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이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에 합의한 뒤, 한국노총에 대한 비판도 높았지만 “전술이 부족하고 무기력했다”는 등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도 냉혹했다. 일부에서는 “민주노총도 교섭 과정에서 동의해준 내용이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런 내외부 평가에 대해 민주노총은 11월15일 총파업 준비에 주력하기 위해 반박 등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미뤄 왔다. 하지만 노사정 교섭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입장이 분명히 한 뒤, 총파업 준비를 하는 것이 순서일 수도 있다. 이에 김태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노사정 교섭에 대한 평가와 입장을 본지에 보내 왔다. <편집자주>



5년 전이다. 2001년 2월, 민주노총이 배제된 노사정위원회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을 5년간 유예하는 결정을 하였다. 당시 일반적 여론은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를 팔아먹은 결정이라며 비난을 하였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06년 9월11일,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 구성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바지에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야합을 한 당사자인 한국노총, 노동부, 경총에 대한 비판보다는 야합을 비판한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도력도 없고 실리도 얻지 못한 집단으로 “안이함과 전략 부재, 그리고 한발 늦은 대응”, “전술도 원칙도 구멍”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전술적 미숙이나 실패는 평가받아 마땅하고, 비판은 발전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민주노총이 왜 야합을 막지 못했나, 민주노총은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집단인가’ 등에 대해서 교섭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분명한 검토가 필요하기에 의견을 내놓고자 한다.

왜, 야합을 막지 못했나?

민주노총의 가장 큰 전술적 실패로 비판받는 부분은 충분히 예고된 야합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미 한국노총은 5년 전에도 야합을 한 바 있는 데다 한국노총 산별대표자회의 등에서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반드시 관철하라는 결의를 한 상황이었다.

8월26일 B, C급 과제가 정리된 이후, 복수노조, 전임자, 직권중재 등 핵심과제만 남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한국노총의 흥정이 본격화되었다. 8월30일 부산 ILO총회 철수는 노동부 장관이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를 계속 주장하면서 한국노총의 안을 선택하지 않는 데 대한 일종의 승부수였다. 그때 민주노총은 산별교섭, 특수고용 등 민주노총이 제기한 의제에 대한 답변을 정부에게 요구한 상태였다. 또한 우리는 노사관계민주화 8대 요구에 대한 일괄타결이 일관된 주장이었다.

9월2일 대표자회의에서 한국노총과 재계는 5년 유예입장을 제출하였고, 정부는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대표자회의에서는 사실상 더이상의 대표자회의 개최가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몇차례 실무교섭을 더 진행하여 진전된 합의가 있을 시에만 대표자회의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9월4일과 5일 진행된 실무교섭은 파탄나고 말았다. 우리가 산별교섭, 특수고용, 공무원 등에 대해 정부의 의미있는 제안이 제출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노-경총 5년 유예안에 반대하였기 때문이었다.

실무교섭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으나 정부는 노사정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9월7일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추진하였다. 우리는 이에 대한 참가 여부를 놓고 여러 의견이 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긴급 산별대표자회의를 개최하였다. 산별회의에서는 결국 정부가 민주노총의 요구안을 받지 않을 것은 명확하지만, 정부와 사용자가 그동안 합의해 온 B,C급 과제까지도 막바지에 개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민주노총은 이를 저지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반면, 한국노총과 경총은 5년 유예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불참하겠다고 입장을 밝혀, 이 회의는 결국 무산되고 만다. 이후 한국노총-경총-노동부 간에는 본격적인 밀실야합이 진행되었다. 몇차례의 회의에는 재경부 관계자도 참석하는 등 흥정이 가열되었다.

9월8일, 이상수 장관의 요청으로 조준호 위원장은 점심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상수 장관이 3년 유예안을 받을 생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이에 대해 정부가 민주노총과 전쟁을 선포하는 의미라고 판단했다. 전체 노동자의 요구를 수렴하여 올바른 제도를 만들어내야 할 정부가 노사정대표자회의의 주요당사자인 민주노총에게 한국노총과 사용자단체가 낸 안을 기간만 수정해서 받겠다는 편향적 입장을 밝힌 것은 민주노총에 대한 도발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 장관, 차관이 반복적으로 언론을 통해 공언했듯이, 노동부 단독 입법예고를 강행할 것으로 예측하였을 뿐, 정부가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개최하는 극단적인 비열한 수법을 사용할 것이라는 상상력(?)까지는 발휘하지 못하였다. 정부는 민주노총을 포기하고 사용자단체와 한국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입법안을 추진하기 위해 3년 유예안으로 9·11 야합을 주도하였다. 정부는 결국 절차도 내용도 문제가 되는 9·11 야합을 주도하여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결국 노동부-경총-한국노총은 밀실야합을 통해서 노사정대표자회의라는 공식회의가 아닌 허구적이고 기만적인 야합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제외한 기만적이고 허구적인 야합은 대중적 분노를 불러 일으켰으며, 각계각층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정부나 한국노총은 변명을 하기에 급급하여, 마치 민주노총이 불확실한 행보를 걸었다는 등의 왜곡을 하고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거짓된 주장에 불과하다.

OECD-TUAC, ICFTU 진상조사단의 한국노동탄압 보고서에 대해 노동부는, “민주노총은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죽음에 이르는 파업전술을 채택하고 있으며 한국노사관계의 지속적 발전에 방해물”이라고 비난하는 것에서도 확인되듯이, 노사정 교섭에 대해서도 왜곡된 정보를 기자들에게 퍼뜨려 밀실야합을 변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하고도 남는다.

민주노총이 통탄해야 할 부분은 기만적 밀실야합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점이다. 자신이 참여하는 공식단위가 아닌 밀실에서 민주노총을 제외하고도 노사정 합의라는 억지 주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역설적 상황을 대비하지 못한 데 있다. 민주노총이 반대를 명확히 했고 대표자회의를 개최하면 참석하겠다는 것을 밝혔기 때문에 배제된 밀실야합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술적 미숙은 결과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결과는 9·11 야합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식 협상단위가 아닌 밀실 비공식 단위에서 통보나 연락조차 없이 “역사적 합의”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최소한의 근거조차 없다. 밀실에서 노동기본권을 유예하는 역사적 과오를 범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규탄은 적고 민주노총의 행보에 대한 비판만 많은 것은 문제의 경중을 따지지 못하는 처사이다.

둘째로는, 위원장의 FTA 관련 미국방문이 예정되어 있었긴 하지만 긴박한 순간에 결정적으로 공백이 생김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더욱 증폭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앞에서도 수차례 밝힌 바와 같이 9·11 야합이 불가능하고 정부의 단독입법으로 갈 것이라고 오해를 한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9월8일 이상수 장관의 3년 유예안 수용 발언은 정부가 단독입법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판단했고, 조준호 위원장이 출국하던 날 아침에도 이상수 장관은 에 출연하여 “정부는 5년 유예안은 받을 수 없고 1년 유예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면서 정부 단독입법을 기정사실화 하는 발언을 하였다. 우리는 정부가 단독입법을 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대정부투쟁을 결의한 후 위원장 방미를 계획대로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긴박한 정세를 감안하여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였다고 본다.


민주노총은 '전부 아니면 전무식' 집단인가?

민주노총이 원칙만 있고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전술밖에 없다는 것은 또다른 측면에서 가해지는 비판의 핵심이다. 스스로 배제를 자초하지 않았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사실 민주노총은 참여와 더불어 8월26일까지 25개 의제에 대해서 의견일치를 보는 등 교섭에 성실히 임해 온 것이 사실이다.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면서 정부의 로드맵에서는 의제로 되지 않았던 △산별교섭 제도화 △특수고용 △공무원, 교수 노동3권 문제가 의제로 포함되도록 하여 쟁점화 하였다.

아울러, 8월26일 대표자회의에서는 핵심쟁점인 복수노조, 전임자, 직권중재, 근기법 등을 제외하고는 소위 B,C급 과제와 관련해서는 일단 개악안 저지에 성공하였다. 그 내용은 △공격적 직장폐쇄 저지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대한 규제 저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저지 △유니온숍 폐지 저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노조 추천권 박탈 저지 △노사협의회 정기회의 개최 6개월로 하는 등 로드맵 내용을 저지하고 노동법 개악을 막았다. 이외에도 △제3자 개입 완전 폐지 △안전보호시설 쟁의행위 중지 명령위반 시 벌칙 조항 삭제 △노사협의회 협의사항에 근로자 감시설비 설치 추가 등은 현행보다 일정한 개선 성과를 남겼다.

문제는 민주노총의 협상전술이 비핵심 쟁점에서는 일정한 집중점과 유연성을 발휘했으나 남아 있던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집중점과 전술이 없었다는 점에서, 전술의 실패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한국노총이 전임자임금에 대해서만 배타적으로 사활을 걸었던 것에 비해, 민주노총은 시종일관 8대 요구 일괄타결의 원칙 견지 때문에 전술적 집중점이 없었던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집단이라는 매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또한 9·11 야합안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직권중재 관련한 부분이다. 민주노총의 기본입장은 필수공익사업장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시키는 악법으로서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정부의 입장도 그간에 ILO 권고를 수차례 받아 오면서 노동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할 수 없이 직권중재 폐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사용자들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와 사용자단체가 직권중재 폐지를 노동계에 대한 양보라고 하면서 노동계도 대체근로 허용에 동의해야만 형평성에 맞는 것이라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었다. 노동계로서는 절도범을 피했더니 강도를 만난 격이었다.

그리하여 9월2일 마지막 노사정대표자회의까지 직권중재 폐지는 쉽게 합의되었으나, 공익사업장 범위 문제가 다음 쟁점이 되었다. 정부는 확대하자고 주장하였고, 민주노총은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대체근로 문제나 필수유지업무 문제는 충분히 검토되고 논의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안에 가장 가깝게 처리된 것이다. 이를 두고 노동부는 민주노총이 대체근로를 허용했다는 근거 없는 선전을 했으며, 교섭과정에서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내용을 마치 우리의 입장인 것인 양 호도하는 비겁한 행태도 보였다. 우리는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분명히 대체근로 허용 문제는 노동자의 파업권을 직권중재와는 또다른 방식으로 제한할 것이라는 입장으로 반대를 분명히 했다.

지금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백가쟁명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현 노동 위기에 대한 근본적 진단과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문제가 절박하고 신자유주의 노동배제 전략에 따른 노동기본권 하락의 심각성은 논하고 있지만, 이를 민주노총과 함께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 사회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성은 없다. 노동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과 비례한다. 전체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향상은 뒷전에 두고 민주노총만 비난하는 정부나 한국노총식의 비판태도는 9·11 야합의 본질을 은폐하고 노동기본권 유린을 당연시하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11월15일로 무기한 총파업을 선포하고 현장순회, 조합원 찬반투표를 하는 등 실질적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전체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방향에서 노동법을 바라보아야 한다. 9·11 야합안은 절차상으로나 내용상으로 변명할 수도, 정당화 할 수도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이고 역사적 과오이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결사의 자유권을 정부와 자본이 무슨 자격으로 박탈할 수 있는가? 이제는 우리 모두가 노동기본권과 중장기적 노사관계의 민주화를 위한 올바른 입법방향을 쟁취해나가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