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안과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이 오는 정기국회에서 다뤄진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 법안이 발의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찬반 의견이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노사관계 로드맵, 특수고용직 보호법안과 함께 노사정위에서 논의 중인 산재보험법개정안에 대한 노동운동가, 학자, 변호사 등의 의견을 연재한다. 이 기고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측으로부터 모두 받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지난 9월 11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노동계와 국민들로부터 초미의 관심을 받고 있던 노사관계로드맵에 관한 합의가 있었고 9월 14일 정부가 합의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정치적 해석이 아닌 보다 순수한 법률적 관점에서의 몇몇 중요 합의안을 살펴보고자 이 글을 작성했다.

개별적 근로관계법에 관하여

채용단계에서 근로계약서 작성과 근로조건 명시대상을 확대하고 의무화한 것이나 해고사유 및 시기를 서면으로 통보하도록 한 것, 정리해고 신규채용의 경우 3년 이내 재고용을 의무화한 합의들은 조직화된 노동자는 물론 1,000만 명이 넘는 미조직,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 보호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성급한 결론일 수는 있으나 집단적노사관계법에서의 개선 이상으로 가치 있는 합의들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에서 부당해고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한 것과 관련하여 ‘형사처벌 조항이 갖는 예방적인 기능과 노동법의 노동자 보호기능을 포기함으로써 사용자가 임의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하는 범죄 예방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소한 현행법으로 유지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은 그 성격을 노동자 보호를 위한 국가의 의무 규범으로서의 성격에 앞서 ‘개인’노동자와 ‘개인’사용자 간의 근로관계인 사법관계를 그 규율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 보호를 위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과 다르다. 따라서 부당해고에서는 원칙적으로 해고처분을 사법상 무효화하여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족하며, 그것으로 개별적 노동보호법으로서의 목적도 충분히 달성되는 것이다. 결국 근로기준법의 해고규정은 궁극적으로 사법상 사용자의 해고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그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며, 그 이외에 사용자를 처벌하는 것은 제도의 본래적 성격을 일탈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외국의 입법례에서도 해고문제는 사적인 법률관계로 보기 때문에 형벌규정을 찾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을 강조하면서 본조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경청할 만하나, 처벌조항 도입 당시의 해고 현실과 현재의 해고 현실에 변화가 있음도 고려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성장에 따라 해고제한에 있어서 유연화 문제(비정규직의 양산이 이 같은 현실을 잘 말해준다)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서 계속 논의되어야 할 것이지만, 해고가 최후적 수단으로서 행하여진 때 한하여 비로소 정당시되는 종래의 해석태도는 점점 더 그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노동자들의 오랜 주장인 노동위원회 구제명령에 대해 이행강제금 부과 및 확정된 이행명령 불이행시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 부과제도의 도입은 큰 성과로 평가된다. 물론 처벌조항과 이행강제금은 법리적으로 무관하기 때문에 양자를 연관지어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이 사법적 강제력을 갖지 못하여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복직되지 못하고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이행강제금제도의 도입은 구제명령의 집행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행강제금제도는 간접적으로 해고노동자 복직을 강제시키는 기능을 하고, 소송에서 노동자에게 사용자와 대등한 공격 방어권을 확보해 주게 될 것이다.

한편 최근 들어 근로기준법이 부당·위법한 해고에 대한 예방적 기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노동관계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해고분쟁이 효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해고의 사안에 따라 그 구제방법을 다양화하는 등 해고분쟁에 대한 구제적 기능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의 단순성은 구체적 사안에 다른 합리적인 구제의 다양한 선택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복직이 현실적으로 기대될 수 없는 경우까지 원직복직명령을 내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노동자가 복직대신에 근로관계 종료를 원하는 경우에는 원직복직 대신 보상금지급을 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현실을 반영한 합의라 생각된다.

집단적 노사관계법에 관하여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서 제3자 지원 신고 제도의 폐지를 비롯하여 쟁의행위 찬반투표 제도 보완, 안전보호시설 쟁의행위 중지명령 위반 벌칙삭제 등은 노동 3권을 개선시켰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미의 관심이었던 복수노조유예와 전임자 급여, 필수공입사업 확대 및 직권중제제도 폐지를 두고서는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합의안은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하는 대신에 현행 필수공익사업에 혈액공급, 항공, 증기·온수공급, 폐·하수처리업을 추가시키고, 필수공익사업장에서는 쟁의기간동안 필수유지업무 수행의무 부과를 그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합의에 반대하는 주장은 ‘직권중제 재도가 형식적으로는 폐지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필수공익사업의 대체근로 허용으로 직권중재의 폐지의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필수공익사업장이 확대되었으므로 노동3권이 후퇴하였다’는 주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는 노동계의 직권중재 폐지와 필요시 긴급조정으로 대체하고, 최소범위에서 필수유지업무를 도입하라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써 그 의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직권중재 제도가 폐지됨으로써 아예 파업을 할 수 없었던 필수공익사업에 단체행동권이 보장된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필수공익사업장은 파업 즉시 불법파업으로 간주되어, 노조간부 구속,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청구·가압류로 인하여 노동 3권이 철저히 봉쇄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필수공익사업의 일부 확대된 것에 대하여 아쉬움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이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 국민의 생명, 안전, 건강과 직결되는 사업장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한편 필수공익사업장의 대체근로는 파업기간 중에 한정되며, 일시에 파업참가 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대체인력 투입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본 합의안을 평가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것으로 노동 3권만이 모든 기본권에 앞서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기본권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위 합의는 노동 3권의 완전보장 이전에는 언제나 비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에서는 공무원, 법률이 정하는 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으므로 직권중재를 포함한 모든 사업장에서 노동3권을 철저히 보장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할 것이나, 노동3권 또한 일반 시민의 생명 및 인간의 존엄을 포함한 공익과 충돌할 경우 일정 부분 제한을 받는 것도 헌법 정신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합의에서 필수업무라 하더라도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필수유지업무 유지 수준, 대상 직무, 필요인원 등을 자유로이 정하도록 하여 노·사 관계에 자율성과 주체성을 부여한 것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복수노조허용문제에 관하여 간단히 언급하도록 한다. 헌법에서는 분명히 단결권의 적극적 내용으로 노동조합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실행되어야 할 복수노조가 또다시 연기된 데 대하여는 법률적 근거로 변명하기는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조합민주주의는 제2의 경쟁적 노동조합이 출현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복수노조허용 문제에 대한 정략적인 이용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반대한다. 원래 복수노조금지조항의 입법취지는 노동조합간의 부당경쟁을 방지하고 어용노조의 성격을 지니는 제2노조의 난립을 억제함으로써 자주적·민주적 노조를 보호하고 노조조직과 관련된 분규를 예방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복수노조의 문제는 노사자치의 기초가 되는 노동자들의 자주적·민주적 조직의 확보라는 시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원래 노사자치는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노동자의 총의를 발현시킬 수 있는 자주적·민주적 노동조합이 존립하고 있는 한에서 가능한 것이다. 본 합의안도 이러한 기준에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 노동조합의 현실이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노동자의 총의를 발현시킬 수 있는 자주적·민주적 노동조합이 존립 토양을 가지고 있는 지에 따라 그 평가는 달라 질 것이다. 그 평가는 독자들에게 맡기고 싶다.

다음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복수노조금지조항을 3년간 유예함으로써 노동3권 행사의 제한을 받게 된 노동자는 기존에 기업별 어용노조가 존재하여 새로운 노조를 설립할 수 없는 노동자이다. 즉 대다수 비조직 비정규, 중소영세, 여성 노동자들은 복수노조금지 제도에 의하여 조직화가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법리를 제대로 알리지 아니하면서 복수노조 유예를 전체 노동자들의 문제로 정략적으로 이용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연대의 정신으로 조직화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지도하면서 함께하는 것이다.

마치며

필자는 본 합의안을 평가함에 있어서 ‘본 합의로 인하여 조직화된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일반 미조직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삶이 얼마나 향상될 수 있을 지’가 다른 것들보다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극한 대립에 있는 합의안들이 오히려 평가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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