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입버릇처럼 공공기관의 자율경영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자율경영은 정부가 제정하려고 하는 ‘공공기관운영에관한기본법’의 기본취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자율보다는 통제에 가깝다. 그동안 정부는 정투법과 정산법에 따라 공공기관의 예산과 경영사항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왔다. 공공기관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기관별 특성을 반영, 자율교섭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각종 지침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

기획예산처는 매년 인건비 인상률과 예산 사용방법을 명시한 예산편성지침과 예산관리기준을 정부투자기관과 정부산하기관에 내려 보내 정부의 임금정책을 관철하고 있다. 이 지침과 기준은 다시 재투자기관, 지방공기업, 위탁기관 등에 준용돼 공공부문 전체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

조직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공무원과 교사들을 빼고 약 2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국노총 산하 공공노련, 전력노조, 금융노조(일부), 체신노조, 연합노련(일부)에 약 11만명이 있고, 민주노총 공공연맹, 보건의료노조, 사무금융(일부), 언론연맹(일부)에 또 13만명이 있다. 이들의 임금이 모두 몇 쪽 되지도 않는 예산편성지침(또는 기준)상의 임금가이드라인 단 한 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자율경영을 보장하기 위한 권고수준이 되어야 할 가이드라인이 신성불가침의 장벽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신성불가침' 예산편성기준

2006년 지침과 기준은 ‘2005년 총인건비의 2% 증액 범위 내에서 집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임금가이드라인 2%가 여기서 나왔다.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왜 2%냐는 질문에 기획예산처는 국가재정의 어려움, 공무원과의 형평성, 여기에 공공기관 임금이 민간기업보다 높을 것이란 인식 외에 어떤 객관적인 타당성과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노사정위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임금이 높다는 정부투자기관의 임금수준이 100인 이상 사업체 평균과 비슷했다.

임금가이드라인은 공무원과 달리 노동3권이 보장되는 공공기관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무력화시키는 횡포다. 상한선을 2%로 정해 놓고 시작하는 단체교섭이 노사관계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 임금가이드라인 2%는 일부 정부산하기관에서 호봉승급분에도 미치지 못하거나 호봉승급분을 빼고 나면 실질적인 인금인상은 0.2%~0.5%에 그치게 만드는 웃지 못할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공공노련 정책실 관계자는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고 노사 교섭의 여지를 주고 지침이든 뭐든 만들어야지 불합리한 지침 하나 던져주고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권력으로 공공기관을 통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객관성 없는 임금가이드라인 2%

2006년 예산편성지침에서는 경상경비와 사업비가 동결됐다. 기획예산처는 사업비를 늘리려면 경상경비 등 기타예산을 절감하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사업비를 늘리면 인력도 늘어야 하고 경상경비도 증가하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방법이다.

사업비와 경상경비를 동결하면서 기획예산처는 ‘핵심역량 제고를 위해 교육훈련, 연구개발 강화 및 확대’를 요구했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어떤 기업에서나 요구되는 것이지만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한 윽박지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매년 정부투자기관과 정부산하기관을 대상으로 경영평가를 해서 순위를 매기고 그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그런데 정부산하기관은 이 인센티브 재원을 자체 경비를 절감해 확보해야 한다. 이에 따라 경영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인센티브 지급율이 높은 기관이 성과급을 지급할 수 없어 노사간 갈등을 빚는 기이한 현상도 발생한다.

지침과 지준이 강조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경쟁력 논리는 외주용역 확대와 인력 감축, 비정규직 증가를 가져오고 있다. 정부가 공공부분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각 공공기관에서 실행되는 지침과 기준은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길로 유도하는 이율배반을 보이는 것이다.

공공노련 관계자는 “사업비가 동결된 상황에서 사업을 늘리려면 외주용역을 해야 하고 비정규직을 늘려야 하는 것이 공공긱관의 현실”이라며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경영평가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지표를 넣어 전면적으로 재결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비도, 경상경비도 모두 동결

지침과 기준은 한마디로 정부의 공공기관 통제 장치다. 공공기관이 정부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측면이 있다면 최소한 지침과 기준은 합리성과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어디서도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기획예산처가 민간부문의 임금을 선도한다는 대외명분으로 공공기관을 옥죄고 있는 사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9일 기획예산처가 정부투자기관운영위에 2007년 예산편성지침안을 보고하는데 예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공공노련은 최소한 지침과 기준의 독소조항과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협의회를 요구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9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