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안과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이 오는 정기국회에서 다뤄진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 법안이 발의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찬반 의견이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노사관계 로드맵, 특수고용직 보호법안과 함께 노사정위에서 논의 중인 산재보험법개정안에 대한 노동운동가, 학자, 변호사 등의 의견을 연재한다. 이 기고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측으로부터 모두 받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한국의 노사관계는 기업별 노사관계를 그 특징으로 한다. 노동조합의 활동과 교섭이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임금과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노사간 단체협약이 원칙적으로 해당기업에만 그리고 그 조합원에만 적용되는 체계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별 노사관계는 이미 생명력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적어도 90년대 중반까지 대기업 중심의 전투적 임단협이 가지고 있었던 임금인상의 일종의 패턴세터(pattern setter)로서의 기능은 사실상 종료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90년대 중반 이후 대사업장 중심의 임금의 추인 역할은 느슨해지며, 이는 대다수가 미조직 노동자인 비정규직 및 근로빈곤층의 폭발적 증가로 표현되는 노동시장 양극화와 결부된다. 뿐만 아니라, 낮은 조직률, 조직된 대기업과 조직되지 못한 중소기업 간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격차 확대, 교섭비용의 사회적 낭비 등 기업별 교섭체계의 폐단은 한국 노사관계의 발전을 저해하여 왔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의 노동운동은 89년 이래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0%대로 정체된 반면, 전체 조합원의 71.2%는 5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에 소속되어 있는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유일한 법적 사용자단체인 경총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한국의 노와 사는 그 대표성이 지극히 취약하다. 이렇듯 개별 사업장단위로 파편화되어 있는 노사관계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영세사업장은 그 교섭력의 차이가 고스란히 노동조건의 차이로 연결되고 있으며, 더욱이 사문화된 법조항으로 인해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규정하는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범위는 크게 제약되어 OECD 최하위 수준을 보이고 있다.

산별교섭 제도화 논의의 실종

하반기 노동분야 핵심사안인 노사관계로드맵과 관련하여 당시 노무현 정부가 로드맵을 내놓으며 밝힌 바 있는 소위 ‘개혁의 취지’를 기억하는 것은 새삼 중요하다. 당시 정부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 △자율과 책임의 노사자치주의 확립과 함께 노사관계 개혁의 주요원칙으로 공언했던 바는 △중층적 구조의 사회적 파트너쉽 형성이었다. 쉽게 말해 노사관계의 ‘선진화’에 있어 산별교섭체계의 안정화가 핵심적 과제라는 것을 정부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로드맵 교섭과정에서 산별교섭 제도화를 입법화 할 것에 대한 요구도, 노조의 단협 및 쟁의대상을 확대하겠다고 얘기했던 로드맵 원안도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논의의제에서 배제되었다. 이미 로드맵 논의는 선진화를 위한 입법논의가 아니었고, 산별교섭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사측의 반발’이었다.

산별교섭 제도화, 왜 필요한가

먼저, 산별조직화는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의 경우 산업별로 조직된 조합원의 비율은 65.5%(32개 산별노조, 509,323명)에 달한다. 이는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의 2/3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이후 더욱 많은 기업별 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될 것이다. 문제는 이에 대한 안정적 교섭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조직구조와 교섭제도의 불일치 현상은 전체 노사관계의 안정화 및 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다음으로, 산별교섭의 안정화는 교섭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거의 유일한 제도적 대안이다. 노사정 모두는 비정규직, 근로빈곤층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 도래된 사회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다수 저임금노동자로 충당될 수밖에 없는 서비스업의 확충과 실업대란을 야기할 한미FTA의 체결을 통해서 양극화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는 정부의 악의적 블랙코미디를 주저 없이 치워버리자! 빈약한 복지제도로 인해 전체 소득에서 임금소득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산별교섭을 안정화하여 임금 및 노동조건을 초기업적 수준에서 평준화 하는 것은 사회양극화에 대한 노사관계적 해법이다.

교섭비용의 증가?

산별교섭 제도화와 관련하여 가장 큰 반론은 산별교섭은 현재 기업별교섭체계가 정착되어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교섭비용을 크게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별 교섭 더하기 산별교섭’이라는 유치한 ‘수학적’ 발상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얘기하는 교섭비용 절감방안은 무엇인가? 바로 복수노조를 무력화 하는 창구단일화이다. 논리적으로 볼 때, 기업단위 복수노조의 창구단일화가 아니라, 초기업단위 복수사용자의 교섭구조 단순화에서 찾아져야 한다.

사회양극화 등 노동시장의 극단적 분절 현상에 대한 노사관계적 해법은 ‘근로조건의 통일성’을 가져올 수 있는 교섭구조를 마련하는 일이다. 여기서 근로조건의 통일성은 노동시장 양극화가 기업규모별 분절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에서 볼 때 사업장 단위가 아니라 산업적 수준에서 모색될 때 올바른 해법이 될 수 있다.

무엇을 바꿔야 하나?

우리의 노동법제에는 산별교섭과 관련하여 어떠한 별도의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보장되어야 하는가?

첫째, 초기업적 수준에서 사용자에 대한 교섭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현재 산별노조의 단체교섭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산별노조가 독자적으로 단체교섭을 원하는 경우에도 이에 대응하는 사용자단체가 없거나, 있어도 사용자들이 교섭테이블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

이에 따라 산별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사용자의 교섭회피로 인해 교섭은 파행을 거듭하며, 이는 고스란히 현장에서 불필요한 노사갈등 및 신뢰관계의 추락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요구한 경우 복수의 사용자들이 사용자단체를 구성하거나 연합하여 교섭에 응하는 교섭의무를 부과하여야 한다.

둘째, 단체협약이 대다수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한국은 노조조직률이 곧 단협 적용율이 되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우리와 유사한 조직률을 보이고 있는 프랑스(9~10%)와 스페인(10~15%)가 80%를 상회하는 단협적용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의 낙후된 노사관계 법제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행법에서 지역적 효력확장은 지나치게 엄격한 수적 요건을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다. 결국, 지역적 구속력 이외에 산업별, 업종별 확장제도를 신설하는 것은 물론 수적 요건도 대폭 완화하여 효력확장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

셋째, 초기업단위의 단협에 실질적인 우선적용의 지위를 부여하여, 적용범위에 포함되는 사업장의 단협은 개별적 보충협약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산별교섭의 안정화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기업단위에서의 불필요한 교섭비용 발생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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