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돌아왔고 서울국제노동영화제도 다가왔다. 겨울의 추위가 성큼 앞서온 늦가을에 어우리 곁을 찾아와 노동자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 왔던 그 영화제다. ‘노동, 영화, 투쟁. 그것이 우리의 미래다!’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를 찾아온 ‘그 영화제’가 오는 16일(목)부터 19일(일)까지 ‘고려대학교 4.18기념관’에서 개최된다. 아울러 올해는 광주와 울산에서도 동시 개최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함께 몰고 왔다. 울산에서는 16~17일까지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에서, 18~19일에는 전교조 울산지부 교육관 2층에서 열린다. 광주 역시 같은 기간 동안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영화제가 열린다.

열 살 먹은 노동영화제, 10편의 앵콜 상영작 준비

더구나 올해는 서울국제노동영화제가 지난 97년 시작돼, 열 살을 맞는 특별한 해다. 때문에 그 동안 상영됐던 작품 중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들이 ‘앵콜’ 상영된다. “이 작품들 대부분은 오직 노동영화제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라고 영화제 주최 쪽은 강조하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8회 영화제의 슬로건으로 쓰이기도 했던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2004, 캐나다, 87분, 아비 루이스 / 나오미 클라인)라는 작품이나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2003, 아일랜드, 74분, 킴 바틀리 / 돈챠 오브리에인) 등의 다큐멘터리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사람은 그 말을 믿지 않은 ‘나 자신뿐’일 것이다. 이 작품들에는 단순히 자본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만이 담긴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자생적(점거하라!..) 혹은 의식적(혁명은 TV에..)으로 ‘실현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가 끝이 아니다. 10회 국제노동영화제는 11개국에서 모인 총 28편의 영화들이 상영된다. 특히 KTX 여승무원, 하이닉스 매그나칩, 하이스코, 타워크레인 등 노동계를 지켜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영상들도 상영된다. 이 작품들에는 때로는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어느 곳에선가는 손잡고 연대했던 ‘그들’과 ‘우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열 살 먹은 서울국제노동영화제가 ‘비디오카메라로 투쟁을 기록해 오던 노동자 주체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혹 ‘전문적이지 않다’라는 미숙한 모습이 보일지는 몰라도, 이 작품들의 대부분은 투쟁을 함께 했던 ‘노동자 스스로’가 찍은 것들이다. ‘그들의 투쟁은 치열하고 아프지만 슬프고도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노동(조합)운동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산별노조건설에 관한 작품들도 있다. 금속노동자들의 고단한 삶과 투쟁, 산별건설의 열망을 담은 <우리 하자!!>(2006년, 한국, 45분, 전국금속연맹 / 노동자뉴스제작단)’ 공공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공공운수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우리들의 투쟁, 우리들의 조직>(2006년, 한국, 40분,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 /노동자뉴스제작단) 등의 작품이 그것이다.

11개국 28편의 영화 상영.. KTX 등 비정규 투쟁영상도

이와 함께 <우리에겐 빅브라더가 있었다>(2006년, 한국, 80분, 박정미, 노동자뉴스제작단)는 핸드폰 불법복제를 통해 위치추적을 당했던 삼성 전현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 사회에 살면서 삼성의 그늘 아래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었다”며 절망감을 토로했던 한 노동자들의 이야기처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삼성과 삼성 노동자들, 검찰과 인권단체들 간의 지난한 싸움의 기록을 담았다.

학습지 비정규직노동운동에 온 몸을 불사르다 결국 지병으로 40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고 정종태 전 재능교육교사노조 위원장의 삶은 담은 <정종태 1965-2005>(2006, 한국, 59분, 유명희, 정종태추모사업회 / 노동자뉴스제작단). 이 작품은 지난해 그의 장례식장에서 한 조합원이 흐느끼면 울부짖었던 “자신이 정말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죽어라 죽어라 투쟁했던 위원장”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담았다.

독립다큐로는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우리들은 정의파다>(2006년, 한국, 105분, 이혜란)와 덤프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차라리 죽여라>(2006년, 한국, 48분, 김미례),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담은 <얼굴들>(2006년, 한국, 50분, 지혜) 등 세편이 준비돼 있다.

해외신작들도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많다. 먼저 <마킬라도라:두 개의 멕시코 이야기>(55분, Saul Landau & Sonia Augulo)’는 이름 그대로 최근 한미FTA 문제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과의 나프타 체결 이후 멕시코 기업천국 도시로 떠오른 마킬라도라에 사는 노동자들의 실제 삶을 담았다. 아울러 <철로는 민영화에 저항한다>(2005년, 영국 60분, Platform Films)는 영국 국철의 민영화에 맞선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았으며 <죽음의 위협-콜롬비아 노조활동가들의 삶>(70분, 콜롬비아, Silvia Maria Hoyos)은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교사, 농부, 노동자들의 삶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5개 공장-베네수엘라의 노동자들의 공장자주관리>(2006년, 베네수엘라, 81분, Dario Azzellini & Oliver Ressler)는 이 나라의 금속, 방직, 맥주공장 등 5개 공장 노동자들이 어떻게, 왜 공장을 스스로 운영하게 됐는지를 밀착된 시선으로 보여준다. <점거하라!..>와 함께 본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또한 <나아가라!>(일본, 32분, Osamu Kimura & Mabui Cine Coop.>라는 작품은 이라크 노동계급이 어떻게 스스로를 조직하고 미국에 맞선 투쟁을 발전시켜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10회 기념 앵콜작’으로는 국제영화제를 즐겨온 이들에게는 익숙한 <엔론: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요람은 흔들리리라>, <명멸하는 불빛>, <450>, <기계여성>, <법정>, <빅원> 등 10편이 준비돼 있다. 앵콜작은 다른 작품과 달리 1회만 상영된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이 모든 영화들을 보는 비용은 올해도 물론 ‘공짜’다. 그런데 '공짜'라는 것은 돈이 없는 사람도 부담갖지 않고 와서 볼 수 있다는 최저선에 대한 규율이기 때문에 적어도 소득이 있는 사람들은 영화관 출입문에서 판매하는 ‘자료집’과 ‘팸플릿’을 구입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게 ‘예의’일 것 같다.

이번 국제노동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후원하며 ‘노동자뉴스제작단’ 주최로 열린다. 더욱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http://www.lnp89.org/10th)를 방문하거나 노동자뉴스제작단(02-888-5123)으로 문의하면 된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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