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문사 진상규명은 역사 바로 세우기"…"국민적 관심이 법의 한계 뛰어 넘을 수 있다"

"박창수 열사의 의문의 죽음을 정리하지 않는 한 내 인생에 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진실에 접근하려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박성호(91년 당시 한진중공업노조 교육선전부장)씨는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특별위원회에서 일하기 위해, 아니 정확히 말해서 구속된 상태에서 의문의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 중 시신으로 발견된 박창수 전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의 의문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부산에서 짐을 싸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박씨 뿐만아니라 지난 11월27일 임명장을 받은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특별위원회(이하 위원회) 조사관 중 노동, 인권, 사회단체에서 일했던 민간출신 조사관들은 대부분 옛 동지의 죽음을 가슴에 담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진상규명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노동자 의문사, 대부분 실종 후 변사체로 발견…자살 처리돼

위원회가 민주화운동계승국민연대로부터 넘겨받은 의문사는 44인이며 그 중에 노동자 희생자는 9명. 이들 중 정경식, 신호수씨 등 의문사한 노동자 두명의 유가족을 비롯 5인의 유가족이 11월23일 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위한 첫 접수를 했다.

신호수씨는 인천 도화가스에서 일하다 서울 서부서 형사들에게 연행된 뒤 고향 근처 야산 동굴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고, 대우중공업에서 노조민주화 투쟁을 하던 정경식씨는 실종 9개월만에 화재가 난 야산에서 유골로 발견된 사건으로 노동자 의문사의 전형이다.

실종 뒤 시신발견으로 이어지는 노동자 의문사는 가해자가 기업주의 사주에 의한 구사대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사건 처리과정에서 경찰이 관여하고 '자살', '다툼 끝에 사망'등 처리된 경우가 많다. 박창수, 정경식, 신호수씨 외에도 회사 물탱크에서 시신이 발견된 경우부터, 신원확인도 없이 해부학 실습용으로 학교에 넘겨버린 사례까지 다양하다.

의문사는 그 피해자가 누구든 "국가기관에 의한 타살"일 수 있다는 가정을 갖고 출발한다고 말한다. 외형적으로는 구사대에 의한, 혹은 기업주 관련으로 어느 날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노동자 의문사의 경우도 동일한 전제가 적용된다.

"권위적인 노사관계, 구사대를 동원할 정도의 폭압적 노무관리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정권이 사회 전반의 운영시스템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민주화운동 정신계승 국민연대에서 일하다 위원회 특별조사과장을 맡은 김학철씨는 이렇게 반문했다. "폭력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구사대를 만들고 이를 용인하는 정권이 어떤 정권인가?"

이점에 대해 양승규 진상규명특별위원회 위원장도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서 규정하는 의문사는 직접적인 피해 뿐만아니라 간접적인 피해까지도 포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런 점에서 당시를 살았던 국민 모두가 희생자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진실은 밝혀질까?…"지금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시작일 뿐"

사실 의문사진상규명을위한특별법은 제정 당시부터 법의 한계가 숱하게 지적됐다. 수사권이 없다. 조사기간이 짧다 등등. 그런 점에서 이 법이 정말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점에 대해 민주노총에서 일하다 위원회에 들어 온 한 민간위원은 "기간이 짧은 건 분명하나 기간이 꼭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법 조항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정치 쟁점으로 부각되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달려 있다." 국민적 관심에 따라 법이 갖는 한계는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개인이나 소수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 전체의 관심이 모아져야 하며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의문사 진상규명은 위원회가 아니라 국민전체가 진상규명을 위해 뛴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의문사 진상규명은 지금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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