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민주노동당에서 대선 경제공약을 준비하는 정책간부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진보정치연구소, 정책위원회, 원내의원실 모두 나름의 연구프로젝트, 정책포럼 등을 진행 중이고, 이것들은 내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진보경제 공약 뼈대로 모아질 것이다. 향후 생산적 논의를 기대하며, 이 글에서 거시경제 대안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의 경제공약은 사실상 재정분야에 한정되어 왔다. 재정을 마련하는 조세개혁(부유세 도입)과 재정지출(사회복지)을 담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 경제, 복지 공약을 대신했다. 이것을 토대로 서민의 구매력 향상이 성장에도 기여한다는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이 민주노동당의 ‘재생산’론이었다.

내년 대선에서도 사회복지세를 포함한 부자증세론과 사회지출을 확대한 대안예산이 마련될 것이다. 하지만 재정정책만으론 대안경제의 재생산 영역을 모두 담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국민경제 전체를 규정하는 거시경제적 통화정책, 국제교역체제로 대안경제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통화정책을 보자. 핵심은 금리와 외환이다. IMF 금융위기 시절 한국은 살인적인 고금리체제를 유지했다. 불황국면에서 경기진작을 위해 저금리정책을 사용해야 함에도 정부는 외환을 초대해야 한다는 이유로 고금리를 고수했다. 그 결과 건전한 기업마저 자금난에 허덕이며 도산하였고 이를 재벌대기업, 외국자본들이 주워 챙겼다. 고금리가 생산기반을 파괴하고, 산업부문의 고생산성 노동력을 공공근로, 비정규직, 자영자 등 저생산성 영역으로 강제이전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사회양극화에 금리정책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환율정책도 심각하다. 한국을 먹여 살리는 게 수출이라는 국가 신조 아래, 외환정책의 목표는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것으로 고착되어 왔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의해 달러약세화 경향이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은 현실에서, 자꾸만 상승하는 원화가치를 억누르기 위하여 한국정부는 달러를 사들이는 환율방어정책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고 있다.

환율방어의 계급적 손익계산은 명확하다. 수출대기업은 수출단가 인하 폭만큼 이윤을 독점하고 내수기업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침체에 빠져든다. 수출대기업의 외국자본 지분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수출대기업, 외국자본에 특혜를 베푸는 셈이다. 사실 외환보유고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것이 중론이고, 삼성전자는 이미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기업이 아니며, 환율변동이 기업채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고 있는데도 수출경쟁력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환율방어는 계속되고 있다. 환율정책이 수출대기업과 내수기업, 주주와 서민 사이 양극화를 낳고 있다.

금리와 외환은 거시경제정책의 핵심이다. 우리가 겪는 사회양극화가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면,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진보진영의 경제정책도 당연히 금리, 외환 영역을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대응책을 찾기가 간단하지 않다. 교과서에 맞게 경기가 과열되면 금리를 높이고 불황이면 금리를 낮추는 경기조정적 금리정책을 사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자본자유화가 거의 진행된 글로벌 시대에서 한국 금리는 미국 금리의 움직임에 따라야 한다. 금리 차이가 일정 거리를 넘어서는 순간 달러가 지나치게 들어오거나 빠져나가는 외환유동성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조정수단으로 한국의 금리정책 자율성이 훼손되어 있다.

환율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환율방어로 인해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을 받고 있지만, 당장 보유외환을 대폭 줄이고 원화의 상승을 마냥 방치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지금보다 달러 보유를 일부 줄여 환율관리비용을 절감할 수는 있겠으나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큰 상황에서 상당한 규모의 달러를 계속 보유할 수밖에 없고, 게다가 이미 달러를 과대보유한 우리나라에게 원화의 상승은 보유한 달러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한국은 환율방어를 위해서 관리비용을 치루든지, 아니면 보유달러의 가치잠식을 감수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다.

이처럼 자본자유화가 전면화된 상황에서 한국이 행사할 수 있는 통화정책의 자율성은 크지 않다. 이는 대안적 거시경제정책을 수립하고자 하는 진보정당에게도 동일한 과제이다. 결국 자본자유화시대를 맞아 진보진영의 통화정책 역시 국민경제를 뛰어넘는 국제경제 영역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시론적 수준이나마 생각해 보면, 달러중심의 외환체제에서 가능한 벗어나 아시아지역 중심의 통화체제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달러 과대보유국들인 아시아국가들과 협의하여 단계적인 외환다변화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가동시켜야 한다. 아시아국가 모두 과대 달러로 허덕이고 있으므로 낮은 수준이나마 공통의 이해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최소한 아시아권역내부터 투기적 금융자본, 환투기세력에 대한 공동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금융에서 투기세력을 근절하여 외환시장이 안정화될수록 필요 외환보유액은 줄어들고, 환율에 의한 변동성도 감소하여 외환정책의 여지가 넓어질 것이다.
셋째, 아시아국가들의 외환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이미 아시아 국가 중앙은행들이 IMF에 대항하여 아시아통화기금(AMF)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솔솔 나오고 있다. 이는 아시아경제가 달러중심체제에서 벗어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아시아국가들의 통화체제가 형성되면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역체제도 자연스럽게 구축되어 나갈 것이다. 아시아국가들이 처한 정치적 한계로 인하여 일부 좌파국가들이 추진하는 인민무역협정(PTA people's trade agreement)은 가능치 않더라도, 미국의 패권적 경제체제에 일정한 거리를 둘 수는 있다.

한미FTA도 중간역을 지나고 있다. 그 종착역이 어디든 진보진영이 대안적 국제교역체제을 마련해야 한다면, 그 방향은 태평양으로 편중된 동쪽이 아니라 아시아를 향한 서쪽이고, 그 형태는 아시아의 여건을 감안하면 FTA와 PTA를 조합한 모델이지 않을까? 통화정책과 국제교역체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진보정당의 거시경제 대안토론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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