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통합 제조산별노조' 건설을 금속노조에 제안키로 결정한 화섬연맹의 임영국 정책실장이 월간 <노동사회> 10월호(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간)에 보낸 글을 싣는다. 이 글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홈페이지(www.klsi.org)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주>


지난 6월 완성차대공장을 비롯한 금속노동자들의 동시 산별전환 성사는 지지부진하던 화학섬유연맹(화섬연맹)의 산별노조운동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이제 전체 노동운동 차원에서도 비정규·미조직노동자 조직화전략과 산별교섭의 발전전망을 열어감으로써 명실상부한 산별노조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곳곳에서 민주노조가 만들어지고 마침내 전노협이 건설되고 민주노총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노동조합운동이 그토록 산별노조를 만들고자 했던 이유는 더욱 많은 노동자를 조직하고 전체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조직형식상 기업별의 틀을 깨고자 했고, 기업을 넘어서 산별적 활동과 단결의 틀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 천만이 넘는 미조직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이자 전망이 될 수 있는 조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금속 산별전환을 통해 이를 위한 조건이 더욱 가시화되었고, 산별완성을 위한 걸음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전체 노동운동 차원에서 미조직노동자의 포괄범위(산별구획)를 어떻게 설정하고 갈 것인지, 최대조직의 원리를 어떤 범위로 구현하는 것이 단결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발전전략 방침은 대산별을 지향하고 있다. 제조업에서 대산별은 구체적으로 금속과 화섬이 함께하는 ‘제조업산업별노동조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규정 속에는 금속과 화섬을 따로 조직하는 것보다 제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하나의 산별노조를 만드는 것이 그 활동과 운영에 있어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어있다. 금속이 산별전환을 완료하고 있는 지금, 화섬 또한 올해 말까지 산별전환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제조노동자들의 단결을 담보할 노동조합, 제조산별노조 건설 추진을 위해 화섬과 금속의 동지들이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자.


왜 화섬연맹은 제조산별을 ‘분명하게’ 지향하는가

화섬의 산별노조 추진은 2000년 화학연맹과 섬유연맹이 통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001년 산별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그 후 4년여가 흐른 2004년 10월에는 지금의 화학섬유노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의 화섬산별노조는 화섬연맹 전체 조합원 2만5천여명 중 6천여명만을 포괄하고 있으며, 산별전환을 결의했으나 실질적인 전환을 유보하고 있는 사업장 조합원 역시 2천5백명 정도나 된다. 전체 전환 결의는 34%정도에 이를 뿐이다. 이렇게 답보상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금속의 산별전환 성공은 화섬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보다 구체적으로 지난 9월22일 연맹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올해 10월 하순에 미전환사업장들의 동시 산별전환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기에 앞서 화학섬유 산별노조 전망에 대해서 겸허히 돌아봐야 한다. 화섬연맹의 조직 사업장들은 대다수가 영세하며 특히 산업구조조정의 대상 사업장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1년 울산의 태광, 효성, 고합 등 화섬 3사 연대파업투쟁을 불러온 구조조정의 여파는 지금도 코오롱 정리해고 반대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장기투쟁사업장이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연맹이 통합되던 2000년, 섬유 사업장은 28개 노조 1만1천여명이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섬유 관련 사업장은 7~8개 노조 2천여명에 불과하다. 석유화학산업도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석유화학은 IMF 외환위기 당시 아시아 지역의 신규 설비투자가 정체된 상황에서 중국, 중동 등지에서 대규모 투자를 지속했는데, 이 설비가동이 완료되는 2008년 이후에는 공급과잉으로 인한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러한 섬유산업의 공동화 현상이나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의 문제는 금속은 물론 제조업 전반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기승을 부리면서 산업현장에는 구조조정이 상시화되고 있다. 대다수 제조업 업종에서 과도한 차입경영과 무분별한 투자로 공급과잉이 나타나면서 자본간 경쟁이 격화되었고, 이를 극복하는 방편으로 인건비 절감 위주의 비용경쟁력에 의존하다보니 소위 ‘제조업 공동화’ 등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흐름이 구조화된 것이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정책의 연구와 개입전략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구조조정 공세가 나타나면 투쟁으로 돌파하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쟁들은 개별 기업별조직의 차원에서 전개되다가 역부족으로 지지부진하게 끝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산업노동정책을 개발하기 위해서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하더라도 우리 화섬연맹의 재정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조직규모로 산업구조조정에 대응하여 우리의 요구를 관철할 힘을 만들 수 있을까? 화섬에서 산별노조 전망과 관련된 일차적인 고민은 여기에 있다.

또한 화섬 산별전환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연맹이나 단위사업장 지도부의 의지의 영역을 제외하고는, 화학섬유 산별노조의 전망이 불투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섬 내 많은 동지들은 제조산별노조 건설 추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며, 2004년 10월 화학섬유산별노조 창립대회에서도 제조산별노조 건설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바도 있다. 이러한 전망의 근저에는 현재의 화섬 조직규모와 조직구성이 매우 불균등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실제 화섬연맹의 조직들은 기업별 규모편차가 무척 심하고 업종도 매우 다양하며, 또한 지역적으로도 광주전남 지역의 조합원이 1만여명으로 여기에 연맹의 40%가 편중되어 있다. 이러한 조직 여건은 연맹 전체가 산별로 전환하더라도 교섭전망과 투쟁력 집중이 쉽지 않음을 예상케 한다. 화섬의 산별노조 발전전망은 제조산별노조 건설과 연동될 수밖에 없는 조건인 것이다.

대산별 원한다면 지금 논의 시작해야 한다

8개 지역본부 체계로 되어 있는 화섬연맹은 적은 규모지만 지역에 따라 지역연대활동을 주도하는 곳도 있고, 또 화섬과 금속의 제조노동자들이 지역연대의 주축이 되는 곳도 있다. 이런 곳에서는 이미 제조산별노조 건설은 당연한 현장 정서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전노협의 경험으로부터 보더라도 화섬과 금속은 업종별 구별보다 제조업 일반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으며 업종을 넘어선 연대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화섬과 금속이 산업별 특성과 차이로 인해 산별노조로서 함께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점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상시화된 구조조정 공세에 대응하여 보다 근본적인 고용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제조업 현장에서 공통으로 제기되는 과제가 되었다. 노동운동의 투쟁방향이 이제 기업별임금과 복지를 넘어 사회적임금과 복지로 나아가야 함에 화섬과 금속이 산별노조로 구별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물론 산업, 업종 간 특성에 따른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교섭구조의 유연한 운영 등을 통해 대산별의 조직적 틀 속에서도 얼마든지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금속은 11월 하순에 산별완성 대의원대회를 치루고 내년 초에 금속산별노조의 새 집행부를 구성한다고 한다. 지난 6월 금속대공장들의 산별전환을 지켜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다는 화섬산별노조의 어느 현장 간부가 금속산별완성 일정을 듣고 나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렇게 되면 제조산별은 물 건너가는 것 아닙니까?” 산별완성대의원대회를 앞두고 금속 내에서는 내부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조직체계, 교섭구조, 조직과 재정 운영방안 등을 둘러싼 논의일 것이다. 화섬 현장간부의 얘기인 즉, 금속산별이 체계를 정비하고 나면 화섬과의 제조산별 문제가 끼어들 틈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지금껏 노동운동 발전과 대의에 복무하고 기여해온 금속 동지들의 헌신과 노력에 비추어 이러한 우려가 기우임을 잘 안다.

그러나 기업별체제를 극복하고 산별노조로 가야하는 것은 금속만 잘해서 될 일은 아니다. 지금 기업별체제에서도 수많은 조직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중소영세규모의 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산별 차원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생기지 말란 법은 없다. 대산별을 지향하는 것이 옳다면, 기업의 틀을 깨고 산별전환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이 시기에 제조산별노조에 대한 구체적 고민 역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반기 동시 산별전환을 추진하는 화섬의 입장에서는 미전환노조들의 산별전환에 동기부여를 하기에도 제조산별 건설은 더욱 용이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미조직노동자에게 전망 제시하는 길을 함께 가자!

제조산별을 건설하려면 그 경로와 과정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5년여의 지난한 투쟁과 헌신으로 산별노조의 기틀을 마련한 금속과 이제 갓 2년이 채 안 되는 화섬산별노조의 경험은 차이가 많을 것이다. 화섬은 상대적으로 산별노조로서 조직운영과 투쟁의 집중성 발휘 등에서 기존 기업별의 관행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편차를 시급히 극복하기 위해서도 제조산별 건설이 빨리 추진되어야 한다. 전체 노동운동으로 보면 지금 시기는 산별전환 크게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결정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시기에 제조산별 건설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 산별적 활동과 투쟁의 경험이 보다 넓은 차원에서 확산되고 쌓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화섬연맹은 지난 9월22일 대의원대회에서 하반기 화섬 산별전환 추진과 함께 제조산별노조 건설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논의과정에서 “화섬으로 안 되니까 금속과 같이 하자는 것이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 되물어본다. 노동조합이, 노동운동이 지금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것이냐고. 노동운동의 위기 속에서 산별전환을 맞이하는 지금, 8백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을 포함하여 1천만이 넘는 미조직노동자에 대해 노동운동이 대답해야 할 것은 무엇이이냐고.

매해 산업 구조조정에 저항하고 비정규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하기 위한 장기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산별노조운동이 그 지향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도 제조노동자들을 하나로 묶어낼 단결의 틀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즉 구체적인 지향점으로서 제조업산별노조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섬이 어렵기 때문에’라는 것은 표피적인 대답이고 조건일 뿐인 것이다.

일상활동마저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의 기업별노조를 넘어서 산별노조로 기존 조직노동자들을 튼실하게 묶어세우자. 그것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3백만이 넘는 제조노동자들에게 열린 산별노조를 건설하자. 그리고 자기 기업 내의 활동가를 넘어선 산별활동가를 양성하여 현장활동을 활성화하고 미조직 제조노동자 조직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해 나가자. 화섬노동자와 금속노동자들이 함께 가서 산별노조의 길을 더 크게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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