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여승무원 불법파견 관한 노동부서울청의 재진정 결과 불법파견으로 볼 수 없다는 결정이 나왔다.

1년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불법파견 개선을 위해 높은 수준의 투쟁을 전개해 온 당사자들은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다. 물론 불법파견인지 가·부를 표징하는 여러 요소들이 혼재해 있는 상황에서는 판단을 담당하는 사람도 혼란을 겪겠지만 어떤 면에서 지금까지의 간접고용관계를 다룬 법원 판결 중 간접고용관계를 부인하고 직접고용을 명령한 판례가 사용회사와 공급회사가 모자회사인지 여부에 중점으로 두었던 점에서 볼 때, 철도공사의 자회사가 인력을 파견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다른 사건들과는 달리 불법파견은 물론 직접고용까지도 실현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예상하던 터였다.

불법파견 가능성 높았는데…

그런데 필자가 이번 노동청의 판단에서 조금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바로 도급과 파견의 판단하는 기준적용에 관한 부분이다.

파견적 요소 ‘도급’이란 ‘사업완료를 목적으로 체결되는 계약’으로 정의된다. 한 사업주가 사업의 일부를 다른 사업주에게 완전히 이양해 그 업무처리결과에 대해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달리 ‘근로자파견’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파견사업을 목적으로 근로자를 채용한 뒤 사용사업주에게 근로자를 파견하는 계약’으로 정의된다.

파견사업주가 고용을 하되 사용사업주에게 종속되어 근무하게 된다. 그런데 도급과 파견이 현실에서 드러내는 모습은 매우 유사하다. 도급으로 할양된 사업이 하도급업자의 독립된 사업장이 아닌 원도급회사의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원도급업체가 근로자들의 관리에 개입하게 되는 경우 파견과 도급은 이론상으로는 분별되나 현실에서는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개념적으로 간접고용의 영역에는 완전도급과 완전파견 사이에 도급적 요소와 파견적 요소가 혼재된 ‘불완전파견’이 있을 수 있다.<그림 참조>

근로기준법에서 중간착취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직업안정법이 노동조합이 아니면 사실상 근로자공급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우리의 노동법체계 전반에서 간접고용이 어느 정도나 반사회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잘 말해 준다.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파견법 입법이 이루어지고 난 후 당시 정부가 파견법 도입을 추진했을 때에도 이러한 이유로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사실상 용역, 하청, 하도급, 위탁 등의 이름으로 간접고용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많은 폐단이 드러났고, 이를 시정해야 할 정부도 이러한 불법행위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1998년 구제금융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다시 파견법 도입이 정부입법으로 추진됐고, 결국 입법이 이루어졌다.

파견법 도입시 정부 엄격 단속 입장은 어디로?

어쨌든 당시 정부의 입장은 파견법을 기초로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간접고용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부분에 있어 이를 허용함과 동시에 법률로서 파견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이를 엄격히 단속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 노동부장관은 ‘근로자파견사업과도급등에의한사업의구별기준에관한고시’를 발한다. 바로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이 원칙에 대해 당시 노동부는 고시에서 “제3조(도급 등과의 구별) 수급인 또는 수임인이 도급 등의 계약에 의해 수급 또는 수임 받은 업무에 자기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그 업무처리에 있어서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로자파견사업을 행하는 것으로 본다.”라고 하고 각호에 사업적 독립성을 판단하는 요소와 인사노무관리의 수행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를 두었다.

그리고 이어서 “제4조(위장도급 등의 처리) 수급인 또는 수임인의 도급 등의 사업이 제3조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법의 규정에 위반하는 것을 면하기 위하여 고의로 위장된 경우에는 근로자파견사업을 행한 것으로 본다.” 라고 하여 결국 도급이라고 하더라도 근로자파견의 요소가 있으면 근로자파견으로 보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앞에서 말한 불완전파견을 근로자파견으로 보고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러한 원칙이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면 앞서 우리가 본 KTX사건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겠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노동부, 새로운 판단기준 세운 것 아닌가

노동부의 조사 내용에 의하면 철도공사의 자회사 지분 소유율이 100%이라는 점, 실제 열차팀장에 의해 노무관리가 이루어지는 점 등 인사노무상의 독립성과 경영상의 독립성이 침해된 사실이 분명히 있었다(이 점은 노동부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최초 노동부가 수립한 판단기준으로 보면 KTX의 도급이 완전도급이 아닌 다음에야 근로자파견사업으로 간주해 불법파견으로 결론지었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노동부는 기존과 달리 새로운 판단기준을 세운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즉, 파견적 요소와 도급적 요소 중 어느 것이 더 많은가를 보고 파견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처음 파견법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정부한 약속과 다르다. 이제는 완전도급이 아닌 파견적 요소가 섞인 도급이 허용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파견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기간도 2년으로 정해져 있고, 원칙적으로 파견근로자는 통상근로자와 차별적으로 처우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파견사업주의 수수료를 보전해 주려면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써야 한다. 파견근로자를 쓰는 사업주는 저임금을 목적으로 한다. 고용유연성을 위해 파견을 사용한다는 말은 정말 철모르는 소리다.

그러니까 사업주들은 당연히 도급제의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기간의 정함도 없고, 임금도 적게 나간다. 위장 회사를 만드는 것은 정말 쉽다. 희망퇴직자에 대한 보상책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을 ‘도급으로의 회피’라고 부른다. 이번 사건에서 보여진 노동부의 판단기준이 앞으로 계속 적용되는 경우 불완전한 도급 즉, 파견적 요소가 있는 도급사업에게도 면죄부를 주는 결과다.

파견적 요소 있는 도급에 면죄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법이 빨리 통과되지 않으면 비정규직들의 고통이 늘어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현실을 몰라도 정말 모르는 말이다. 아무리 파견법을 잘 만들어도 지금과 같이 불완전한 파견에게 도급의 가면을 씌워준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법을 피하려면 도급으로 위장하면 그만이다. 파견법 자체가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정말이지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합법적으로 파견되기를 바라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근로자파견이라는 고용형태는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되새겼으면 한다. 그리고 원칙과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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