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안과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이 오는 정기국회에서 다뤄진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 법안이 발의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찬반 의견이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노사관계 로드맵, 특수고용직 보호법안과 함께 노사정위에서 논의 중인 산재보험법개정안에 대한 노동운동가, 학자, 변호사 등의 의견을 연재한다. 이 기고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측으로부터 모두 받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노동부는 지난 10월25일 기자브리핑을 열고,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보호의 길 열렸다”라는 제목의 특수고용직 보호대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특수고용직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지 6년, 지난해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특수고용직의 근로자성 인정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지 1년만의 일이다. 하지만 정부대책은 그 대부분이 특수고용계약에 있어 불공정 거래행위를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약관법 등으로 규제하는 경제법적 보호방안에 불과했다. 이러한 발표 내용은 특수고용직 문제에 손을 놓고 있던 정부가 2006년 6월15일, 갑작스레 특수형태종사자 대책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접근이 용의한 경제법적 대책부터 마련하자는 말이 나올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정부 대책 ‘근로자성 인정’ 등 초창기 핵심논의 배제

특수고용직 관련 논의는 6년 전 근로자성 인정과 노동법적 보호방안 마련을 위해서 시작된 것이었다. 논의의 핵심이 빠진 채 발표된 대책은 특수고용직 문제에 대한 정부의 시각과 접근방식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첫째, 정부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포기하고, 이들을 개인사업자로서 보겠다는 기본인식에 있다. 그동안의 논의과정에서도 정부가 특수고용형태 종사자의 노동자성 인정 여부에 대해서 지금처럼 배타적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2000년 10월 정부가 발표한 ‘비정형근로자 대책방안’에서나 노사정위원회 특고특위의 공익위원 입장도 노조법상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근로기준법은 경우에 따라 부분 적용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책은 정부가 여태까지의 논의과정을 무시하고, 기존의 기본입장에서도 크게 후퇴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형식적으로 자영업자의 외형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사업주에게 종속되어 상시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실질적인 노동자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법적 지위는 ‘사용자’도, ‘노동자’도 아닌 상태에 있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대책의 핵심이어야 한다. 거의 대부분 노동법학자들도 보험모집인, 학습지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자차기사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특수고용직들은 사실상 ‘위장자영업자’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ILO도 지난 2006년 연차총회에서 채택한 권고안에서 위장된 고용관계를 척결하기 위하여 고용관계를 판별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기준에 부합하는 하나 이상의 지표들이 나타날 경우 고용관계의 존재를 법률적으로 추정할 것을 권하고 있다.

반면, 노동부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제1차 대책에서 우리나라에는 위장자영업자가 없다고 결론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둘째, 정부는 보호대상인 특수고용직의 범위를 일방적으로 축소하고, 노동법적 대책에서 노동자성이 문제될 수 있는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즉 덤프 및 화물차 지입차주, 애니메이션 작가, 간병인, 퀵서비스 종사원, 대리운전 기사 등을 포함한 대책을 내놓겠다는 당초 정부의 계획과 달리, 이번 대책은 보험모집인, 경기보조원, 학습지교사, 레미콘 자차기사 4개 직군으로 대상을 한정하였다. 이는 특정한 기준도 없이 91만5천여명의 전체 특수고용직 중에서 4개 직군에 포함되지 않은 60만명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보호대상에서 배제한 것이나 다름 아니다.

노동부의 노동법적 대책도 산재보험 적용과 직업훈련 기회를 부여하는 수준의 내용이 고작이다. 상시 1인 이상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100% 사용자의 보험료 부담으로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으나 정부안대로라면 특수고용직의 경우 산재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해야 하고 직업훈련도 고용보험에 자기부담으로 임의 가입해야 한다. 과연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이러한 혜택을 받게 될까? 특수고용직의 대부분은 차라리 적용제외자로 남는 게 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나마 노동법적 보호방안이라고 내놓은 대책도 그 실효성조차 의문시 된다. 정부 스스로 노동자성 인정여부가 문제될 수 있는 노동법적 대책을 철저히 제외하였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보호방안이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셋째,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노동기본권 보장 등 사실상 노동법적 보호방안을 마련할 의지가 없고, 이로 인해 노동자성 보장을 위한 지난 수년간의 교섭과 투쟁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특수고용직 관련 논의는 지금까지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비롯하여 벌써 6년 이상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도 노동부가 노사간의 입장 차이를 핑계로 노동정책의 주무부처로서 사실상 노동법적 보호방안이 배제된 대책만을 내놓았다. 정부도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 인정여부가 빠진 특고대책에 대한 거센 비판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부가 다른 경제부처 소관의 대책들만 늘어놓았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성급하게 대책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특수고용직의 노동권 인정과 관련한 공청회가 11월15일에 예정되어 있다. 그 이후의 추진계획은 정부 부처간의 논의를 거쳐 12월말 제2차 대책을 마련하고, 2007년 초부터 노사정 협의를 거쳐 제2차 노동법적 보호대책안을 확정하겠다고 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동자성을 위한 보호방안을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마도 정부는 공청회로서 할일을 다했다고 할 속셈인 듯하다.

"6년간의 논의를 무위로 돌릴 순 없어"

그렇다면 우리가 정책적 의지도 없는 정부만을 비판하며 마냥 손을 놓고 있다간 특수고용직은 영영 경제법적 적용대상인 자영업자로 완전히 굳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결국 노동자성 보장 여부에 관한 내용이 빠진 어설픈 정부대책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특수고용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면 그냥 앉아 있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고 시급하다.

금년 하반기 노사관계 로드맵 관련 노조법, 근기법 등이 통과되고 나면 참여정부의 집권기 내에 다시 한번 특수고용직을 위한 노조법, 근기법 개정이 다시 국회에서 다루어질 수 있을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부여를 위한 노동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심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면 금년 말까지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여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처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못한다면 우리가 나서서 특수고용직들의 근로자성 인정과 최소한 노동기본권 보장에 공감하는 여야 정치인들을 모두 끌어내서라도 반드시 법안을 정기국회에 올려야 한다.

입법 방향의 첫째는 노동기본권을 부여하고 노조법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며, 둘째는 특수고용직 직군별로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과 사회보험이라도 적용할 수 있는 입법조치가 있어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의 개정이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노조법 개정을 통한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기본권만큼은 우선 확립되어야 한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6월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도중 산화한 고 김태환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왔다. 또한 지난 10월25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 집단적 노사관계법상 노동3권을 부여하는 최소한의 조치도 포함되지 않는 정부대책을 강력히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만약 또다시 정부가 11월15일로 예정된 공청회에서 노동기본권 보장방안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다면 한국노총은 특수고용직 노조 및 여성,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특수고용직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의원입법을 추진하고,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다.

지금 우리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보장을 위한 지난 6년간의 논의와 투쟁을 무의로 돌릴 것인가? 아니면 노동기본권을 쟁취하여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 보장을 위한 첫걸음을 뗄 것인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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