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달한 가운데, 불신을 조장하는 여러 주장에 대한 반박 보고서가 나왔다.

오건호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이 사회연대연금노조에 지난 8월 제출한 연구보고서인 ‘국민연금 불신조장 9대 주제’는 과장되고, 왜곡된 국민연금에 대한 시각들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오건호 전문위원의 비판은 정부와 정치권의 주장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주장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기금은 고갈된다?

연구보고서는 현행 국민연금 보험률 9%, 급여율 60%를 유지할 경우 2036년에 수지적자가 발생하고 2047년에 재정고갈이 맞게 된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현행 국민연금제도가 가진 ‘조정기능’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국민연금의 장기재정을 5년마다 추계하고, 보험료율과 급여율을 조정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연금고갈론은 ‘현행제도를 손보지 않고 그냥 놔둔다는 분석 하에서만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오건호 전문위원은 “향후 후세대가 기금을 자연적으로 고갈시켜 국민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결정을 하지 않는 한, 국민연금은 5년 주기 재정조정을 끊임없이 하며, 기금고갈을 뒤로 미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급격한 현금화 위기온다

현금화 위기론은 시민사회 및 진보진영에서 자주 강조되는 논리다. 2030년부터 연금지출이 급격히 늘어나므로, 기금을 현금화 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기금의 자산가치 하락 및 한국 자산시장의 위기가 올 것이라는 게 현금화 위기론의 요지. 즉 모인 기금이 한꺼번에 현금으로 풀리면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건호 전문위원은 “이 역시 5년 재정조정제도를 간과한 과도한 주장”이라고 주장한다. 오 전문위원은 “보험료, 급여 조정이 이뤄짐에 따라 기금적립금은 기존 수준에서 유지될 개연성이 높다”면서 “급속한 현금이탈은 발생하지 않거나 완화될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 위원은 “향후 국민연금기금이 해외시장에서 운용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민연금기금은 국내 채권시장의 15%, 주식시장의 3%를 차지하고 있는데, 채권시장은 거의 포화상태이며, 아직 투자의 여유가 있는 주식시장도 곧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오 위원은 “2030년 급격한 현금화가 발생하는 시장은 국내시장이 아닌 해외 자산운용시장”이라면서 “해위시장에서 기금이 운용되는 것에 따른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속한 고령화에는 장사없다?

국민연금 재정위기론이 거론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급속한 고령화다. 한국 사회는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후, 25년만에 65세 인구가 20%가 되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예정이다. 서구에 비해 대단히 빠른 속도다. 이는 국민연급 재정에 큰 압박을 줄 것.

이 문제의 해법에 대해 오건호 전문위원은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노동시장에서 졸업하는 시점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인들이 일을 함으로써 연금에 의지하는 기간을 가능한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핵심은 “고령화 문제는 노동시장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오건호 위원은 “공공부문의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인고용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다”면서 “단지 고령 노동자의 임금수준에 대해선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수입비 급여는 국민을 기만한 것?

올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는 “국민연금 도입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였다며 과거 정권을 비판했다. 지나치게 고수입비 급여를 가입자에게 약속했다는 것. 그러나 오건호 전문위원은 “국민연금 도입 초기에 가입자 프리미엄은 불가피했다”면서 “공적연금의 역사적 체험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래의 연금지급을 담보로 현재 소득에서 일부를 강제납부하려면 후한 조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은 “가입 1세대는 자기 부모의 노후도 책임지면서 자신의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하는 이중부담의 처지에 있다”면서 “일부를 후세대에 의탁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특수한 프리미엄을 ‘기만’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또한 오건호 정책전문위원은 가입기간을 무시한 ‘용돈연금론’을 비판했다. 오건호 위원은 “우리나라의 급여율은 ILO가 권고한 수준인 60%와 일치한다”면서 “국민연금의 역사가 길지 않고, 비정규직 등 불안정 가입자들이 많아 연금액이 용돈에 그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입기간을 늘리기 위한 사회적 지원책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연금기금 불안은 주식투자 실패 때문?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연금기금을 주식에 투자해서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는 의혹은 사실일까. 오 전문위원은 “손실을 본 사례가 있지만 단순히 평가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반적 예상과 달리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실적은 매우 양호하다. 안정적인 채권수익과 근래의 주식시장 성장에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 운용수익율은 매입가 기준 8.44%에 달한다.”

오 전문위원은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은 “실제 쟁점은 연금공단이 주식투자에서 얼마의 수익을 올렸느냐보다 불안정한 주식시장에서 운용되는 것이 옳은가에 있다”면서 “앞으로 수십년간 꾸준히 증가할 기금의 운영전략은 국민연금이 풀어야 할 근본적인 과제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격차는 크다?

공무원, 교사, 군인 등이 적용받는 특수직역 연금에 대한 국민적 비판은 심각한 수준. 오 위원은 “특수직연 연금의 급여가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과도하게 알려졌다”면서 “퇴직금을 포함해 양 연금을 비교하면 공무원연금이 약 1.2배 유리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한 오 위원은 “과거 공무원 입사자들의 경우 연금 수익비가 국민연금에 비해 높지만 보수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오히려 불리한 지위에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오 위원은 최근에 와선 공무원의 임금이 민간부문에 비해 불리하지 않고, 국민연금과 균형을 맞추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 위원은 “공무원 보수가 거의 현실화 된 최근 임용자부터 급여율 조정을 이루면 형평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적립방식? 부과방식?
“국민연금의 과도한 적립을 방지하기 위해선 현행 수정적립방식을 부과방식에 가깝게 전환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국민연금이 세인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지만, 이 말이 뜻하는 바를 아는 사람은 많지 많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적립방식과 부과방식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적립방식은 말 그대로, 돈을 모아두었다가, 모인 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적립된 돈이 없으면, 연금은 ‘부도’가 난다. 부과방식은 그해 걷은 돈을 그해에 연금으로 지출하는 방식이다. 현재 노동인구가 노령 등을 이유로 노동력을 상실한 연금 수급권자를 먹여 살리는 제도다. 연금 제도가 성숙된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원리상으로, 위험준비금 정도를 제외하면 적립금이 없다.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수정적립방식은 일단 연금기금을 모아두고, ‘일정한 기간 후의’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위해서 보험료와 급여수준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오건호 정책전문위원은 “국민연금기금의 과도한 적립방식을 방지하기 위해선 현행 수정적립방식을 부과방식에 가깝게 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는 장기적 과제가 될 것이다. 부과방식으로 전환을 위해선 후세대가 보험료를 납부해 나를 부양해줄 것이라는 세대간 신뢰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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