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있었던 민주노총 38차 임시대의원대회가 중간에 정족수 부족으로 미뤄졌다. 이에 따라 임원 직선제 등 조직혁신안을 위한 규약개정안이 처리돼지 못했다. 사실상 차기 집행부의 몫이 된 셈이다. 이번 대의원대회가 미뤄진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민주노조운동 혁신에 책임감 있는 모습 보여줘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성원 부족으로 미뤄지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5년 사업평가안과 결산안, 2006년 사업계획안과 예산안도 몇 차례의 대의원대회가 무산된 끝에 38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겨우 통과됐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민주노총의 현재 처지는 이마저도 버겁다. 이번 임시대의원대회도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된 대의원대회를 한달여 만에 다시 개회한 것이다.

38차 임시대의원대회가 중간에 미뤄진 이유도 정족수 부족 때문이다. 개회 당시 자리에 있던 653명의 대의원들 중 대회 성사를 위해 자리를 지킨 사람은 500여명에 불과했다. 세번째 논의안건인 조직혁신안이 상정된 때는 개회 이후 6시간이 지난 오후 9시30분이었다. 이 때까지 자리를 지킨 대의원 숫자는 510명이다. 과반수인 519명(재적대의원 1036명)을 채우지 못해, 유회가 선언됐다.

대의원들이 직선제, 의무금 인상 등 조직혁신안에 대한 우려와 부담을 대의원대회에 참가하지 않거나 총파업 결의 후 퇴장했기 때문에 대의원대회가 미뤄진 것으로 볼 수 있는가? 이렇게는 그동안의 대의원대회가 정족수 부족으로 거듭 무산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문제는 이러한 분석과 판단이 근거를 가지고 따질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조직혁신안에 대한 대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도 없고, 이번 대의원대회에서는 투표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의원들이 우려와 부담을 가지고 있어서 다시 대의원대회를 열어도 조직혁신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은 더욱 암울한 이야기이다. 2003년 말 단병호 집행부 시절부터 조직혁신안을 논의해 왔다. 직선제는 1998년 이갑용 집행부 시절부터 제기되어 왔다. 길게는 8년, 짧게는 3년 간의 조직혁신안 논의가 다시 미뤄졌고, 또 미뤄질 거란 예측은 과연 민주노총 집행부, 그 날 그 자리의 대의원들이 조직혁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대의원대회 정상화 위한 다양한 방법 찾아야

민주노총의 주요한 내용들이 논의되고, 결정되고, 책임있게 집행되고, 평가되는 과정을 제대로 밟아가기 위해서는 대의원들이 현장에서 생동감 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논의돼야 한다. 권력만 있고 책임은 없는 대의원대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집은 직선제와 관련한 단일안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직혁신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의원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과정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가 따져 봐야 한다. 조직혁신안을 실질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전 조직적인 소통과 의지를 모으기 위한 노력에 경주하지 않는다면 민주노총은 스스로 혁신을 결정할 수도 없는 조직이 되고 만다.

또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구성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의 구체적인 해답을 찾는 게 필요하다.

임원 직선제, 비정규할당제는 정말 통과될 수 없었나

조직혁신안을 논의하던 중 38차 임시대의원대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될 상황에 처하자 조준호 위원장이 임원 직선제, 대의원 및 중앙위원 비정규할당제에 대해 수정동의안 제출없이 바로 무기명 투표에 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수정동의안을 제출하게 되면 찬반을 묻기 위해 정족수를 확인하게 되고 그러면 정족수 부족으로 대회를 유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 대의원이 임원 직선제와 대의원 직선제를 함께 시행하는 수정동의안을 제출했고, 비정규할당에 중소영세사업장과 이주노동자 할당을 추가할 것을 제시하는 수정동의안이 제출되었다. 결국 결정은 기약없는 다음 회의로 미뤄졌다.

직선제, 비정규할당제는 정말 통과될 수 없었나? 그런 점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장면이 있다. 조직혁신안을 항목별로 분리해서 재정혁신, 임원 직선제, 비정규할당제 등 별도로 처리하자는 요청이 있었다. 또 대의원 직선제는 임원 직선제와 다른 내용이니 분리해서 처리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조준호 위원장이 이 요청들을 받아서 진행했다면 임원 직선제와 비정규할당제는 결정할 수 있었다. 최소한 투표는 진행할 수 있었다. 투표 결과 가결될 지 부결될 지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더라도 말이다.

또한 직선제 추진위 대의원이 임원 직선제 안에 대해 대의원 직선제라는 수정동의안을 제출하지 않았다면 바로 투표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수정동의안을 제출하는 순간 직선제 추진위에서 주장한 임원 직선제 시행은 물거품이 되는 상황에서 수정동의안을 제출한 것이다.


진정 직선제를 바랐나

“이번에는 임원 직선제만 결의하자”라는 주장과 “대의원 직선제 없는 임원 직선제는 동의할 수 없다”라는 주장의 고집스런 줄다리기가 결국 ‘임원 직선제 시행’조차 가로막은 것이다.

다수가 임원 직선제를 바란다고 하면서도 현실로 만들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서 민주노총은 또다시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는 것 아니겠는가. 38차 임시대의원대회는 무능한 민주노총 현실의 한 단면이었다.

민주노총 집행부와 ‘대의원 직선제와 임원 직선제 동시 실시’를 주장한 대의원들이 진심으로 임원 직선제를 바라고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임원 직선제를 바란다는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직선제를 파기시킨 사태는 시행 의지가 확고하지 않았거나 무능력해서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속내가 어떻든 결국 38차 임시대의원대회가 민주노총의 혁신을 기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되지 못한 책임에서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다.

절반의 민주주의라도 선택할 수는 없는가

임원 직선제, 비정규 할당제만이라도 통과되어서 시행되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닌가? 대의원 직선제와 중소영세사업장, 이주노동자 할당이 필요 없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대의원대회가 미뤄지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추진한 일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어서 하는 말이다.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인가? 아무런 대안도 선택하지 못하는데 ‘진전’이 가능한가? ‘모 아니면 도’, 'all or nothing'의 사고방식이 전략 부재의 상황을 만들고 마는 것 아닌가? 이번 38차 임시대의원대회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직선제, 무기력 상태 탈출 '계기' 될 수 있다

대의원대회마저 번번이 무산되는 민주노총을 혁신하기 위해 대의원들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불거졌다. 대의원 직선제 도입 안은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직선제가 만병통치약인가? 민주노총의 곪을 대로 곪은 상처는 증상에 대한 부분적 처방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임원과 대의원에 대한 직선제 실시가 민주노총 혁신 또는 범위를 좁혀서 조직혁신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열쇠는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가 꼬인 만큼 그 처방전 역시 다층적이어야 한다. 민주노총 혁신은 포괄적이고 다층적인 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직선제는 현재 무기력 상태에 빠진 민주노총에 활력을 부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조합원들과의 소통 구조가 확대되는 건 위기 탈출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임원 직선제와 대의원 직선제를 함께 시행해야 하자는 주장에 동의한다. 대의원 및 중앙위원 선거에서도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이주노동자 할당제가 실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대의원대회에서는 임원 직선제 안과 대의원 및 중앙위원 비정규할당제 만이라도 통과되는 게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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