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오는 22일 공무원노조 사무실을 강제 폐쇄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18일 오후 국회에서 권영길 의원단 대표 등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공무원노조 사무실을 폐쇄하라는 행자부 지침의 철회를 요구받은 뒤 단호하게 거절했다.


국회 행자위 참석차 국회를 찾았던 이 장관은 18일 오후 국회 내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 날 면담은 민주노동당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면담에는 민주노동당 쪽에서 권영길 원내대표와 단병호·이영순 의원, 이해삼 최고위원이 참석했고 행자부 쪽에서는 이 장관이 홀로 나왔다.

이 자리에서 이해삼 최고위원이 “노조 사무실 폐쇄는 오히려 갈등만 조장하는 행위”라며 “지침을 거둬달라”고 하자 이 장관은 “행정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지침 철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장관은 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공무원노조를 ‘불법노조’라고 강조하다가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한참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의장 출신인 단병호 의원은 “20년 전 군사정권도 전노협을 ‘임의단체’라고 불렀지 ‘불법노조’라고 하지는 않았다”며 “공무원노조를 불법노조라고 규정하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 의장 출신인 권영길 의원단 대표도 “과거 정권은 전노협과 전노대에 대한 ‘불법단체’ 시비가 불거졌을 때 ‘법외노조’라고 공식 정의했다”고 거들었다.

의원들의 지적이 계속되자 이 장관은 “전문적인 분야라서 법률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봐야겠다”고 한발 물러서면서도 “과거 노조들이 불법이냐 임의냐, 법외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으며, 군사독재정권 시절이 아닌 현재는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 장관은 “미래에 부담이 되고 도리어 문제를 야기한다는 측면에서 공무원 처벌에 반대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개인 생각”이라며 “그래서 지난 8개월 동안 서류상으로 설득하고 계도해 왔는데, (공무원노조가) 신고서 1장만 내면 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노조쪽을 비판했다. 그는 또 “현행법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일단 합법적 테두리 안으로 들어와서 교섭도 하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고쳐나가면 된다”며 “공무원 다수와 국민들이 이렇게 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참여정부와 <조선일보>의 야릇한 공생관계

이 장관은 이날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사무실 폐쇄의 부당성을 자꾸 지적하자 몇 가지 해명성 발언들을 했다.

첫째는 어차피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정부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행자부가 사무실을 폐쇄하라는 지침을 내리지 않았더라도 지자체들이 알아서 했을 것이므로, 행자부 공문은 별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그렇다면 실효성도 없는 공문을 뭣하러 내려보내서 괜한 분란을 일으켰냐”고 따졌다. 답변이 궁색해진 이 장관은 이 질문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둘째는 ‘설득과 계도’를 통해 공무원노조를 합법의 테두리로 유인하고 싶었지만, 강하게 대응하라는 여론의 성화에 못 이겨서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피론’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여론은 주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이 주도했다.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지난 7월25일 공무원노조 경남본부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일체의 협상을 거부한 채 노조 전임자 3명에 대해 업무복귀명령을 내리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곧바로 김 지사를 옹호하며 행자부의 ‘미온적인 태세’를 질타했다.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튿날인 26일 구두논평에서 “전공노와 전교조, 노동단체들이 거리낌 없이 법에 허용되지 않은 행위를 저지를 수 있도록 방치하는 노무현 정부는 과연 국민을 위한 정부냐”고 공격했다. 다음날 나경원 대변인은 “정부가 진작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지방자치단체가 나선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전공노의 모든 불법 사무실 폐쇄와 전임자 업무복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감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언론들도 사설 등을 통해 수차례 공무원노조를 비난하고 정부를 질타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8월26일자에 김태호 경남도지사 인터뷰까지 실어가며 여론 형성에 안간힘을 썼다. 한나라당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민주노총 등을 ‘좌파’라고 규정하고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들 좌파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장관은 이날 “경남도지사가 혼자서 전공노와 싸우고 있는데, 행자부는 뭐하고 있느냐”는 소리도 들었다며 “힘들다”고 말했다. ‘참여정부’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게 책임을 떠넘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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