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는 세상을 바꾸는 것을 업으로 삼을 사람들이다. 1987년 여름, 세상이 바뀌는지 알았고, 1997년 희망은 있다고 생각했다. 2004년 새 활로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위기라는 말보다 더 강한 어감의 단어를 찾기 시작했다.

20일 저녁, 충북 수안보 일양유스호스텔에 200명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전진) 소속 활동가 200명은 ‘지역’이라는 의제를 두고 만 하루동안 토론을 벌였다. <사진>

전진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는 좌파 쪽 활동가들이 만든 정파조직이다. 해방연대, 다함께, 노동자의힘 등 모든 좌파가 포괄돼 있진 않으나, 선거 국면에서 확인된 지분의 크기로는 좌파 중 가장 덩치가 크다. 나쁘게 평하는 사람들은 “중앙파와 화요모임, 진정추 등이 모여 만든 내부 선거조직”으로 본다. 스스로는 “좌파적 성향의 당 활동가와 노조 활동가들이 모여, 운동의 계급성 복원을 위해 만든 조직”이라고 평한다. 아무튼, 기자의 취재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참가 회원들의 실명을 공개한 채 정치대회를 여는 정파조직은 전진이 유일하다. 정치대회는 작년에 이어 두번째다.
 


지금 왜 지역일까?

정치대회의 의제의 정식 명칭은 ‘지역을 변혁운동의 진지로’였다. 정기국회가 한창이고, 북쪽에선 핵실험이 진행됐고, 민주노동당 내 대선주자들의 레이스가 물밑에서 시작된 이 시기에 왠 지역인가?

전진 스스로는 “산별노조와 당 지역조직이 교차하는 지점인 지역에서 새로운 운동모델을 찾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금속연맹의 산별전환투표가 ‘성공적’으로 진행됐고 공공연맹, 사무금융연맹 등 민주노총 각 사업장에서 산별의 바람이 불고 있다. 당 지역조직은 지방선거 패배 이후에 새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양자의 교차점인 지역에서 새로운 ‘계급운동의 진지’를 만들자는 게 이번 정치대회의 중심 이슈라고 했다.

김연홍 회원(금속연맹 정책국장)은 “금속이 산별전환 투표를 성공적으로 마친 순간, 잔치는 끝난 것”이라면서 “대기업 노조의 이익이 산별을 통해 얻어지는 구조를 막기 위해 연대와 개방성의 확보해야 하며, 그를 위한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원은 “전진의 모든 회원들이 산별노조의 조합원으로 가입해 산별의 개방성을 높이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면서 “또한 당과 노조, 전진의 지역위원회는 산별 조직화 센터로 전환해 비정규직의 산별조직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진 회원은 산별노조 조합원으로

또한 이상훈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비회원)은 지역사회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입, 특히 지역 노동시장 안에서 진보진영이 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했다. 지역단위 고용서비스에 대한 개임, 민간위탁의 대응으로써 계약준수제도 위원회 구성 시도, 지역단위 생활임금 운동 활성화 등의 모델이 설명됐다.

김현우 회원(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역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양대 축인 당과 노조는 노동부문 할당제와 같은 형식적인 결합을 줄이는 대신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결합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급 회원·패널의 몇가지 제안이 끝나고, 오후 들어선 사례제안 및 발표가 이어졌다. 사실 ‘간증’에 가까웠다.

“광역의원이 되고 좀 떨어져서 보니, 당과 민주노총이 얼마나 고립돼 있는지 보이더라. 그나마 둘 사이의 관계도 긴밀하지 않다. 둘은 딱 세 가지 경우에 모인다. 큰 집회 있을 때, 재정사업 할 때, 선거할 때.”(윤난실 회원, 전 광주광역시의원)

“선거 때 후보 나갔던 사람들은 모두 낙후된 지역경제 개발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아마도 적당한 답을 내렸을 것이다. 책임질 것도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선거 마치고, 그 답은 어디갔나? 그를 위해 무슨 일 하는지 묻고 싶다.”(고영호 울산리서치 소장, 비회원)

찐빵과 앙꼬

정치대회 말미에 두 활동가가 마이크를 잡고 나눈 대화의 일부다.

“이번 토론은 밀가루밖에 없는 찐빵이다. 앙꼬가 빠졌으니 맛이 없다. 지금 펼쳐두고 담론을 이야기 할 때인가?”(배성훈 회원)

“찐빵이라는 걸 인식했다. 앙꼬가 없다는 것도 인식했다. 그것도 중요한 일이다.”(김현우 회원)

공장에선 투사이지만, 퇴근 후에는 소시민이 되는 현실. 지구당 활동 금지 이후, 어쩌면 천덕꾸러기가 된 당의 지역 활동가들. 블루오션을 눈앞에 두고 조직률 10%의 골방 안에서 싸우는 활동가들. 답답한 현실에, 활동가들은 더 답답해 했다.

(2년 연속 정치대회를 취재한 입장에서) 대회 내용이 재미없기는 작년과 마찬가지. 단지, ‘성찰과 간증’이 더해졌다는 의미에서 ‘대회’는 발전 중이었다. 

 

 

대선방침 토론

난상토론 사회를 보던 신언직 회원(단병호 의원실 보좌관)은 “1987년부터 진보정당 운동을 하며 힘 빠져 한 적이 없었는데, 2006년 5월 지방선거 이후에, 답답함을 느낀다”면서 “생존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지지자를 결집하고, 대선을 돌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 회원은 “무작정 길거리로 나온다고 지지자가 규합되냐”며 임 회원과는 다른 의견을 냈다.


홍성준 회원은 “무작정 길거리로 나와서 서명받는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면서 “정신을 못 차린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떠나라고 호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회원은 “중앙위를 뛰쳐나온 그 정신(최근 민주노동당 중앙위에선 좌파 쪽 중앙위원들이 중앙위 성원유예 전술을 써서, 북핵 관련 결의안을 통과를 막은 바 있다)으로 갈라설 땐 갈라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길 회원(전 충남도지사 후보)은 “어렵게 쌓아온 지지여론을 (당 지도부의) 몇 번의 헛발질로 날려버렸고, 민주노총은 부정적으로 비쳐지고 있다”면서 “내년 1월 민주노총 선거가 대단히 중요한 길목인 만큼 책임지고 이기는 선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통(전진의 표현으론 ‘우파’) 쪽 당 지도부와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 것이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임기를 채우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제기됐다.


김종철 회원(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한미 FTA를 중심으로 진보-보수의 확연한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18대 총선 때까지 원외정당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의원들이 의원직 사퇴를 걸고 반대투쟁에 임하는 것이 유력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근원 회원(공공연맹 조직강화 위원장)은 “진보정당은 대중운동과 접목하지 못하면 안된다”고 말하며 “비정규직 문제에 의원직 걸고 투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기 회원(의정지원단장)은 "2007년 대선은 극좌가 선동하는 정치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막상 전진이 지지할 대선후보와 선거 원칙에 대한 논의는 산발적으로 이뤄졌다.


문성진 회원(인천 동구지역위원장)은 “전진의 선거강령을 만들고, 이를 실천하고 지지하는 사람을 대선후보로 세울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한다”면서 “전진의 대선기획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석호 회원(전진 집행위원장)은 “전진 회원들이 생각하는 후보는 통합력과 안정감을 가진 사람, 재치와 돌파력을 가진 사람, 정책능력에 몇가지 더할 것이 있는 사람으로 그림이 그려진다”면서 “마지막에 사람문제로만 의견이 좁혀지면서, 고통스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다양한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자도, 발제자도 난상토론의 결과를 정리하지 않았다. 이제 (국회를 벗어나) 거리로 나서자, 의원직을 걸고 싸울 때가 됐다, (자민통과) 갈라서자, (당내 좌우가) 쪼개져선 안된다 등등.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면서 밤이 깊어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