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안과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이 오는 정기국회에서 다뤄진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 법안이 발의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찬반 의견이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노사관계 로드맵, 특수고용직 보호법안과 함께 노사정위에서 논의 중인 산재보험법개정안에 대한 노동운동가, 학자, 변호사 등의 의견을 연재한다. 이 기고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측으로부터 모두 받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정부가 지난 9월14일 입법예고한 부당해고 부분에 관한 로드맵 입법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부당해고에 대한 벌칙 조항 삭제부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해고뿐만이 아니라, 부당한 정직, 감봉, 전보, 기타 다양한 불이익조치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형사처벌 규정을 아예 삭제하거나, 이를 과태료로 전환하는 것은 형사처벌 규정이 가지는 예방적 기능을 감안할 때, 해당 근로기준법 조항의 실제 적용율과 실효성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당해고 및 불이익처분에 대한 형사처벌조항을 삭제하면 부당해고 조항의 규범력이 현저히 약화되어 사용자의 부당해고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고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욱 타격이 클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안전망이 완비되지 못한 사회에서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부당해고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예방적 제도가 절실히 요구되며, 또한 재취직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할 때, 5년이란 형량이 가혹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여 이 제도가 합헌임을 판단한 바 있다.

‘이행강제금 부과’와 ‘벌칙조상 삭제’가 무슨 연관 있나

그런데 정부는 주장하기를 벌칙조항이 있지만 실제로 형사처벌이 되는 예가 적고 기껏해야 벌금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형사처벌 조항보다는 차라리 이행강제금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 자체로 타당성이 없는 궤변이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사소한 법위반에도 업무방해다, 뭐다 해서 구속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파업 한번에 전체 조합원들에 내려진 벌금형만 수억원이요, 거기에 집행유예의 징역형을 선고 받은 간부는 몇명인가. 그 반대로 사용자에 대한 법의 잣대는 불공평하기 그지없다. 부당해고를 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건만 부당해고로 사용자가 구속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하였다. 법의 집행이 불공정하여 부당해고 형사처벌조항이 유명무실해졌다면 이를 엄정히 하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개선책으로 나와야지 그를 이유로 삭제를 해버린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행강제금 제도는 무슨 말인가.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에 대한 원직복직 구제명령이 내려져도 사용자는 다시 불복하여 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1심, 2심, 대법원까지 가도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었다. 바로 이 구제명령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구제명령이 사용자의 불복으로 확정되기 전이라도 이행강제금을 부과하여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오랜 주장이었다. 이것은 부당해고 형사처벌 조항과는 직접 상관관계가 없는 제도임에도 이를 이유로 삭제한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형사처벌과 단순과태료가 동일한가

다음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심각한 내용이 위 입법안에 담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근로기준법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형사처벌조항도 모두 삭제 내지, 단순 과태료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때 동의를 받도록 한 규정은 벌칙이 삭제되었다. 근로조건 명시의무위반, 취업규칙 게시와 공지의무, 근로관계 중요서류 무단폐기 행위, 근로감독관 조사 방해행위, 출석거부, 허위보고 행위 등에 대한 벌칙조항이 대거 삭제되었고 과태료로 전환되었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것이 형사처벌이 될 수 있다는 것과 단순 과태료 얼마 내는 경우하고는 그 규정의 규범력, 실효성에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정부는 취약계층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필수적인 조항을 대폭 삭제하거나 완화하고 있으면서도 늘 그들이 만들어 내는 보도자료에는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를 내세우고 있는데, 전문 사기단인가.

한미FTA 체결 수순 밟기

이 뿐만 아니라 정리해고 사전통지의무기간을 60일에서 사실상 30일 이하로 대폭 축소하고 있고 악용의 소지가 있는 금전보상제도의 도입을 입법예고 하였다.

부당해고만 명확하게 해주면 이후 복직을 하든지, 금전적 보상으로 마무리하든지 노동자가 선택할 일이다. 금전보상제도가 도입되는 순간 그 설계를 어떤 방식으로 하든 간에 우리나라와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는 ‘맘대로 해고하고 돈으로 해결하는’ 제도로 둔갑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개선된 부분이라면 근로조건 명시사항을 근로시간, 휴일 및 휴가로 확대(근기법 제 24조 개정)한 것, 해고사유 및 시기를 서면통보토록 한 것, 정리해고시 3년 이내 재고용의무 명문화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해고사유와 시기에 대해 서면 통보의무 위반시 해고효력 무효가 명문화되지 않아 유명무실해졌으며, 재고용 의무 요건을 ‘동일 업무’로 제한함으로써 실제 재고용될 노동자가 얼마나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로드맵 정부 입법안은 형사처벌 규정 삭제를 주장해 온 미국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고 한미FTA 체결의 수순을 밟기 위한 것으로 전체적으로는 좀더 자유로운 해고와 노동유연화를 그 기조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정부가 늘 선전하듯이 취약계층 근로자를 보호하려 한다면 비정규직 남용 제한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 핵심이 기간제 사유제한 도입, 불법파견 고용의제, 원청사업주 책임 명문화,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이 그것이다. 그리고 유명무실화된 형사처벌 조항이 사용자에게도 엄격히 적용될 수 있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