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개발독재시대의 중심을 거쳐 온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개발독재의 유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 역시 노동운동을 하며 과거 밀어붙이기식의 잔영에 대한 모종의 환상에 기대는 측면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 첨예한 사고의 기저를 뛰어넘어 다른 생각을 포용하고 갈등을 슬기롭게 조정하며 무엇이 국가의 앞날을 위해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선택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할 중차대한 시점이다. 그러함에도 오늘의 노동운동은 국민들의 눈에는 여전히 막무가내식이며 포퓰리즘에 기대는, 아름다운 진보라고 볼 수 없는 소수 ‘그들만의 잔치’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오만과 편견’에 놓여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진보운동,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는 되지 말아야

지난 9월11일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 대표단체들이 합의해 입법예고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이 국회 논의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이때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관용구가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노상강도가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에 초대한다고 데려와 쇠 침대에 눕히고는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망치로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톱으로 잘라 죽인 데서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라는 말이 생겨났다. 자기밖에 몰라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억지로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타이를 때 이만한 관용구가 없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선진적 노사관계 정착과 향후 어차피 초래될 막대한 노사정간의 사회적 비용의 해소라는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꿈이 없었다면 우리 한국노총은 애시당초 민주노총과의 마찰도, 민주노동당 일부 집행부가 최근 한국노총을 향해 쏟아낸 근거 없는 비난으로 인한 운동적 상처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안으로 로드맵이 통과되지 않으면 아무런 준비 없이 내년부터 노조 전임자임금 지급이 금지되고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시대를 맞게 된다. 더욱이 민주노총은 이번 사회적 합의를 '야합'이라고 비난하며 '노사관계로드맵 저지를 위한 총파업'을 지난11월15일 결행했다. 국회의원들까지 노사관계 로드맵의 수정 가능성을 내비쳐 정부와 한국노총, 재계가 치열한 과정을 통해 타결한 노사관계 로드맵은 그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존재마저 상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중소기업노조 노조재정자립 방안은 아직 없어

민주노총 동지들에게 묻고 싶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사업장은 노조재정자립 사업이 별반 어렵지 않다 하여 3천여개가 넘는 중소사업장노조의 전임자임금이 대책없이 지급되질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는다 말인가? 일부 대기업들의 복수노조유예 반발은 민주노총의 반발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총파업으로 해결될 사안인가? 과연 노동계는 총파업을 전개할 조직적 준비태세가 되어져 있는가?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한 노동계의 총파업 구호는 이제 우리사회에 식상한 엄포로 전락한 지 오래지 않은가?

이러한 답답한 현실 속에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대놓고 반대하는 민주노동당에게도 묻고 싶다.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 사회적 조건이 필요한데 과연 참여 주체의 대표성을 문제 삼기 전에 공당으로서 대표성을 스스로 포기한 민주노총의 이해 못할 협상 불참에 단 한번이라도 쓴 소리를 해보았는가?

지난 9·11 합의에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노사정위원장이 참여한 것을 문제삼고 민주노총을 배제했다고 비난하지만 사실상 민주노총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노사정대표자회의이고, 이 회의를 통해 노사정위 개편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이 합의될 수 있었던 투쟁의 중차대한 과정에 대해 민주노총의 전략적 오류는 민주노동당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민주노총이 합의에 빠진 것만 문제삼아 노사정위원회를 비난하는 현실은 공당으로서 취할 합리적 태도인가?

더불어 노사정 간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로드맵과 관련하여 사회적 합의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주요 어젠다를 사회적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인식 하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꿈꿔왔던 민주노동당이 스스로 비정규직과 사학법의 딜을 자행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행위이지 야합이 아니고 사회적 합의의 마지막 끈을 부여잡고 단계적 노동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한국노총의 고뇌에 찬 결단은 야합이란 말인가?

민주노동당에는 민주노총의 조합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노총의 조합원도 다수가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무런 대책 없는 비정규보호입법 저지에서 로드맵 합의 저지까지 민주노동당의 최근 행보는 노동자서민의 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한국노총의 일말의 애정까지 함몰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선 아닌 차선에 한국노총도 마음은 불편

미약한 시작이었지만 제도권 정당으로서 오늘의 민주노동당이 자리하기까지 한국노총은 민주노동당 성장의 과정에 함께 있었다. 이용득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전국단위의 집회에 민주노동당의 집행부를 우선적으로 초대하고 함께 연대하였으며 민주노동당의 성장을 위해 조직적 배려와 헌신이 있어 왔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사회적 합의의 내용과 한국노총의 고민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한번이라도 진정성 있게 귀를 기울이고 손을 건네 보았는가?

민주노총 집회에서 민주노동당의 대표로서 차마 할 수 없는 한국노총에 대한 비난의 조건과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에 진보정당의 토대가 취약한 한국사회의 제반조건을 민주노동당도 이제는 겸허하게 뒤돌아보길 바란다.

또다시 소용돌이치는 격동의 정계개편에서 ‘엄혹한 정세는 한낮 시류일 뿐이고 가시 돋친 명분만이 진보정당의 살길’이라고 판단한다면 민주노동당, 참으로 유감이다.

빛바랜 명분에만 집착한 채 조직노동자의 존립근거를 뒤흔드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막연하게 저지만 한다면, 노동의 절반가치로 치닫는 막대한 규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구호 속에만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결단코 위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이제 9·11 합의를 존중하고 비정규보호입법 또한 단계적 입법에 나서야 한다. 거대 보수정당들의 복잡하고 치열한 이해관계의 지형 속에 비정규보호입법을 관철시킬 지형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언제까지 명분을 위해, 민주노총의 전략적 오류를 변론하기 위해 끝까지 반대만 할 것인지 치열한 내부토론을 가져가야 한다.

1953년 제정된 당시의 근기법을 뒤돌아보라. 한마디로 이게 무슨 노동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위하고 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었냐고 냉소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역사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보완·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산물 아닌가! 한국노총 역시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에 마음 편할 리 있겠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호소한다. 조직근간을 뒤흔들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우리 사회 진보와 노동자는 분열을 딛고 힘을 모아내야 한다. 일상적 차별과 소외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이상 정쟁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운동의 기본원칙인 조직적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는 기풍을 가져야 한다. 한국노총에 대한 동지적 배려 없는 전투적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또한 11월22일의 국회 법사위와 11월30일, 12월1일 본회의에서 편향적 노동운동의 진보적 대변자임만을 자임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것이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이 살 길임을 자각해야 한다. 한국노총의 애정이 남아있을 때 말이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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