들은 일일 운행횟수를 무리하게 늘려가며 예년의 월급을 받아가고 있다.

특히 단거리를 운행하는 버스기사들의 노동강도가 심각하게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원주를 운행하는 기사의 경우, 기존에는 월평균 96회 왕복운행 했으나 임금체계 변경 후 112회 왕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일 역시 평균 7일 정도 늘어났고, 승무시간은 기존 288시간에서 388시간으로 100시간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동차노련의 한 관계자는 이 회사 노사가 도입한 ‘㎞제’에 대해 “운행거리 중심의 임금체계는 업계에서 노선별 임금 및 노동강도 격차를 초래하기 때문에 최근 들어 사라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동료 기사들 "능률제가 부른 죽음"

한편, 예년 수준의 월급을 받아가기 위해 버스기사들이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던 와중에 지난 7월, 9월, 11월 잇달아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한 기사들의 공식 사인은 각각 뇌종양, 외출혈, 심근경색. 그러나 이 회사 버스기사들은 “무리한 운행이 부른 과로사”라고 확신하고 있다. 사망자들과 입사동기라고 밝힌 한 기사는 “죽은 동기들이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왔다”며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근로조건 저하가 뻔히 예상되는 협약에 서명한 노조 집행부”라고 말했다. 그는 “99년 입사했는데, 올해처럼 사람이 여럿 죽어나간 것은 처음”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일선 기사들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노조 집행부의 생각은 달랐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고용안정과 회사와의 상생을 두루 고려하다보니, 능률제로의 전환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며 “사망한 조합원들은 지병으로 오랫동안 약을 복용해 온 사람들로, 노사 합의 때문에 죽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이 문제를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한 이 노조의 일부 대의원들은 “능률제 운운하는 노조가 사용자와 다를 게 무엇이냐”며 “지난해 비리 의혹을 받았던 노조 집행부가 사측과 모종의 거래끝에 이런 개악안을 받아들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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