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태일이의 숭고한 뜻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재산이었기에 그에 알맞은 목적으로 사용돼야 합니다 … 그것은 과거 우리처럼 탄압받고 고통받는 제3세계 민중의 투쟁에게 이 재산이 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태일 열사 36주기 추모식이 13일 오전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가운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청계피복노조 사무실 처분과 관련해 발표한 의견이다.<사진·전문 참조>

이날 이소선 여사와 전태일기념사업회(이사장 이광택)에 따르면 지난 84년말 독일의 ‘인간의 대지’라는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가정집을 매입해 청계피복노조 사무실로 사용했고, 이어 85년 미국 ‘연합장로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상가 아파트 412호와 413호를 매입해 전태일기념사업회로 사용했다가 나중에 둘의 용도를 바꿔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당시 청계피복노조 사무실 구입을 위해 지원받은 금액은 총 5,500만원이었으나 현재 그 재산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6억원으로 크게 오른 상태다. 전태일기념사업회 건물 구입을 위해 지원받은 금액은 7천만원으로 현재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4억원 정도로 오른 상태다.

현재 이소선 여사 명의로 돼 있는 두 건물 중 전태일 기념사업을 위해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을 처분하려고 하는 것. 이에 따라 이소선 여사는 노조 사무실을 처분한 뒤 이 재산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가에 대해 이날 중요한 발표를 한 것이다.

이소선 여사는 청계피복노조 재산의 성격에 대해 “태일이의 분신항거 뒤 숱한 이들의 투쟁의 산물이자 어느 특정인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재산”이라며 “더 나아가 그 재산은 전세계의 고통받는 민중의 재산”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소선 여사는 “과거 우리를 지원했던 선진국의 뜻있는 사람이나 단체에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하며 우리의 민주화에 그들의 공로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며 “이제 우리가 그동안 빌려서 사용했던 재산을 돌려주어야 하며 그 방법은 우리가 지원받았던 목적에 따라 고통받는 민중의 투쟁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도록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소선 여사는 현재의 ‘전태일노동상’을 확대해 제3세계 민중의 투쟁에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의 ‘전태일노동상’을 확대 개편해서 ‘전태일상’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며 “수상 대상을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을 비롯해 제3세계 민중운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번 이소선 여사의 발언은, 재산을 놓고 전태일기념사업회로 귀속시켜 향후 전태일기념관 건립에 쓰자는 의견과 애초 지원했던 단체들에 돌려주자는 의견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이소선 여사는 “(이같이 재산을 처분한다면) 태일이의 뜻을 바람직하게 이어가고 그것이 전세계 민중 속으로 널리 퍼져가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며 “또한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노동자의 도덕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전세계에서 불의에 맞서 투쟁하는 민중간 연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 효과를 기대했다. 



<전문>
청계피복노조 재산 처분에 관한 의견



1. 청계상가에 노조사무실을 만들게 된 배경과 경과

청계피복노조는 1970년 11월13일 전태일의 분신 항거가 계기가 되어 그의 친구들과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사회 각계의 지지와 성원에 의해 결성된 노동조합입니다.
청계피복노조는 70~80년에 걸쳐 우리나라에 민주노조운동을 뿌리내리게 하는 상징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이 과정에서 독재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숱한 탄압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태일이의 뜻과 친구들을 비롯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노조는 그 혹독한 탄압에 굴하지 않고 매 시기마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투쟁을 통해 노조를 지켜오고 노동운동을 선도 해 나갔습니다.
독재시절 정치권력과 자본의 탄압 수법도 다양했습니다. 온갖 협박과 회유 구속, 재정고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법으로 노조를 탄압 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열한 탄압수법이 노조에서 운영하는 노동교실과 노조사무실을 불법부당한 강제 폐쇄한 것입니다. 1977년에는 노동교실에 입주해있는 건물주한테 압력을 가해 조합원의 교실 출입을 폭력적으로 가로막고, 이어 평화시장에 있는 노조사무실을 비우라는 압력을 가해왔습니다. 이에 조합원들은 결사항전으로 투쟁 해 노조를 사수하고자 했습니다.
노동교실에서 쫓겨 난 우리들은 다른 건물에 입주 해 노동교실을 운영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당국은 건물주한테 압력을 가해 노동교실을 내쫓고 경찰은 조합원 출입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1981년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노동조합마저 불법부당하게 강제 해산시켜버렸습니다. 이때에도 역시 청계피복노조는 물러서지 않고 투쟁하여 많은 구속자와 수배자가 생겼습니다.
80년대 청계노조는 군부독재의 폭력에 의해 비록 강제 해산 당하였지만 노조를 복구해야 한다는 의지가 꺾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청계피복노조는 1984년 4월 8일 노조를 복구하여 전두환정권의 불법부당한 강제해산을 부정하고 청계피복노조의 정상적인 활동을 재개하였습니다.
이에 독재정권과 자본가들의 집중적인 탄압이 가해졌습니다. 그러나 복구된 노조는 탄압에 굴하지 않고 노동조합 합법성쟁취투쟁을 가열차게 전개해 당시 민주세력에 많은 자신감과 힘을 얻게 했습니다.
이때에도 여러 가지 탄압수법 중에 하나로 역시 조합사무실 강제폐쇄가 있었습니다. 당국은 노조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건물주한테 압력을 가하고 경찰은 사무실 집기를 길바닥에 끌어내고 조합원의 노조사무실 접근을 가로막았습니다.
이러한 탄압을 겪어오면서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당국의 비열한 탄압수법을 폭로하고 우리가 그 탄압을 이겨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조합 소유의 사무실을 비롯 모임의 장소가 필요함을 국내외 여러 단체나 우호적인 인사한테 호소하였습니다.
그 결과 1985년에 독일의 “인간의 대지”라는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창신동 131-106호에 가정집을 매입해 노조사무실로 사용했습니다.
이어 미국의 “연합장로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상가 아파트 4층의 412호와 413 호를 매입해 전태일기념관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두 개의 사무실이 마련되고 난 뒤에 노조사무실과 전태일기념관이 서로 사용하는 목적과 편리함을 고려해 맞바꿔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조사무실과 전태일기념관을 확보한 우리들로서는 중요한 근거지를 확보하여 조직을 이어나가고 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당국의 비열한 탄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즉 우리 소유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조합원의 출입을 막고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두 건물의 소유주는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그 근거지를 중심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투쟁하고 근거지를 탈환해 노동운동의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2. 재산의 성격

이와 같이 형성된 청계피복노조 재산의 성격은 첫째, 태일이의 분신항거와 이후 태일이의 뜻을 실현하고자 투쟁해온 숱한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한숨과 절망과 그리고 마침내 꿈의 결과물입니다. 즉 투쟁의 산물입니다.
둘째, 따라서 법적 소유와 상관없이 어느 특정인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우리 모두의 재산입니다.
셋째, 더 나아가 그 재산은 무엇보다도 전 세계의 고통 받는 민중의 재산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독재정권 시절 선진국의 뜻있는 사람들로부터 불의에 항거하고 민중의 올바른 권리를 회복하고 인류 평화와 복지를 위해 사용하라는 뜻에서 지원 받은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거룩한 뜻에 따라 그 재산을 활용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회복하는데 투쟁 해왔고 독재정권을 물리치는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어느 정도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 했으며 군부독재도 물리쳤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과거 우리를 지원 했던 선진국의 뜻있는 사람이나 단체에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하며 우리의 민주화에 그들의 공로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그동안 빌려서 사용했던 재산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애초 우리가 지원받았던 목적에 따라 전 세계의 고통 받는 민중의 투쟁을 지원하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불의에 항거하고 독재를 물리쳐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위해 사용하도록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 당시 해외 단체에서 지원할 때 원칙적으로 고정자산에는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원래의 목적대로 순수 사업비로 사용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앞에서 언급했던 바대로 부동산을 소유할 수밖에 없는 조건 때문에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동안 재산이 늘어난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수익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전체 부동산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도 모두가 우리의 재산이 아니고 모두가 빌린 돈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재산을 처분 하여 전액을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빌린 재산을 어떻게 되돌려주어야 하는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재 청계상가 건물의 재산은 우리의 재산이 아니라 우리가 독재시절 선진국의 뜻있는 사람과 단체로부터 빌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빌려 쓴 재산을 우리가 목적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이제는 그 재산의 성격에 알맞게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즉 애초에 태일이의 숭고한 뜻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재산이었기 때문에 그에 알맞은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한테 어떤 방법으로 돌려줘야 할까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과거 우리처럼 탄압받고 고통 받는 제3세계 민중의 투쟁에 이 재산이 돌려져야 합니다. 그 방법은 태일이의 숭고한 뜻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도록 하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태일상(償)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즉 현재 전태일노동상을 보다 확대 개편해서 전태일상으로 범위를 넓히고, 수상 대상도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을 비롯하여 제3세계 민중운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본인도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와 달리 이 재산을 전태일기념사업회에 귀속해서 기념관건립기금으로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의견이지만 이 재산의 성격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재산 사용목적이 큰 틀에서는 의미가 있겠으나 목적 자체가 너무 광범위하고 애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밖에 이 재산을 애초 지원해주었던 단체에 되돌려주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별 의미 없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태일상(償)을 어떻게 제정하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동안 전태일의 뜻을 실천해온 많은 사람들이 맡아서 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4. 이러한 방법을 실천할 경우 얻게 되는 효과

위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빌린 재산을 되돌려주는 사업을 하게 되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 태일이의 뜻을 바람직하게 이어가고, 그것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중 속으로 널리 퍼져나가는 효과를 거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류애가 온 누리에 실현되어 마침내 인류 평화와 번영을 앞당기는데 이바지 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나라의 노동운동과 노동자의 도덕성이 높아지고, 민주화 민주세력의 위상 높아질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과거 우리를 지원했던 사람이나 단체의 뜻을 올바르게 실천 해 왔으며, 그들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뜻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더욱더 폭넓게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사업을 통해 전 세계에서 불의에 맞서 투쟁하는 민중간과 연대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교류, 지원, 협조, 공동투쟁 등을 통해서 인류 해방과 평화와 복지를 실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지난시대 노동단체, 민주화운동단체, 종교단체 등 여러 단체에서 이와 유사한 지원을 받아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그 단체들 중에서 재산문제를 바람직하게 처리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못해 단체내부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곳에 우리가 바람직하게 처리하여 모범을 보여준다면 그들한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청계피복노조는 전태일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지난시대에 가장 어둡고 힘들 때 가장 먼저 불 밝히고, 가장 앞장서 외쳤습니다.
이것은 전태일의 친구를 비롯 많은 노동자들이 전태일의 뜻을 이어받은 직접당사자라는 자부와 긍지 그리고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이 문제 역시 전태일의 후예답게, 청계피복노조답게 처리함으로써 자신과 역사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한테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합니다.

아무쪼록 이와 같은 내용의 사업이 원만하게 잘 이루어지도록 여러분의 많은 협조와 관심을 기대합니다.


 
                2006년 11월13일 
전태일 36주기 추도식장에서
                                    이소선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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