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서비스 확충전략은 매년 20만개씩, 2010년까지 8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게 핵심이다. ‘전략’은 새 일자리 마련과 사회서비스 수요 충족이라는 쌍두마차가 끌어간다. “주부와 고령자 등 비경제활동 인구를 경제활동 인구로 흡수해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보육, 가사·간병 등 사회서비스 제공을 통해 여성을 가사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발표되자마자 재계를 비롯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당장 정부는 내년에 1조1,6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일자리는 복지보다 성장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되풀이됐다.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보는 이들도 있다. 정부가 확충하겠다는 사회서비스 업종에서 실제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직접 이들 노동자들과 대면하는 시민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보건의료, 교육문화, 환경안전 등 분야에서 규제를 완화해 정부책임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질을 높이지 않고서 이 분야의 일자리를 늘린다는 정부의 ‘전략’도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19일 노동사회단체들이 ‘정부의 사회서비스확충전략,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의료연대노조, 자활훈련기관노조 등 민주노총 공공연맹 사회복지 업종본부 소속 노조들과 비정규센터, 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민중복지연대,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단체연합이 토론회에 참여했다. 간병, 보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실태에 대해 증언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사례 1. “2004년 2월 25일 서울신문 사회면(11면) 한 구석에 1단 짜리 기사 한 줄이 실렸다. 기사 제목은 ‘청년 실업대책 격무 공무원 순직’. 기사는 두 문장짜리 단신으로 처리됐다.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청년실업대책과 일자리 창출 업무로 격무에 시달린 문화관광부 기획총괄담당관실 김아무개 씨가 순직했다는 거다. 김씨의 나이는 고작 35살. 죽어야 할 나이가 아니다. 그는 대통령이 지시한 청년실업대책과 일자리 창출 업무에 시달리면서 과로를 호소하다 지난달 30일 병원으로 옮겨져 무려 3주 동안 혼수상태 끝에 순직했다. 그는 승진도 물 건너가고, 병들어 정년만 기다리던 문화관광부의 만년 서기관이 아니었다. 살아갈 날이 창창했던 30대 청년이었다.”
#사례 2. “안타깝게 죽은 김씨가 근무했던 문광부가 짜낸 총선용 일자리 창출계획의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문광부는 당시 각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내놓는 일자리 창출계획 발표 압력에 밀려 문화관련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인턴사원의 월급 중 일부를 한시적으로 지원하고, 이를 일자리 200만개 창출계획 중 일부로 포함시켜 발표한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문광부는 언론관련 한 시민단체에 2004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인턴사원 한 명의 월급을 매달 60만원씩 지원했다. 당사자는 동국대 모 학과 3학년을 다니다 휴학 중이던 학생으로 이미 그 시민단체에 무보수 간사로 일하고 있었다.
해당 시민단체는 이 학생을 새로 뽑은 인턴사원이라고 문광부에 신고하고 매달 60만원의 월급지원을 받아 그대로 지급했다. 이 학생은 그 해 연말 문광부 지원이 끊기자 곧바로 해당 시민단체를 나왔다. 무슨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했는가. 해당 시민단체가 이미 일하고 있던 무보수 직원에게 세금으로 받은 60만원을 줬을 뿐이다. 이후 고용관계가 계속된 것도 아니다.”
발제를 맡은 공공연맹 이정호 정책국장이 “정부가 마련한 일자리라는 게 대충 이런 식”이라며 든 사례다.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관련 부처 장관과 정계, 재계, 노동계, 시민단체, 언론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지도자 회의’를 열어 발표한 종합대책의 뒷얘기다.
1,000만명 → 200만명 → 80만명
무엇보다 이정호 국장은 일자리 창출 계획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DJ정부부터 일자리 창출계획 발표는 3~4번, 복지부나 노동부 등 관련 부처별로 독립된 일자리 창출계획 발표는 10여 차례에 달한다”는 것이다. 지난 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일자리 1,000만개 창출’에 이어 2004년 초 노무현 정부가 200만개 일자리 창출, 또 이번에 80만개 일자리 창출 등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국장은 “전체 실업자가 100만명도 안 되는 나라에서 일자리 1,000만개를 창출한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웠던 과오를 씻기라도 하듯, 이후 발표되는 일자리 창출계획은 그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연평균 실업자 수가 88만7,000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계획이 제대로 실행되면 우리나라는 아마도 몇 년 안에 실업률 0%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수없이 많은 고용확대 계획을 발표하는데도 실업률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는 말도 뒤따랐다.
게다가 그는 통계청의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실업자’도 계속 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취업준비생 48만명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실업자의 절반에 달하는 이들 취업 준비자들은 구직활동을 하지 않아 비경제활동 인구에 포함돼 실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결국 그가 주장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핵심은 ‘노동의 질’ 향상
그는 구체적으로 이번 대책에 대해 사회서비스 공급인력 부족의 근거가 미약한 가운데 세워졌다고 비판했다.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한국노동연구원과 사람입국·일자리위원회, 기획예산처가 각자 서로 조사한 결과를 이번 ‘전략’의 근거로 삼았지만 조사 방향이 영 잘못됐다는 것이다.
“조사에서 사회서비스 공급에 부족한 인력을 약 90만명으로 추산했는데 이 사회서비스는 복지서비스가 주를 이룬다”며 “그런데 복지서비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지, 계량적으로 얼마나 필요하다고 통계 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는 지적이다. 90만개의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면 모든 국민이 만족할 수준의 복지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계량화하는 것 자체가 관료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사회서비스를 수행하는 노동의 질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즐겨 사용하는 ‘확충, 창출, 늘리기, 확보’ 같은 단어 대신 ‘다지기’, ‘내실화’ 같은 용어를 써야 한다는 충고를 했다.
정부가 ‘아동과 청소년의 36%가 방과 후 보호자 없이 방치돼 있고, 월수입 1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 중 32.3%가 경제적인 이유로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불참하고 있다’며 세운 대책을 예로 들었다. 정부는 방과 후 교육프로그램을 늘려 이들 저소득층 가정의 주부들이 아이들 때문에 직장에 다니지 못하는 폐단을 해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국장은 “주부들이 나가서 사회서비스에 종사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받고, 그 주부들의 빈자리를 채우며 방과 후 교육프로그램을 담당할 또 다른 주부 역시 100만원도 안 되는 사회서비스에 종사하게 된다는 굳이 이들이 고용시장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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