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공무원노조특별법 거부·일반법에 의한 노동3권 쟁취”를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지 1년. 노동3권을 전혀 보장하지 않는 공무원노조특별법이 시행된 지 9개월여. 그동안 행정자치부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들을 교부세 페널티로 압박하면서 조합원들에게 탈퇴를 강요하고 노동조합 사무실을 강제로 폐쇄하는 등 갖은 불법행위와 파행을 반복적으로 일삼았다. 한편으로는 나머지 공무원노조단체들에게 “탄압이 두려우면 조용히 법내로 들어오라”고 묵직하게 회유해왔다.

그래서인가. 아무튼 “법내에서 공무원노조특별법 개정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설립신고를 하는 노동조합들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그리고 2006년 9월 대정부교섭을 향한 공무원노조단체들의 고난의 행보가 시작되었다. 지난 9월 27일 행자부는 ‘교섭노동조합 및 교섭위원 선임요구’를 공고하였다. 이에 따르면 교섭참여 대표노조단체 수만 해도 10개, 포함된 단위노조의 수는 36개인 한편, 그 규모는 물론 조직대상도 천차만별, 물론 교섭요구안도 각양각색인데, 공고일로부터 20일 이내에 10명의 대표교섭위원을 선임하고 교섭요구안을 단일화해야 한다.

대다수의 공무원노조단체들은 대정부교섭을 시작도 하기 전에 교섭창구 단일화과정에서부터 교섭권 박탈의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것은 고난의 시작일 뿐, 산 너머에는 더 험난한 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산, 테이블 앉을 자격?

교섭참여 노조단체는 10개(교섭권 위임노조 포함 총 36개 단위노조), 교섭참여노조 조합원수는 총 4만6,446명, 그러나 교섭위원은 최대 10명. 공고일로부터 20일 이내에 교섭참여 노조단체들이 교섭위원 선임을 합의하여 행자부에 통보해야 한다. 과연 10월 17일까지 사실상 8일여를 남겨두고 교섭위원 선임의 실타래는 무난하게 풀릴 수 있겠는가?

얼핏 생각하면 각 교섭참여 노조단체에서 1명씩 교섭위원을 배당하는 방식으로 합의되면 가장 합리적일 것처럼 보이지만, 수개의 단위노조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단체들이 많을뿐더러 조직규모가 1만6,107명에서부터 33명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합의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결국은 조합원 수에 비례하여 교섭위원을 할당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될 터인데, 현재의 상황에서는 반올림하더라도(?) 최대 5개의 노조단체만이 교섭위원 선임자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5개의 노동조합은 교섭테이블에 앉을 자격조차도 없다는 말이다. 조합원 수가 적으면 단체교섭권을 박탈당해도 되는 건가, 아니면 좋든 싫든 상급단체에 가입하라는 건가, 그도 아니면 조합원 수를 불릴 수 없을 바에야 노동조합을 조직하지 말라는 건가.

이처럼 공무원노조단체들의 대정부교섭이 시작부터 교섭위원 선정을 둘러싼 난항에 봉착한 것은 공무원노조특별법이 복잡한 직능과 직렬 등 공무원조직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조직대상은 다양할 수밖에 없으므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하더라도 조직대상이 같은 노조에 대해서만 적용가능하다는 기본 중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 번째 산, 요구안 단일화

산은 또 있다. 교섭위원 선임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노조단체들에게 20일 이내에 교섭요구안도 단일화해서 교섭위원 선임결과와 함께 통보하라는 것이다.

행자부와의 교섭에 참여한 노조단체들은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조직대상도 천차만별이다. 조직대상이 다양한 만큼 당연히 교섭요구안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요구안을 분류해 보면 공무원노조특별법 개정, 임금·노동조건 개선, 노조활동 보장, 공무원연금 개선, 고용안정 등 비슷하게 묶어지지만, 요구안의 세부적 내용과 우선과제순위, 타결 가능한 마지노선 등은 모두 다르다. 일례로 공무원노총이 공개한 단체교섭요구서만 보더라도 총 185개 요구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섭참여노조단체가 10개인만큼 각 조직의 교섭요구안을 단순 합산하면 1천개가 넘는 조항을 ‘사전조율’하여 20일 이내에 단일한 요구안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정부 교섭테이블에서의 승부는 아직 까마득하다. 먼저 교섭참여 노조단체들끼리의 교섭요구안 단일화를 위한 ‘교섭 아닌 교섭’에서 각 조직의 요구안을 어떻게 관철시킬 것인가의 승부(?)부터 가려야 하고, 행자부는 느긋하게 앉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교섭요구안이 단일화될 때까지 행자부는 교섭을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산, 이행은 어떻게?

험난한 산을 넘어 대정부교섭 테이블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여전히 또 다른 산이 가로막는다. 예선전을 거쳐 어렵사리 단일화시킨 교섭요구안도 교섭대상으로 제대로 다루어질 수나 있을지, 다행이 교섭대상으로 채택되었다 하더라도 과연 임금·노동조건 등에 관한 구체적인 협약을 체결할 수 있을지, 나아가 임금·연금·고용안정 등에 대한 구체적인 협약을 체결했다 하더라도 그 이행을 담보할 수 있을지 여러 면에서 예측은 어둡기만 하다.

공무원노조특별법은 ‘노동조합에 관한 사항 또는 조합원의 보수·복지 그 밖의 근무조건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 교섭하고 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제8조 제1항) 정하는 한편, ‘체결된 단체협약의 내용중 법령·조례 또는 예산에 의하여 규정되는 내용과 법령 또는 조례에 의한 위임을 받아 규정되는 내용은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고(제10조 제1항)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조합원의 고용불안과 노후보장과 임금·수당 등에 대한 요구안을 빼면 교섭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고, 행자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요구안들이 보수·복지 근무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정치적인 문제이거나, 혹은 대부분 법령·조례 또는 예산에 의해 규정되는 내용 등에 해당된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현행 특별법 하에서의 공무원노조단체들의 대정부교섭은 이래저래 험난하기만 하다.

행자부는 ‘사용자’라는 말을 아는가?

행자부의 행보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정신없다. 10개의 교섭참여 노조단체들이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서 본격적인 교섭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니 적어도 본교섭이 시작되더라도 너무 질질 끌어서 교섭참여 노조단체들에게 허탈감을 심어주기 전까지는 전국공무원노조와의 ‘승부’를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설립신고가 ‘다보장보험’이라도 되는 듯이 호들갑을 떨어놓은 행자부 입장에서 시작도 하기 전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다. 올해 교섭에서는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의 진통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인가. 행자부는 이제 대놓고 “일정기간 이상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경우, 정부가 공익적 입장을 가지고 함께 조율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라 밝힌다.

그러나 이 경우 정부는, 적어도 행자부는 공익적 입장에 설 자격이 없다. 공무원노조단체들과 행자부와의 교섭은 엄밀히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대등하면서도 대립적인 지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노조 측의 교섭위원선임과 교섭요구안 확정과정에 사용자가 개입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급해도 사용자가 공익을 자임하는 비상식을 보여서는 안 된다.

특별법, 새로 장만한 누더기

행자부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행자부만큼 법과 원칙하고 담을 쌓고, 아니 척을 지고 사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행자부가 자행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공무원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공무원노조특별법을 설립신고하지 않은 공무원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이론적 근거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은 행자부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립신고를 강제하기 위해 위법한 ‘행정대집행’으로 노동조합 사무실을 부수고 폐쇄하는 것도, 법외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면서 탈퇴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이름을 걸고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것도 ‘법과 원칙’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공무원노조특별법이 공무원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 행자부는 요즘 별 대답이 없다. 어제 산 누더기도 누더기임에는 틀림없고, 아무리 새로 장만한 걸레라도 수건 대신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누군가는 “단체교섭 구조만큼은 웬일이냐 싶으리만치 잘 설계되어 있다는 건 입이 비뚤어져도 사실”, “선진국 공무원 단체교섭구조가 급속히 분권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집중적인 구조를 보장한 것은 앉을 자리에 방석까지 깐 격”이라 공무원노조특별법을 격찬했었다.

그러나 정작 교섭이 시작되려하는 순간 집중적인 단체교섭구조는 교섭참여 노조단체 사이의 집단적인 혼란만을 초래하고, 가시밭에 머리를 찧어도 이보다 더 갑갑할 수는 없을 만큼 공무원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은 질퍽한 진흙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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