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가 발의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국회 입법 처리가 임박한 가운데 민주노총 내 공공부문 노조들이 제기하는 ‘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필자가 속한 공공연맹에서 2006년 한해 조직의 최우선적 요구와 과제로서 모든 투쟁의 기본 출발이 되고 있는 의제가 바로 이 ‘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이다. 작게는 각 공공기관 내 민주적 운영(이사회 운명 및 기관장 추천위원회 구성 등)에서부터 정부가 각 공공부문에 공통적으로 부과하는 예산지침과 경영평가제도의 민주적 개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최근에 문제가 되는 기획예산처의 법안 발의를 포함하여 전체 공공부문에 가해지는 통제구조를 어떻게 바꿔낼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이 ‘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의 의제이다.

물론 연맹 중앙 뿐 아니라 연맹 내 굵직굵직한 노조들의 2006년 투쟁에도 이 의제는 ‘약방의 감초’격으로 등장했다. 철도노조가 제기한 ‘공공철도이사회’ 건이나 사회보험노조가 제기한 ‘건강보험공단 지배구조 민주화’ 건은 그 좋은 예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는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미명아래 갈수록 신자유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공공개혁의 운영체제에 맞서 대안적 또는 대항적 지배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우리가 왜 지배구조 민주화에 주목하는가

과거 김대중 정부가 공공개혁을 몰아치기 이전에도 공공부문노조에서는 ‘임금가이드라인 분쇄’나 ‘낙하산인사 저지’ 등의 요구를 통해 지배구조 민주화의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노조의 투쟁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수준이었다. 권위주의적 정부의 획일적 공공관리 및 하향적 통제체제라는 ‘개발독재’가 지배질서로 작용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공공부문 투쟁에서 ‘자율경영’ 또는 ‘자율교섭’ 요구의 정당성 또한 인정되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지배체제는 98년 IMF 경제위기하의 공공부문의 전면적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그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명목은 공공기관의 생산성과 효율성 부재였다. 물론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제 흐름의 외양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내용적으로는 공공기관에 대해 시장적, 민간경영적 요소가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지배구조에서도 변화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공기업의 독점 해소 및 경쟁체제 △공공기관에 대한 효율적 경영체제 도입(ERP, BSC 등) 및 고객 만족 경영 △각종 민간 참여하의 의사결정구조(정부혁신위원회, 투자기관 및 산하기관의 운영위원회, 기관장추천위원회 등) 등으로 구체화된 이러한 흐름은 ‘신공공적 경영관리’체제(New Public Management : NPM)로 불리워졌다. 물론, 이 NPM의 원조격은 ‘신자유주의의 선구자’ 영국 대처정부의 공공개혁이었다. 공공부문은 ‘방만 경영’과 '도적적 해이'의 온상으로서 이제 해체하고 변모시켜야 할 '공공의 적'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시기의 공공부문은 이전의 권위주의적 지배구조에 민간의 경영흐름이 가미된, 즉 '권위주의와 시장주의'가 혼합된 지배구조로 변화된 것이다.

최근 전 공공부문에 몰아닥치고 있는 이 ‘신공공적 경영관리’에 입각한 공공개혁은 이미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미 주요 국가기간산업(통신, 철도, 발전, 가스 등)의 민영화 및 경쟁체제에서부터, 공공부문에 날로 확산되는 비정규직 및 외주용역화의 문제, 그리고 공공부문 종사자에 대한 각종 경영평가, 혁신평가, 성과급 경쟁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공공부문은 이제 시장질서의 축소판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시장질서 축소판으로 변모되는 공공부문

다시 얘기를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안)’으로 돌려보자. 이 법률안은 출발은 ‘공공부문 지배구조 혁신’에서부터였다. 앞서 말한 공공기관의 문제점, 즉 ‘방만 경영’ 및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에 대한 내외적 통제구조를 좀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본 법안의 취지였다. 98년 이후 10년 가까이 공공기관을 지지고 볶고 들쑤셨음에도 여전히 문제점 투성이라 이번 기회에 아예 통째로 바꿔내겠다는 것이다.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기획예산처가 전체의 국가공기업과 정부산하기관을 하나의 관리체제 하에 통합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고, 외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각종 지배구조(공공기관운영위원회, 이사회, 임원추천위원회, 감사 및 선임비상이사, 경영평가 등)에 외부전문가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외부전문가’는 앞서 ‘신공공적 경영관리’의 주창자들이다.

지난 98년 공공개혁이 시대적 화두로 제기되고 ‘신공공적 경영관리’가 보편화된 이래 정부 주변에는 이러한 민간인 전문가가 참여하는 의사결정기구가 광범위하게 존재해왔다. 멀리는 지난 98년 통신, 전력, 철도 등의 구조개혁추진기구에서부터 정부혁신위원회를 거쳐, 최근에는 정부투가기관과 산하기관의 운영위원회, 각 출연연구기관의 연구회, 각 공공기관의 이사회 및 기관장(사장)추천위원회, 각 부문(정부투자기관, 정부산하기관, 정부출연연구기관, 지방공기업, 기금관리기관)의 경영평가단 및 관련 TF팀 등에 이르기까지 민간인 전문가들은 즐비하다.

그런데, 이들 민간인 전문가의 정부결정 참여에는 공통된 측면이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직능단체의 추천이 아닌 기획예산처 등 정부의 일방적 임명절차에 임명되는 것이고, 또한 한결같이 공공부문 개혁과 관련하여 민간경영 또는 시장주의적 개혁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의 전문가들은 대개 이런 경우에 제외되는 것이 상례이다.

신공공적 경영관리, 누가 주도하나

그들은 공공기관의 근본적 문제점이 무엇이고, 공공기관의 ‘공공적 가치’가 어떤 것인지 애당초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그들 임명권자의 의중에 충실할 뿐 아니라, 오로지 현재의 공공기관은 ‘공공의 적’이라고 여론 조작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허울좋은 ‘국민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각종 언론과 토론 공간 속에서 공공개혁에 대한 진정한 국민여론을 왜곡하여 공기업의 공공적 영역을 축소하여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변모시키고 공공기관의 운영체계를 시장주의로 전환시키자는 나팔수로 자임하면서 전체 공공개혁을 망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공공성 강화로 대항적 흐름을 주도하는 공공부문 노조에 대한 공격수 역할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지배블럭을 강화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광풍처럼 몰아친 공공개혁이 왜 한결같이 시장적 경영 일변도로 흘렀는지, 그리고 공공부문노조를 ‘개혁의 걸림돌’로, 공공기관 종사자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했는지, 그리고 이것도 모자라 또다른 지배구조 혁신을 획책하는 것인지, 그 의도는 결국 명확한 것이다. ‘신공공적 경영관리’ 뒤에 숨어있는 지배구조는 결국 신자유주의적 공공개혁의 견인차인 것이다. 결국, 신공공적 경영관리가 일반화되면서 기획예산처 중심의 관리 일원화가 갖는 권위주의적 지배구조 못지 않게 시장주의적 지배구조의 폐해가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공세적인 지배구조 민주화 투쟁 전개해야

우리가 왜 이러한 기획예산처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을 반대하고 민주적 지배구조를 목표로 하는지 그 이유는 이제 분명해진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적 흐름 속에서 수세적으로 제기된 기업별 노조 차원의 ‘자율경영’ 또는 ‘자율교섭’을 뛰어넘는 공세적인 지배구조 민주화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는 △주요 의사결정기구(정부운영위원회, 이사회, 임원추천위원회)의 민주적 구성 및 노조대표 참여 △공공개혁 지표(예산지침, 경영지침, 경영평가) 결정시 민주적 논의구조 보장 △공공부문 관리체계의 통일화 및 이를 토대로 한 공공부문 대정부 교섭 등이 포함되는 것이다. 공공연맹은 이같은 공공기관 지배구조 민주화를 위해 정부법안에 맞서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을 통해 대체법안을 발의하고, 이같은 요구를 법제화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결국, 공공부문노조는 각 부문의 산업정책(철도 발전 통신 가스 등 국가기간산업, 지하철 등 대중교통 부문, 사회보험 및 보건의료 부문, 금융 및 언론 등)에서의 사회공공성 투쟁 못지 않게, 이들 정책결정구조의 민주화, 즉 지배구조 민주화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공공부문의 지배구조 민주화 투쟁은 하나의 사업장이 아닌 전체 정부와 국가 단위의 경영참여 및 교섭구조를 발전시킨다는 차원에서 공공부문의 노동권 강화와 직결되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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