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안과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이 오는 정기국회에서 다뤄진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 법안이 발의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찬반 의견이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노사관계 로드맵, 특수고용직 보호법안과 함께 노사정위에서 논의 중인 산재보험법개정안에 대한 노동운동가, 학자, 변호사 등의 의견을 연재한다. 이 기고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측으로부터 모두 받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지난 7일자 매일노동뉴스에 산재보험제도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의 입장에서 게재된 세 편의 기고(임준, 임상혁, 강문대)에 대한 한국노총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위의 기고들이 산재보험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산재보험이 갖고 있는 현재적 문제점과 향후 발전방향을 제기한 점에서 사실상 논란을 벌일 필요는 없다. 원론적인 수준에서 한국노총의 입장은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라든지, 산재노동자의 기본권과 보장성을 강화하고, 근로복지공단의 관료주의를 타파하라는 것, 제도운영과정에 노사의 참여를 늘려나가고, 재활을 활성화 하라는 것 등은 노동계의 입장에서 이와 다른 목소리가 나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다만 필자는 노사정위 산하 산재보험발전위원회(이하 산재특위)에서의 개정논의에 대해 항간에서 이를 개악논의로 둔갑시키고 있는데 대해 분명한 사실관계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최근 3년간의 제도개정 논의를 살펴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다.

2004년 6월, 산재보험제도 시행 40주년을 맞이하여, 정부가 산재보험제도의 발전방향을 체계적으로 수립한다는 명분으로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후 위원회의 주도로 진행된 제도개선연구가 2006년 2월10일 용역결과라는 이름으로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노동계의 투쟁과 반발을 촉발시켰다.

이를 개정논의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양대노총 공동의 입장이었다.

산재보험발전위원회라는 유령기구나 그들이 마련했다는 제도개정 방향은 노사에는 한마디 설명도 없이 무려 1년6개월이나 강행된 것이었다. 용역결과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내용 역시 산재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보험급여체계의 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휴업급여의 기간 제한 및 임시장해연금의 신설, 민사배상제도의 폐지, 장해급여의 삭감, 중복급여의 조정 등은 두말이 필요도 없는 개악이었다.

이에 한국노총 및 산하 회원조합, 지역본부는 릴레이 항의성명을 발표하고 산재보험개악저지 및 민주적 산재보험개혁투쟁을 전개했다. 이후 한국노총은 노사정위 산재특위 논의의 주체로 참여하기로 했다. 노사정위 산재특위에서의 논의는 이전에 정부가 진행한 용역결과를 전면 백지화 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노사정위 산재특위에서의 개정논의를 정부 연구용역결과에 대한 논의로 오해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민주노총은 과거 정부 용역결과를 마치 산재특위에서 수용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이를 개악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단언컨대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산재특위는 의제의 상정에서부터 논의에 이르기까지 노동계와 경영계가 공히 개혁과제를 제출, 논의해왔으며 노사가 제출한 개혁과제는 분명히 산재특위 홈페이지를 통해 만천하에 공표된 바 있다.

"실질적 노사참여방안, 충분히 논의"

민주노총이 홈페이지에 총파업 특별페이지 <산업재해보상법의 전말 Q&A>라는 코너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개악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따져보자.

첫째, 휴업급여를 최고 2년까지 지급하고 장해판정 후 장해연금을 지급하도록 하며, 취업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되 수령임금과 평균임금 차액의 70%를 휴업급여로 지급하는 것이 개정(안)이라면서, 이를 개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휴업급여의 지급기간 제한이나 부분취업의 허용 등은 이미 논의에서 제외되었으며, 이에 대한 한국노총의 반대 입장은 2월 11일자 항의성명 및 관련 자료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도대체 그러한 개정(안)이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제발 보여 달라.

둘째, 휴업급여기간 동안 사회보험제도를 당연 적용하게 한다면서 이를 가혹한 개악이라고 하고 있는데 산재특위에서는 그러한 논의를 해 본 적이 없다.

셋째, 지금도 요양신청을 하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요양기간이 연장되고 있다고 하면서 요양연기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개악이라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산재환자의 강제요양종결은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되묻고 싶다. 논의되고 있는 바는 상병의 장단기 치료 여부를 불문하고 통상적으로 3개월을 신청하고 지속적으로 연기신청을 하도록 하고 있는 현재의 요양연기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즉, 최초 요양단계에서 주치의가 환자의 상병에 맞게 적극적인 치료계획을 담은 진료계획서를 제출토록 하고 있을 뿐이다.

넷째, 사업주의 이의신청권을 신설하고 있으며, 사업주가 근로복지공단에 출석하여 산재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있도록 명문화 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이상으로 한국노총도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산재특위는 경영계가 요구해 왔던 사업주의 이의신청권에 대해 더이상 언급치 않기로 했다. 다만, 일부에서 이의신청과 날인제도의 폐지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날인제도는 산재승인 이전의 일이고 이의신청은 승인 이후의 일로 전혀 다른 항목이다. 그런데도 날인제도에 대한 일부 조정을 사실상 이의신청의 허용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논리의 단절된 비약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노동계의 개혁과제로 제출된 날인제도의 폐지는 최초 산재신청단계에서 사업주의 날인이 없으면 요양신청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취약계층 및 산재 미 인식 노동자를 위한 것으로, 요양신청서상의 사업주확인란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산재보험의 진입장벽을 제거하는 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조정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 미인식노동자를 위해 날인을 폐지하되 요양신청사실을 사업주에게 통보하자는 방안인데, 현재도 사업주 날인 없이 요양신청이 가능하며, 이 경우 자동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와 재해자 양자에게 날인의 생략이나 거부 사유서를 받고 있기 때문에 통보보다 더욱 강력한 진입장벽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독소조항이라고 하는 주장은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다.

다섯째, 업무상질병 판정절차의 신설로, 판정절차를 만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면서 산재인정을 어렵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산재특위에서의 논의는 판정절차를 만드는 것까지만 이야기되고 있을 뿐, 인정기준의 개정방향 등은 향후 과제로 돌리고 있으며, 기준을 마련하는 공단 내 전문위원회나 이를 검토하고 심의할 산재심의위원회나 산하 실무위원회 등에의 민주적이고 실질적인 노사참여방안은 충분히 논의되고 있는 만큼 이를 개악기도로 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

여섯째, 지난 7월께에도 민주노총은 공식문건을 통해 산재특위가 재활급여의 신설, 선치료보장후정산제도의 도입, 요양비중 본인부담분의 해소, 산재환자의 원직복직 법제화 등 노동계의 핵심요구를 의제에서 제외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이 산재특위에 참여하면서 공표한 바 있는 노동계의 핵심요구사항이나 이후의 논의과정만 잘 들여다보면 위의 과제들이 산재특위 논의의 핵심과제임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 산재특위 참여 언제든 환영"

또 하나 언급해야할 것이 바로 산재특위에 민주노총이 불참하는 문제일 것이다.

당초 민주노총은 산재보험제도개선협의회에 참여의사를 밝혔었다. 그러나 이 기구는 노동부가 연구용역결과를 발표하면서 3, 4월 두 달 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공표한 기구로서, 논의시한이나 형식에 있어서 노사가 들러리로 전락되기 쉬운 기구였다. 또한 논의의 책임성이나 이행담보능력 등 모든 면에서 현재의 노사정위 산재특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기구이다.

산재보험에 대한 실질적 노사참여의 확대를 이야기 하면서도 노사정간의 논의와 협상기구인 산재특위에서의 논의를 무조건 ‘개악’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누가 봐도 민주노총이 논의에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산재특위는 언제든지 민주노총의 참여를 환영한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숨기면서 노사정위원회 논의는 무조건 개악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한국노총은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무원칙한 양보로 협상을 타결할 생각도, 의지도 없다. 협상에 실패할 경우 한국노총 역시 독자적인 산재보험법 개정안의 발의와 함께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이며, 이는 지난해 연말부터 가동되고 있는 산재보험개혁 T/F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노총이 산재특위에 참여하기 이전부터 결정되고 준비되어 왔던 작업이다.

우리가 항상 경계하고 있는 것은 법안을 만들어서 제출하는 것만으로 한국노총의 의무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를 위한 ‘산재보험제도’이지, 노동자를 위한 산재법의 ‘제출’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의 산재보험 개선 논의가 우리 노동계에게 중대한 의의를 갖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취약 노동자 등 많은 노동형제들을 산재보험의 보호영역으로 수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또한 양질의 의료와 재활을 통해 노동현장으로의 복귀를 앞당기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보험제도의 운영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받기 위함이다. 산재보험의 개선논의에 대한 노동계의 힘과 의지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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