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안과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이 오는 정기국회에서 다뤄진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 법안이 발의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찬반 의견이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노사관계 로드맵, 특수고용직 보호법안과 함께 노사정위에서 논의 중인 산재보험법개정안에 대한 노동운동가, 학자, 변호사 등의 의견을 연재한다. 이 기고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측으로부터 모두 받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최근 들어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대한 개혁이 주요한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데, 그 중에 단연 으뜸이 되는 이슈가 재정에 관한 주제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국민연금, 의료급여 등 일련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재정 악화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고, 그 원인이 상당 부분 수급권자인 국민의 도덕적 해이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산재보험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는데, 지난 수년간 산재보험 급여비가 급속하게 증가하여 재정이 악화되고 있고, 그 문제가 산재보험의 핵심적 문제이며, 원인은 바로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재보험의 핵심적 문제가 재정 악화라는 진단이 맞느냐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재정 악화의 원인이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최근에 불거져 나온 재정 악화의 원인이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한다면, 산재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같이 산재보험에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만한 제도적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전혀 없었다. 흔히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하면서 산재노동자의 요양기간이 건강보험에 비해 매우 길다는 사실을 꺼내든다. 그런데, 그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구조적 문제다. 결코 최근에 발생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재정이 급속하게 악화된 원인으로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꼽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다.

사실, 산재보험의 재정이 악화된 핵심적 문제는 정부의 정책 실패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가인상 및 임금인상에 따라 급여비가 상승하고 병의원의 진료비가 증가함에 따라 산재보험 기금의 지출이 늘어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경총 등의 눈치 때문에 보험료의 적정 인상분을 걷어 들이지 못하였다. 결국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게 되어 재정 악화가 현실화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정 악화의 원인이 ‘도덕적 해이’에 있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제도의 성립 자체를 의심하게 할 만큼 산재보험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수많은 학자와 산재노동자, 그리고 노동단체에서는 산재보험의 입구와 출구가 너무 좁아 사회보험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해 왔다. 특수고용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배제하는 좁은 적용범위와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산재 유무를 결정하고 보상해주는 후진적인 사전승인제도가 산재보험의 좁은 입구를 대표하는 문제로 지적되었다. 다행스럽게 좁은 문에 들어오더라도 직장으로 사회로 복귀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도 주요한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산재보험 기금의 30%를 재활에 투자하여 산재노동자의 정상화에 온 힘을 쏟는 독일과 기금의 1~2%에 머무르고 있는 재활 예산으로 5개년 계획 까지 세워 노동자의 직장복귀를 돕겠다는 한국을 단순 비교해보더라도 비좁은 산재보험의 출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의 산재보험은 공적보험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회적 기능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산재보험의 적용에 있어서 차별이 일상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혜택을 받아야 할 노동자가 사전승인제도의 굴레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고 특수고용이라는 논리로 산재보험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또한 산재노동자에게 포괄적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직장과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이니 사회복귀니 하는 수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더욱이 재활의 부재가 산재노동자가 장기요양으로 이어지고 결국 재정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만드는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재정 악화’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노동부의 산재보험정책은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사업주와 노동자를 모두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재보험의 존재 이유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 한다면 당연하게 노동자의 관점과 시각에서 산재보험정책이 다루어져야 한다. 노동자의 관점에서 산재보험정책을 다루고 해결한다면 문제의 진단은 재정 문제가 아니라 현재 산재보험이 갖고 있는 차별과 배제, 그리고 재활의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이 산재보험 재정이 안고 있는 구조적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매일노동뉴스> 2006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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