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8일
전ㅇㅇ(수술실 간호사 경력 3년)
부서 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 휴직 중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산재승인)

2006년 4월11일
신ㅇㅇ(시설과 과장 경력 20년)
병원 업무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산재승인)

2006년 4월21일
김ㅇㅇ(수술실 간호사 경력 15년)
수술과정에서 비인간적 대우와 수간호사의 인격적 모멸을 견디다 못해 자신의 차 안에서 약물투여(산재불승인)

2006년 8월21일
노ㅇㅇ(간호부 소독기사 경력 25년)
지난해 11월 근무 중 부상으로 산재요양 중에 병원 관리자의 압력으로 회복 전 복귀, 복귀 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부서에서 근무. 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 휴직 중 자신의 집 난간에서 목을 매 사망(산재 신청 준비 중)


최근 1년 사이에 전남대병원에서는 무려 4명의 병원 노동자가 업무 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병력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로 승인받지 못한 고 김ㅇㅇ 간호사와 현재 산재 신청 준비 중인 고 노ㅇㅇ 소독기사 외에는 모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지부장 최권종)에 따르면 이들을 죽음으로까지 이끈 '업무상 스트레스’는 상당부분이 의사 및 수간호사 등 관리자에 의한 ‘비인격적 대우’, ‘인간적 모멸감’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병원측과 정부는 연이어 발생하는 자살사건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병원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업무 중 폭언, 폭행에 무방비 노출…한달에 1번 이상 폭행 경험 3%

보건의료노조(위원장 홍명옥)와 원진재단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소장 임상혁)은 전남대병원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병원 근무환경을 점거하기 위한 ‘직무스트레스’ 실태조사를 벌였다. 이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은 폭력(신체, 언어, 성폭력 등)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건강 수준을 분석한 결과, 5명 중 2명은 주의가 필요하거나 정신적 질병이 의심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직무스트레스’ 실태조사는 지난 10월12일부터 18일까지 전남대학교 병원노동자 49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68.9%가 신체, 언어, 성폭력 등 폭력을 경험했으며, 간호사의 경우 무려 81.2%가 이러한 폭력을 당해본 적 있다고 응답했다.

세부적으로는 신체적 폭행을 당했거나 당할 뻔했던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23.3%이며 이 가운데 3%는 ‘한 달에 1번 이상 신체적 폭행(혹은 맞을 뻔한 경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욕설을 포함한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노동자는 절반 이상(53%)이었으며 또, 성희롱 발언이나 신체적 접촉을 경험한 노동자도 15%를 넘어섰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환자나 보호자, 의사, 수간호사 등이 고르게 포함돼 있다. 특히 응답자 가운데 22%인 110명이 의사로부터 신체적, 언어적, 성적 폭력을 당했다고 답했고, 5%인 26명은 수간호사 등 관리자에게 당했다고 답했다.


수직적·권위주의적 조직문화가 원인

이러한 병원 내 폭언과 폭행행위는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에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원진녹색병원 윤간우 과장은 “전남대병원 노동자들의 스트레스수준을 직종별, 영역별로 조사한 결과 사업장 내 인간관계와 관련한 조직문화영역과 상급자에 의한 명령, 지시 등과 관련한 직무요구영역에서 월등히 높았다”고 밝혔다.

윤 과장에 따르면 조직문화영역에서 전남대병원 남성 노동자들의 스트레스수준은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표준보다 무려 16.2점(여성은 12.3점)이나 높다. 병원이라는 사업장 특성을 감안하여 서울의 S국립대학병원과 비교해도 11점(여성은 6.5점)이나 높은 수준이다. 직무요구 영역에서도 전남대병원 노동자의 스트레스 수준은 한국 표준보다 9.7점(여성 10점)이나 높다.

윤간우 과장은 “이같은 결과는 전남대병원 내 상급자(의사 등)와 간호사 간에 ‘군대식 문화’와 같은 매우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작업장 내 정신질환 “외면하다 큰 코 다친다”

그렇다면, 최근 1년 사이에 4건의 자살사건이 벌어진 이후 전남대병원은 어떠한 조치를 취했을까? 전남대병원측은 “직원들의 고충제도를 활성화하고, ‘건전한 직장 만들기’ 등을 위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수영동호회 등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직장 내 단체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남대병원지부 관계자는 “병원의 후속조치는 대부분이 기존에도 해 왔던 것”이라며 “자살사건 이후 유일하게 달라진 변화는 병가나 휴직 중인 직원들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점검하는 정도”라고 딱 잘라 말했다. 실제로 병원측에서 취한 가시적 변화는 ‘연 3회 우울증 예방을 위한 전체 직원 교육’ 추진을 ‘계획’ 하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최권종 전남대병원지부장은 "자살사건 이후에도 책임자 및 관계자들에 대한 문책이나 징계가 전혀 없어 이와 비슷한 사건이 되풀이 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신체적 폭력행위에 대한 기준과 처벌을 강화해 이같은 행위를 근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문가 의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윤간우 원진녹색병원 과장은 “외국의 경우 산재로 인한 사망사건 가운데 ‘자살’이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심리상담과 정신과치료를 작업장에서 실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전무한 상태”라고 밝혔다. 윤 과장은 “이러한 조건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조치는 ‘자살’이나 업무 상 정신질환 사건이 벌어졌을 때 철저한 조사와 이에 따른 시정조치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추락 등 사고성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그나마 현장조사와 시정조치 등이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신질환이나 자살사건은 방치되고 있다”며 “정신질환이 많은 사업장에 대한 원인 파악과 재발방지에 노동부가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정신과 병력 없으면, ‘업무상 재해’ 아니다?
‘자살’ 관련 산재심사 기준 개정해야
현행법에서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사례는 둘 중 하나다.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았거나, 업무상 재해로 인하여 요양 중이거나. ‘산재법 시행규칙 제32조’는 이 두가지 기본요건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해야 산재로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은 전남대병원 신경외과 수술실에서 발생한 2건의 자살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을 처리한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협의회 심의소견을 들어보자.


지난해 11월 사망한 고 전ㅇㅇ 간호사


“정신 병리학적으로 망인의 성격에 취약성이 인정되지만 수술실 간호사라는 특수상황에서 받은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이 급성정신병을 유발시키는 데 상당 기여 한 것으로 판단되어 망인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


지난 4월 사망한 고 김ㅇㅇ 간호사


“망인의 근무환경이 긴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수술실 근무라는 조직적, 업무적 특수성으로 인한 업무와 관련하여 상당한 스트레스가 인지되나 정신과 치료를 받은 과거력이 없어 관련규정에 부합되지 못해 업무상 재해로 불인정.”


고 김ㅇㅇ 간호사와 같은 신경외과에서 근무했으며, 매우 유사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자살한 김ㅇㅇ 간호사는 결국 업무상 개연성은 인정되지만 과거 정신과 병력이 없어 ‘충동에 의한 자해행위’로 매듭지어졌다. 이에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는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 중에 있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현행법에서 자살의 산재인정요건을 ‘업무상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자’에 한정하고 있어, 결국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의 개연성이 인정된다는 자문의사협회 소견이 있더라도 이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며,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에도 자문의사협의회의 소견에 따라 산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단 의원은 “기술적으로 자해행위와 구분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으나, 자문의사에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늘리고,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 시행 중인 '정신질환 업무관련성 조사 실무지침'에 자살의 업무관련성 조사를 포함하여 운영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남대화순병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
정규직 정원 충원률 80% 밑돌아
보건의료노조 한 관계자는 “병원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인력부족’ 사태는 노동강도의 강화로 이어지고, 고도의 정신적 집중을 요하는 수술과정에서 과도한 노동강도는 쉽게 폭행이나 폭언 등으로 표출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고 전ㅇㅇ 간호사와 고 김ㅇㅇ 간호사가 근무했던 전남대화순병원의 경우 정규직 정원 충원률이 80%에 그치고 있으며,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26일 국회 교육위 국감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에 따르면 2006년 8월말 현재 서울대 분당병원을 제외한 12개 국립대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의사 제외) 1만3,840명 중 3,700명이 비정규직으로 26.7%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남대화순병원은 비정규직비율이 39.7%로 12개 대학병원 가운데 월등히 높다.


한편, 국립대병원의 정규직 정원 충원률은 94.4%로 현재 597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남대화순병원의 경우는 정원 549명 가운데 무려 110명의 인원이 과부족 상태로 정원충원률(80%)은 전국 국립대병원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남대병원 역시 정원충원률은 92.9%에 불과,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최순영 의원은 “정규직 충원률이 80%에 그친 전남대화순병원의 경우 정규직 수가 정원에 비해 110명이나 부족해 직접고용 비정규직 99명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이 가능하며, 전남대병원도 직접고용 비정규직 159명 중 54%인 8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립대병원은 정부의 경영혁신 지침에 따른 인력규제제도(정원제도)로 인해 필요한 인력조차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최순영 의원은 “국립대병원 대부분은 정원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정규직을 채용할 예산으로 많은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국립대병원에 대한 TO 규제 제도를 폐지하거나, 현실적인 상황에 맞게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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