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MBC의 PD수첩에서 방영한 <대한민국, 돈 공화국>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가를 실감나게 보여준 바 있다. 한편에서는 일당 3만원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길거리에 나와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불로소득으로 몇일만에 수억원을 벌어들이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회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지만 개개인의 측면에서 보면 교육격차, 숙련격차가 양극화를 더욱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의 확산도 결국 숙련형성을 통해서만 근본적으로 해결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안정 및 인적자원개발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유럽의 겐트시스템, 노조가 실업기금 관리

그럼에도 우리나라 성인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현재 14.1%로 OECD 선진국 평균인 37.1%의 1/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식과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음에도 노동자들과 기업주의 교육훈련에 대한 중요도 인식수준은 아직도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상적으로나마 실업보험의 수급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실업기금을 포함한 고용보험기금은 2005년말 기준으로 9조1,197억원이 적립되어 있으며, 금년말에는 9조3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훈련을 위한 기금이 연평균 16.5%씩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를 활용한 사회양극화 해소방안이 활발하게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한 직업능력개발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고용보험사업에 대한 노사단체들의 참여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선진국에서는 고용보험과 관련하여 두가지 유형의 시스템이 발전되어 왔다. 겐트(Ghent)시스템과 국가강제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겐트시스템은 노조가 실업기금을 관리하는 제도로서 20세기초 벨기에의 겐트 지방에서 유래한 제도이다. 벨기에의 지방정부가 노조에게 실업보험기금 관리를 맡긴 결과 정부가 실업보험 업무를 추진하는 것보다 더욱 효율적으로 기금이 운용된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벨기에 정부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전국으로 확대추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국가 수준에서 겐트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는 프랑스였다. 이러한 선례들을 따라 영국, 덴마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등 수많은 나라들이 겐트시스템을 채택하였다.

국가강제시스템 전환 뒤 노조조직률 하락

이러한 겐트시스템의 확산은 불황이라는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다. 덴마크나 스웨덴에서 겐트시스템이 공고화된 것도 이들 국가들의 경제가 가장 침체된 시기였다. 실업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 지역수준의 노조간부들은 비자발적 실업자들을 위한 실업기금 지급과 새로운 일자리 제공 등에서 커다란 자율성을 부여받았다. 이처럼 노조가 노동자들을 위한 선택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게 됨으로써 겐트시스템은 일반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을 더욱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발전, 비숙련 노동자의 증가, 전쟁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국가강제시스템으로 전환하게 된다. 영국은 로이드 조지 자유당 정부 하에서 세계 최초로 국가강제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이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독일, 노르웨이, 프랑스, 스위스 등이 국가강제시스템으로 전환하였다. 이들 국가들에서는 모두 실업보험 제도의 전환 이후 노조조직률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였다. 특히 노르웨이의 경우가 가장 극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노르웨이는 겐트시스템을 유지하던 시기에는 스웨덴보다 노조조직률이 9% 차이에 불과하였으나 10여년이 지난 이후 그 차이가 20% 이상으로 벌어졌다. 이처럼 실업보험의 체계는 조직노동운동을 강화하거나 또는 조직화된 내부자와 주변화 된 외부자로 노동운동을 분열시키는 등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정부독점 하 노사 의견 통로 닫혀

최근에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복지국가의 재조정이 이루어지면서 실업보험의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개혁의 기본방향은 노사를 비롯한 수요자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독일은 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독일에서는 통독 이후 지속되어온 고실업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2004년초부터 연방고용청을 관료적이고 공적인 제도로부터 현대적이고 효과적인 서비스 제공자로 전환시키기 위한 개혁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해 왔다. 특히 실업보험의 사용방법 등에서 투명성을 제고하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서비스 제공의 분권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용보험법 제3조에 규정되어 있듯이 고용보험을 노동부장관이 관장하도록 하는 국가강제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고용보험의 운용과정에서도 노사참여가 매우 제한적이다. 대표적으로 고용보험을 심의하는 기구인 고용정책심의회는 30인 이내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는데, 고용정책기본법과 그 시행령 등에 따르면 고용정책 심의회의 위원장은 노동부장관이 맡고, 위원은 노사대표와 고용문제 전문가, 정부 15개부처의 차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히 말하면 고용보험은 정부 각 부처가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고용심의회의 경우에도 시도지사가 위원장을 맡고, 노사대표의 참여는 각 1인수준으로 제한되고 있다.
이러한 정부독점 구조 하에서 실제로 기금을 납부하고 혜택을 받아야 할 수요자인 노사가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는 통로가 사실상 닫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각종 고용보험사업이 수요자들의 요구와 참여에 의해 추진되기보다 공급자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고용보험기금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노동자들의 숙련향상을 위한 교육훈련은 수많은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폭발적 증가는 우리 사회가 저숙련-저임금-저생산성이라는 저숙련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숙련수준과 임금수준은 대체로 비례

그럼에도 노사단체들은 고용보험기금 운용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통해 노동자들의 숙련을 향상시키려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이지 못해왔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단기주의적 관점에서 비용감축 위주의 투자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은 여전히 임금인상 등 분배위주의 노동운동 관행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동자 내부에서부터 연대성이 붕괴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회적 공동체의식도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인적자원개발과 관련한 각종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숙련수준과 임금수준은 대체로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숙련이 향상되면 임금도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노사단체들이 앞장서서 일반노동자들과 기업주들의 선호를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노조는 단기적인 임금인상보다는 고용안정과 노동자의 직업능력개발에 보다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훈련에 대한 투자가 기업의 성장과 직결된다는 관점에서 인적자원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려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부주도형 직업능력개발에서 노사참여형 또는 수요자 중심의 직업능력개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노사정간에 지속적이고 다양한 사회적 대화와 협력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는 고용보험법을 비롯한 노동자 직업능력개발 관련 법령들을 정비하여 노사참여를 획기적으로 확대함으로써 고용과 인적자원개발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어젠다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사의 노력과 정부의 인식전환이 병행 추진된다면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매우 빠른 속도로 선진화될 수 있게 될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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