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에 발표된 정부의 '물 산업 육성방안'은 현재 약 11조원 규모의 물산업을 2015년까지 20조원 이상으로 키우고, 세계 10위권 기업을 2개 이상 육성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인천시의 경우, 상수도 공급권을 프랑스의 다국적 회사에 매각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정부의 눈에 '물'은 이제 ‘산업’이다.

“환경적,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싸고 안전하고 깨끗하게 필요한 만큼 누구나 물을 먹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권승복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의 발간사 중) 이 목표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물 사유화’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 발간됐다. 전국공무원노조는 물 사유화에 저항해온 각국의 사례를 담은 책, <세계화와 물>을 발간했다. 이 책은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에서 발견되는 ‘성공적인 물 공공성’ 사례와 함께, 우르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우크라이나, 멕시코 등에서 벌어진 민중들의 물 공공성 투쟁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서점에서 시판될 예정이며, 전국공무원노조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우
2년만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

1990년부터 대규모 자산을 매각해온 아르헨티나에선 석유, 항공, 육상교총, 해상교통, 공항 등 주요 공기업을 체계적으로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인구 1천만명이 살고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은 공적 서비스를 지키기 위해 저항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두 번째로 큰 국영기업이며, 수도 서비스를 담당해온 OSBA는 1999년 미국 엔론의 자회사인 아주릭스에 매각됐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실업률은 20%에 달했고, 통화체계는 거의 붕괴된 상태였다.

아주릭스는 예치금 5억 달러를 제시하며 수도 서비스를 매입했고, 2,000명의 노동자 중 1,100명만 고용 승계했다. 70여개의 도시 상수도 서비스 공급과 47개의 폐수 처리장, 470개의 식수용 우물, 1만 킬로미터의 수도관, 7,200 킬로미터의 하수관 건설을 할 것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엔론은 이 계약을 지키기 위해 영국의 소규모 기업인 웨섹스 워터를 이용해, 웨섹스 테크니컬이라는 기술 자문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이후 엔론의 조세피난처로 돈을 빼돌리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엔론이 수도 서비스를 담당한 이후 물의 생산과 공급, 폐수의 수거 및 처리 영역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상수도는 오염됐고, 시설들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하수처리 시설은 마비됐다. 서비스의 중요 영역들은 외주로 돌려졌고, 소비자들의 불만은 높아졌다. 미국 본사의 엔론이 파산하면서 회사는 철수했다. 이 기간은 2년에 불과했다.

2002년, 지방정부는 서비스 공급을 책임지는데 필요한 기술자도, 관리자도 보유하지 못했다.

지방정부는 노동조합이 주주로 참여하며, 감독권한을 갖는 공공기관(부에노스아이레스 물 규제기구)을 설립했다. 노동자들은 물의 저장, 처리, 공급, 폐수처리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사용했다. 정부부처와 규제기구가 공동으로 회사를 관리하며, 공적인 서비스를 제공했다. ‘물 사용자 조직’들은 물 서비스의 운영과 통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엔론이 수도 서비스를 인수하기 전인 1999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은 74%의 물 공급률을 기록하고 있었고, 도시 인구의 47%가 하수도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만에 물 공급률은 68%로 하락했고, 하수도 보급률은 43% 이하로 떨어졌다. 엔론은 오수 처리장의 절반을 포기했고, 강물은 대대적으로 오염됐다.

현재 식수공급률은 71%까지 회복됐다. 하수도 보급률도 45%까지 회복됐다. 이에 들어간 자금은 세계은행에서 차관을 도입해, 지방정부의 예산으로 충당됐다.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의 경우
부자가 더 내고, 물은 모두에게


참여민주주의로 유명한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의 경우 물 사유화 개념의 반대하는 모델 중 하나인 ‘지방 상하수도국’(DMAE)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포르투알레그레는 1950년 물 서비스 확장을 위한 차관을 도입했고, DMAE를 설립했다. 그후로 40년, DMAE는 물 서비스의 ‘사회적 통제’ 실현하는 중요한 단위로 나타나 있으며, 물 사유화에 대한 국제적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4년까지 브라질은 초인플레이션으로 경제적 위기를 겼었지만 DMAE는 작동됐고,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경제적으로 엄혹한 상황에서도 물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작동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

1989년 물 공급률은 94.7%였고, 2001년에는 99.5%까지 높아졌다. 1989년에는 인구의 2%만 하수처리 서비스를 받았는데, 2002년에는 27%로 높아졌다. DMAE는 하수처리 지수를 77%까지 높여줄 새로운 하수처리 시설 건설을 계획했다.

DMAE가 7년 동안 투자한 금액의 70%는 요금에서 나왔다. 이는 요금 구조의 강력한 교차보조금에 기반한 것이다. 저소득계층의 수도요금을 깎아 주는 대신, 대규모로 물을 사용하는 계층의 물 사용요금을 비싸게 받는 방식이다. 예컨대, 수영장에 물을 채우기 위해 물을 쓰는 사람은, 빈민의 물 사용을 지원하는 보조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이 요금제도로 인해 DMAE 1년 예산 대비 15~25%의 수익이 창출되고 이는 새로운 투자로 이어졌다.

이 부분에서 포르투알레그레 시민들은 개입한다. 포르투알레그레가 도입하고 있는 참여예산제를 통해 시민들은 DMAE에 대한 예산지원과 자금집행에 개입·감시하고, DMAE 직원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된다.

2000년 브라질 정부는 물 사유화를 목적으로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DMAE는 전국적인 저항운동에 최선두에 섰고, 결국 법안은 철회됐다. 2003년 들어 정부는 상하수도 등을 국가가 강력히 규제하는 새로운 법안을 제출했다.

남아공의 경우
요금 징수를 위해선 물 공급을 끊어라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교부금과 보조금을 대폭 축소했다. 또한 물 공급의 사유화를 위한 재정수단을 마련하도록 지원했다. 주요 지방정부는 다국적 물 기업과 ‘협력’을 통해 사유화를 개시했다.

이 정책은 대단히 파괴적인 결과를 나았다. 첫 번째로 수도요금이 엄청나게 인상됐다. 가난한 지역공동체의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1994년에서 1996년까지 2년 동안 물 요금은 600% 인상됐다.

남아공 지방공무원노조와 사회운동단체들이 강력히 반대했지만, 정부는 물 사유화를 고집했다. 또한 세계은행은 “물 요금 징수율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 중단 협박을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요하네스버그 시 의회 등 여러 지방의회들은 이 ‘조언’을 받아들어 요금을 지불할 여유가 없는 사람에 대해 물 공급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어떤 공적인 보조금도 제공하지 않았다. 1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물 서비스 공급을 중단 당했고, 2천만명 이상이 고향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수원을 찾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했고, 콜레라가 창궐했다. 12만명 이상이 콜레라에 감염됐고,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2003년 ‘물 사유화 반대연합’이 형성됐고, 물 사유화 중단을 위한 운동이 시작됐다. 일부 지역에선 주민들이 수도 계량기를 파괴했다.

대중적 압력을 2002년말부터 정부는 부분적 무료 물 공급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 가구당 한 달에 6천리터의 물을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필요한 물의 양에 한참 못 미친다. WHO는 '한 가구'가 아닌 '한 사람'당 하루 100리터를 필요한 물로 보고 있다.

물 사유화 반대세력은 사유화를 중단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남아공의 여러 가지 사유화 계획을 중단되거나 재협상이 되도록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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