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겨울은 특히 춥다. 장기투쟁사업장의 비닐천막으로, 여의도 국회 앞 집회현장으로, 육중한 기계들이 재빨리 돌아가는 공장으로, 허허벌판 공사현장으로, 연말연시 특별세일 백화점 매대 앞으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아본 사람은 안다. 정말 시리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주변 곳곳에서 훌쩍훌쩍, 콜록콜록 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감기’라는 놈의 습격이다. 사실 감기는 날씨와 크게 관련이 없다. 날씨가 추워지는 환절기나 겨울철에 감기 환자가 많아지는 원인은 우리 몸의 전반적인 신진대사와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게 의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이다.

어쨌든 감기는 역사 이래 인류를 가장 괴롭혀 왔던 질병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한해에 수억명이 감기로 시달리고 감기약으로 수조원이 소비된다. 그리고 감기로 인한 노동력 손실은 이보다 더 막대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는 지금까지 감기바이러스를 정복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때쯤 병원과 약국은 감기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왜 그럴까?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하십니까?

학습지교사 '나아퍼' 씨는 감기다 싶으면 일단 출근하면서 동네에 ‘용하다 약국’을 찾아 TV에서 ‘초기감기 완전박살’이라고 광고했던 종합감기약을 찾는다. 하루 종일 몽롱하다. 하지만 다음날도 훌쩍, 에이취, 쿨럭쿨럭….

약으로도 해결이 안 될 정도로 증상이 심하다고 판단한 나아퍼 씨는 잠시 틈을 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맡는다. 여전히 기침과 콧물은 해결 안 됐지만 두통이나 몸살기운은 약간 가라앉은 기분이다. “아, 이제 나아가나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의료이용’ 결과를 보면 ‘감기’ 는 병원과 약국을 찾는 질병 가운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병원 외래환자 28.23%가 감기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2위 관절염(8.87%), 3위 고혈압(5.18%) 환자 수를 합쳐 곱하기 2를 하면 감기환자 수가 나온다.

약국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5명 중 2명(38.19%)은 감기환자다. 관절염(5.52%), 고혈압(5.4%), 기타 피부질환(3.83%)이 뒤를 잇고 있지만 이 수를 다 합쳐도 감기환자 수를 따라가지 못한다.

건강보험공단의 2004년 건강보험통계연보를 보면 그해 우리나라 국민은 평균 1년에 15일 가량 병원을 찾았다. 통칭 ‘감기’ 때문에 병원을 간 사람은 무려 2,209만명(급성기 편도염 859만명, 급성 기관지염 779만명, 상기도감염 571만명)으로 인구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 세상에 감기약은 없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감기 때문에 의료기관을 찾고 있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감기약은 없다.

‘감기약 먹고 나았다’는 사람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감기는 약 때문에 낫는 것이 아니라 나을 때가 되어서 나은 것뿐이다. 감기약은 바이러스를 잡은 게 아니라 신체의 저항력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해열, 거담 등)을 했을 뿐이다.

감기는 코, 목 기관지 등의 호흡기 점막에 생기는 염증성 질환과 알레르기성 질환을 총칭하는 병이다. 지금까지 의학계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러한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100여종도 훨씬 넘는다. 더욱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수백 종의 아형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주기적으로 변형을 일으켜 변종을 만들어낸다. 바이러스는 크기가 1만분의 1mm 정도인 작은 유전자 조직. DNA와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몸속에 들어온 바이러스는 코와 목, 기도, 폐 등을 주 활동무대로 한다. 이들은 세포막을 뚫고 그 안에 침입해 세포의 물질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강인한 힘을 발휘한다. 침투한 세포로 하여금 더 많은 바이러스를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한 세포에서 대략 1,000개까지의 새 바이러스가 만들어져 인접한 세포들을 공격할 정도다.

인류는 아직까지 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다. 바이러스가 사람의 세포에서 증식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죽이면 사람의 세포도 같이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감기를 잡는 치료제를 개발했다는 뉴스는 한번도 나온 적이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감기는 특별한 치료 없이도 우리 몸의 면역 기전이 작용해 2주일 정도면 자연 치유된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무리하지 않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과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감기약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먹는 감기약은 치료제라기보다는 기침, 고열, 통증 등을 억제시켜 몸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증상 완화)을 줌으로써 감기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저항력을 키워주는 약이다. 몸이 안정되고 감기에 대한 면역능력이 생기면 몸은 스스로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다. 즉 약이 감기를 유발하는 원인을 제거했다기보다는 몸 구석구석에 느슨해진 면역력을 복돋아 주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약들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코감기에 걸렸을 때 약국에서 권해주는 약은 ‘항히스타민’ 성분이 함유된 알약이나 캡슐, 혹은 시럽 등이다. 콧물을 유도하는 물질인 ‘히스타민’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항히스타민은 또한 졸음과 권태감, 무기력감을 동반한다. 그래서 감기약을 먹으면 졸리고 몽롱하다. 특히 술 마신 사람에게 항히스타민제는 독약이나 다름없다. 항히스타민제는 술과 마찬가지로 뇌 중추신경계를 억제하고 마비시키는 기능도 하고 있어 이 둘의 잘못된 만남은 사람에게 치명적이다(죽었다는 사람도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 ‘감기를 한 방에 해결’하기 위해 선택하는 주사. 주사는 약보다 흡수속도가 빨라 사람들이 ‘더 효험이 강하다’고들 느낀다. 하지만 주사의 주요성분을 보자. 해열제, 항생제, 부신피질호르몬제, 비타민, 포도당 등이다. 특히 부신피질호르몬제는 ‘살찌는 약’, ‘뼈주사’라고 불리는데 입맛이 돌고 기분도 좋지만 때로는 질병을 악화시키거나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비타민이나 포도당 역시 감기에는 별로 효과가 없어 몸 안에 넣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특히 주사는 ‘쇼크 가능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맹신하다가는 기절할 수도 있다.


판매가는 알아도 생산가는 모르는 감기약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내 종합감기약 시장은 약 800억원 수준으로 '판피린', '쌍화탕' 같은 액체 약품이 300억원 가량을, ‘화콜’ 같은 알약 형태의 종합 감기약이 50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제약시장의 총규모가 대략 10조원 정도라고 하니, 800억 정도의 종합감기약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일부회사를 제외하면 감기약은 제약회사의 주력상품은 아니다.

종합감기약 성분은 대부분 특허권과 무관하기 때문에 생산에 큰돈이 들지 않는다. 감기약은 일반의약품 시장과 마찬가지로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지 않는 대신 시장진입 장벽이 낮아 마케팅비 등 영업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 국내에서 상당히 인지도 높은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며 지난해까지 영업업무를 담당해 온 한 직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예를 들어 약국에서 종합감기약 100박스를 주문하면 300박스를 갖다 줍니다. 물론 가격은 100박스만 받아요. 나머지 200박스는 덤인 셈이죠. 종합감기약은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약사가 환자에게 어떤 약을 주느냐가 관건이에요. 그러니까 제약회사 영업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약국에 얼마나 잘 보이느냐가 실적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회사에서 주력상품으로 밀고 있는 혈압약 같은 전문약을 주문할 때 감기약을 덤으로 얹어주기도 하고요”

제약업계는 “이러한 리베이트나 할인할증 문제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말하지만, 우리나라 제약시장 구조에서 이러한 관행이 뿌리 뽑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일반적으로 의학정보에 어두운 국민들은 약국에서 권해주는 약을 먹고, 약사는 제약회사에서 높은 마진율을 보장해주는 약을 주로 판매하고, 제약회사는 최대한 많이 생산해 많이 팔릴수록 돈을 벌 뿐이다.

30초면 감기환자 진료 끝! 비결이 뭐길래?

의사: 어떻게 오셨나요?
환자: 감기 때문에요.
의사: 증상은?
환자: 콧물이 나고 기침도 하고 으슬으슬 춥고 열도 좀 나는 것 같고...
의사: 주사 맞고 처방전 받아가세요. 다음 환자!

감기 때문에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와 대면하는 시간은 대략 30초 정도. 감기에는 약도 없다는데 의사들은 어떻게 30초만에 처방을 내릴 수 있을까?

지난 2월 보건복지부는 매우 쇼킹한,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자료를 공개했다. 2005년 3/4분기 감기와 편도선염, 축농증 등 급성 기도감염 환자, 즉 ‘감기환자’ 100명 이상을 진료한 의료기관 가운데 항생제 처방을 한 1만2,259개 의료기관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종합병원은 최고 81.94%, 일반병원은 최고 90.85%의 항생제를 감기환자에 처방했다. 동네의원 가운데는 항생제 처방률이 무려 99.25%나 되는 곳도 있었다.

동네의원은 감기환자의 90% 이상이 찾는다. 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들 동네의원 1,117곳은 감기환자 10명 가운데 9명에게 항생제를 처방했다.

항생제는 감기바이러스를 잡는 약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몸이 감기바이러스와 싸우느라 면역체계가 약해진 틈을 타 침투한 2차감염(주로 목이나 코 등에 염증을 일으킴)을 잡는데 쓰는 약이다. 하지만 ‘30초 진료’로 처방을 내리는 병원에서 균주검사를 통해 어떤 박테리아가 침입했는지 알아보고 이에 적합한 항생제를 쓸 리 만무하다.

더구나 항생제는 내성을 키운다. 위대한 발견이라고 불리는 페니실린 이후에도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가 출현했고 이에 맞서는 ‘메티실린’이라는 항생제가 나왔다. 메티실린은 ‘황색 포도상구균’에 졌고,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가 등장했다. 하지만 반코마이신에도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가 나왔다. 슈퍼박테리아에 대항할 약이 나올지 아직까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병원들의 항생제 처방은 과거에 썼던 값싼 항생제 대신 최근에 개발된 비싼 항생제를 계속적으로 처방해야 하는 악순환을 동반한다.

사실, 의사들은 감기처방으로서 항생제의 효능을 믿지 않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정범 공동대표(의사)는 “인후염 등 염증을 동반하는 2차 감염 외에는 감기에 항생제를 쓴다고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는 “철학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매우 엄밀하게 말하면 감기로 병원을 찾는 10명 중 9명에게는 사실 항생제 처방이 쓸모없다”고 말했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에도 ‘항생제가 소아감기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데 동의한 의사는 58.9%에 불과하다.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교실 조홍준 교수팀이 개원의 409명(소아과 205명, 가정의학과 204명)과 약사 158명을 대상으로 ‘항생제 처방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의사 5명 중 2명(40.3%)는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으면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갈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항생제 등 감기약을 많이 쓰든 적게 쓰든 특별한 제재를 받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원래 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감기가 낫지 않으면 환자들로부터 ‘저 의사는 실력 없어’라는 평판이 나오고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뺏길까봐 두렵기 때문에 처방전을 쓰든 주사를 놓든 ‘행위’를 해야 한다. 더구나 이 ‘행위’는 많이 하면 할수록 돈이 된다.

유럽 ‘감기’와 우리나라 ‘감기’는
처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영국 등 유럽에서 감기로 병원을 찾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라는 말을 한다. ‘병원 가는 데 돈이 필요 없다’는 데 한번 놀라고, 감기에 대한 처방이 달랑 ‘닭고기스프나 레몬 먹고 그냥 푹 쉬세요’가 전부라서 두 번 놀란다. 우리나라 의사들과 달리 이들 나라 의사들은 배가 불러서 그런 것일까?

차이는 진료비 지불제도에 있다. 우리나라는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하고 있는 반면, 영국 등 유럽에서는 주치의등록제도-인두제를 운영하고 있다. 쉽게 풀어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검사, 진단, 치료, 주사 등 각각의 행위마다 단가(수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의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의사는 수입이 늘어난다. 환자가 많이, 그리고 자부 병원에 올수록 의사에게는 이득이다.

그러나 흔히 주치의등록제도의 경우 의사가 맡고 있는 환자 수, 즉 자기의 환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일정지역의 주민 수에 일정금액을 곱하여 이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급 받는다. 즉 주민이 의사를 선택하고 등록을 마치면, 등록된 주민이 환자로서 해당 의사의 의료서비스를 받든지 안 받든지 간에 보험자 또는 국가로부터 각 등록된 환자 수에 따라 일정수입을 지급 받게 된다(가정의학과 등 1차 보건의료에 적용됨). 따라서 환자를 뺏길 우려도 없고 오히려 환자가 없을수록 이득이다. 때문에 영국의 병원들은 예방에 더 집중하면서 주민들이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는 건강한 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물론, 우리 정부도 이러한 차이를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공단 등은 ‘포괄수가제’로의 개편방안을 고심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정부는 감기 같은 경증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은 낮추고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을 높이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 병원 문턱만 높일 경우, 결국 돈 없는 서민들만 울게 될 것이 뻔하다.

감기와 노동시장의 함수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만약 우리나라의 지불체계가 영국처럼 바뀌어서 감기환자들에게 ‘다만 푹 쉬라’는 처방을 내릴 수 있을까?

다시 학습지교사 나아퍼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아퍼 씨는 주사처방에도 불구하고 감기증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이번에는 침을 삼키기도 어렵고 고열까지 동반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급성 편도선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목이 아팠지만 학생들에게 말을 하지 않을 방법이 없으니 감기가 더 도진 것 같다. 의사는 수술은 필요 없지만 1주일 가량 입원치료를 권했다.

학습지노조 서훈배 위원장은 “특수고용직인 학습지교사에게 1주일 입원치료는 그만 둘 것이냐, 말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관리자를 잘 만나면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지만 관리자가 나아퍼 씨 대신 회원관리를 맡아주지 않는다면 입원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나아퍼 씨의 사정은 특수고용직, 비정규직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를 쉰다는 것은 하루 일당의 문제이자 실직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IMF 이후 지속적인 고용불안을 느끼는 정규직에게도 ‘감기’로 인한 하루 결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의 질병관리 정책은 노동력의 보존 문제와도 직결된다. 이와 관련해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의사)은 “영국 등 유럽의 경우 노동자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요양을 하게 되면 건강보험 혹은 고용보험을 통해 통상임금의 60~80%가 상병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지급되지만 우리나라는 해당사항이 없다”며 “이는 우리나라가 감기로 쉰다는 것 자체가 용인되지 않는 사회라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는 “약국에서 일반약 가운데 종합감기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은 것과 대증치료(symptomatic treatment - 열이 나면 해열제를, 가래에는 진해거담제를 투여하는 것처럼 해당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요법)가 주된 치료방안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감기로 몸이 아파도 쉴 수 없는 노동조건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의 경우 푹 쉴 수 있는 요건이 안 되기 때문에 굳이 병원을 찾지 않아도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먹고 통증이나 증상을 완화시킨다는 말이다.

민주노동당 홍춘택 정책연구원(약사)도 “치료약 없는 감기약시장이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커진 이유는 의료시장의 기형성도 원인이 되지만 사회시스템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모가 함께 벌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구조 속에서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어떻게 되겠냐”고 물었다. 소아감기는 대부분 1~2일 푹 쉬면 나을 수 있지만 돈 벌러 나가야 하는 부모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그래서 무조건 병원부터 찾게 된다. 병원은 별로 쓸모없는 항생제가 든 주사와 약을 처방하고 아이들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은 더욱 강해진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개원의는 이렇게 토로했다.

“의원을 찾는 환자 중에는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몰라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머리 아픈 것 좀 해결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환자들은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일당은 벌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양심 있는 의사로서도 선택의 폭이 별로 없지요”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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